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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베땅이의 노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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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새로운 이야기, 깨뜨리는 이야기, 살리는 이야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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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울 연구에 관한 라이트의 리뷰 by Larry Hurtad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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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8 May 2012 05:56:12 +0000</pubDate>
		<dc:creator>베땅이</dc:creator>
				<category><![CDATA[바울스터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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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약 70-120년 경에 언젠가 쓰여진 베드로후서의 저자는 이미 문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지만 &#8220;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8230;&#8221;라고 이해됐던 바울 서신들을 언급한다. 그 어려움은 언제나 그랬듯,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 그런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오늘날 바울 학계를 구성하고 있는 주된 연구 과제이다.</p> <p>[Expository Times]의 최근호(vol. 123, number 8, May 2012)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class="alignright" style="margin-left: 5px; margin-right: 5px;" title="1co" src="https://lh4.googleusercontent.com/-Wod9vLa39Ks/T7XjNBTRXLI/AAAAAAAAAlk/EwNYhlLkTZk/s593/P1010347.JPG" alt="" width="180" height="503" />약 70-120년 경에 언젠가 쓰여진 베드로후서의 저자는 이미 문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지만 &#8220;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8230;&#8221;라고 이해됐던 바울 서신들을 언급한다. 그 어려움은 언제나 그랬듯,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 그런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오늘날 바울 학계를 구성하고 있는 주된 연구 과제이다.</p>
<p>[Expository Times]의 최근호(vol. 123, number 8, May 2012)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학자들에 의해 계속적인 논쟁과 발전을 보여주는 두개의 방대한 논문을 수록하였다. 이번 포스팅에서 나는 N. T. 라이트가 쓴 바울 연구에 관한 리뷰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나는 더글라스 캠벨이 그의 방대한 연구, [<a href="http://www.amazon.com/The-Deliverance-God-Apocalyptic-Justification/dp/0802831265/ref=sr_1_1?ie=UTF8&amp;qid=1337319254&amp;sr=8-1" target="_blank">The Deliverance of God</a>] (2009)에서 요점을 정리하려 노력한 것에 주목할 것이다.</p>
<p>&#8220;최신 영어권 학계&#8221;에서 라이트는 지난 35년 가량의 바울 학계안에서의 주된 발전에 관한 리뷰와 간단한 주장을 제공하고 있다. 라이트는 그것이 최근 30년간의 &#8220;성서학 분야 전체에서 북아메리카의 새로운 우월권&#8221;을 반영한다는 것에 주목함으로써 그의 영어권 편중에 대해 변명한다. 하지만 그의 조사는 너무도 당연하게 몇몇의 중요한 영국계 기여자들에게도 주목하고 있다.</p>
<p>그의 연구는 소위 바울에 관한 &#8220;새관점&#8221;이라는 것을 불러 일으킨 E. P. 샌더스의 충격적인 책, [<a href="http://www.amazon.com/Paul-Palestinian-Judaism-Comparison-Patterns/dp/0800618998/ref=sr_1_1?s=books&amp;ie=UTF8&amp;qid=1337319298&amp;sr=1-1" target="_blank">Paul and Palestinian Judaism</a>]에서부터 시작한다. 관점에서의 이러한 전환의 &#8220;기본적인 요소&#8221;는 유대교를 완고한 율법주의로 묘사하던 것으로부터 그것을 &#8220;언약적 율법주의&#8221;로 바라보는 것으로의 이동, &#8220;해법&#8221;(예수의 구속적 죽음)으로부터 &#8220;상태&#8221;(인간의 죄된 처지)로의 이동과 &#8220;칭의&#8221;보다는 (속죄에의) &#8220;참여&#8221;와의 관계로서의 바울의 신학 사상에 관한 분석, 그리고 유대 율법에 대한 바울의 비난이 주로 이방인의 개종에 있어서 예수에 대한 그들의 믿음뿐 아니라 율법 준수(Torah-observance)를 추가적으로 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유대기독교그룹(fellow Jewish Christians)을 겨냥하고 있다는 인식으로 구성된다.</p>
<p>라이트는 샌더스를 비롯해 던(J.D.G. Dunn)이나 라이트 자신같은 &#8220;새관점&#8221;에 있어서 중요 기여자들을 간략하게 리뷰한다. 라이트에 의해 인용된 &#8220;새관전 이후&#8221;의 중요 연구로는 리차드 헤이스(Richard Hays)의 &#8220;획기적인&#8221;(라이트가 강한 동의를 표현한) [<a href="http://www.amazon.com/Echoes-Scripture-Letters-Paul-Richard/dp/0300054297/ref=sr_1_1?s=books&amp;ie=UTF8&amp;qid=1337319329&amp;sr=1-1" target="_blank">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a>] (1989), 프랜시스 왓슨(Francis Watson)의 [<a href="http://www.amazon.com/Paul-Judaism-Gentiles-Beyond-Perspective/dp/0802840205/ref=sr_1_1?s=books&amp;ie=UTF8&amp;qid=1337319354&amp;sr=1-1" target="_blank">Paul, Judaism and the Gentiles</a>] (2007)등이 있다.</p>
<p>그래서 라이트는 J.L. 마틴(J.L. Martyn)과 J.C. 베커(J.C. Beker), 그리고 지금은 더글라스 캠벨(Douglas Campbell)로 대표되는 바울에서 &#8220;종말론적&#8221;에 대한 새로운 강조에 관여한다. 그러나 라이트는 유대적 상황과 고대 종말론적 사상의 몇몇 핵심 요소들을 정당하게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학자들을 비난한다.</p>
<p>&#8220;바울과 정치학&#8221; 섹션에서 라이트는 로마 제국 체제와 바울의 관계에 관한 물음에 초점을 맞추는 바울 연구의 &#8220;새물결&#8221;에 대해 논쟁한다. 리차드 호슬리(Richard Horsley)는 이 논의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라이트는 바울이 스토아 사상을 구체화했다는(자신이 결점을 발견한) 트로엘스 잉버그-페더슨(Troels Engberg-Pedersen)의 주장을 리뷰한다.</p>
<p>라이트는 자신이 최근 15년 동안 쓰여진 바울에 관한 가장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 웨인 믹스(Wayne Meeks)의 [<a href="http://www.amazon.com/The-First-Urban-Christians-Apostle/dp/0300098618/ref=sr_1_1?s=books&amp;ie=UTF8&amp;qid=1337319399&amp;sr=1-1" target="_blank">The First Urban Christians</a>] (1983)를 특별히 인용하면서 &#8220;바울과 &#8216;사회사&#8217;&#8221;에 관한 연구의 더 긍정적인 평가를 제안한다. 그는 또한 데이빗 호렐(David Horrell)의 [<a href="http://www.amazon.com/Solidarity-Difference-Contemporary-Reading-Ethics/dp/0567083349/ref=sr_1_1?s=books&amp;ie=UTF8&amp;qid=1337319424&amp;sr=1-1" target="_blank">Solidarity and Difference</a>] (2005)를 &#8220;세련되고 정교한 서술&#8221;처럼 인용하고 존 바클레이(John Barclay)의 새로운 책, [<a href="http://www.amazon.com/Churches-Diaspora-Wissenchaftliche-Untersuchungen-Testament/dp/3161506197/ref=sr_1_1?s=books&amp;ie=UTF8&amp;qid=1337319447&amp;sr=1-1" target="_blank">Pauline Churches and Diaspora Jews</a>] (2011)에 관심을 보인다.</p>
<p>라이트는 &#8220;신학적 작업&#8221;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결론을 내리는데, 그 작업은 이런저런 주제들을 정리하는 것에 좌우되지 않고 촘촘한 체계안에서 바울의 핵심적인 신앙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는지, 아니면 학계가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것보다 더 커다란 전체 안에서 그것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허락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p>
<p>그는 &#8220;이것이 이론상으로 가능하다&#8221;는 믿음과, 바울을 정확하게 1세기의 상황안에 위치시키는 &#8220;발전적인 방법&#8221;이 있으며 그의 편지들이 논리적인 신학적 전망을 반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확신을 표현한다.</p>
<p>라이트 자신이 곧 신약 신학에 관한 그의 프로젝트 가운데 바울에 관한 부분을 머지 않아 출판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어쩌면 이 글은 숙련된 학자에 의해 쓰여진 학문적으로 유용한 리뷰임과 동시에 &#8220;계속 지켜봐야 할&#8221; 포스팅일지 모른다.</p>
<p><strong><a href="http://larryhurtado.wordpress.com/2012/04/16/wright-reviews-scholarship-on-paul/" target="_blank">원문보러가기</a></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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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울의 고난 목록의 약함과 자랑 (고후 11:21-3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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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8 May 2012 05:00:29 +0000</pubDate>
		<dc:creator>베땅이</dc:creator>
				<category><![CDATA[바울스터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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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br />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br />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blockquote><p>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br />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br />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br />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br />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br />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br />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br />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br />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br />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p>
<p>[고린도후서 11장 21~30]</p></blockquote>
<p><img class="alignleft" style="border-style: initial; border-color: initial; border-image: initial; margin-top: 5px; margin-bottom: 5px; margin-left: 10px; margin-right: 10px; border-width: 0px;" title="paul at vatican" src="https://lh6.googleusercontent.com/-jlE1X_p1dzI/T6inqrvUh-I/AAAAAAAAAkg/E77ZTJw2BwU/s685/101014+St+Paul+statue+at+the+Vatican.jpeg" alt="" width="207" height="685" />바울은 자신의 경쟁자들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앞부분에서 볼 때 바울의 경쟁자들은 자신들을 예루살렘의 소위 우두머리 제자들(11:5, 12:11)과 연관시켜 권위를 주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경쟁자들은 그를 향해서 &#8220;바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직접 대할 때 그는 약하고, 말주변도 변변치 못하다&#8221;(10:10)라고 비난했다. 특히나 바울은 화술에 있어서 많은 부분 열세에 놓였던 것으로 보인다.(11:6) 바울의 고난 목록은 이렇게 막다른 상황에 놓인 바울이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의 언변을 패러디 하면서 적고 있는 자랑의 목록 가운데 위치한다.</p>
<p>처음 몇가지 자랑은 중복되는 내용처럼 보인다. 히브리인, 이스라엘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8230;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지던 이미지들이다. 그 세세한 차이들을 여기서 전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아마도 바울의 경쟁자들이 주장했던 자랑의 주제이거나 혹은 바울이 스스로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끌어들이고 있는 개념일 것이다.</p>
<p>중요한 것은 23절부터 나오는 고난의 목록들이다. 문제는 이 구절이 앞에서 나오는 자랑 목록과 연결되면서도 약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들을 가지고 경쟁자들과의 동등함 혹은 우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이 부분은 바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역설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p>
<p>그렇다면 이 고난의 목록은 왜 &#8216;약함&#8217;이라는 주제와 연관되는가? 이 부분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바울의 경쟁자들에 비해서 바울이 더 수고했으며 더 많은 고난을 겪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자신의 수고를 생색내는 것 같은 이 문구가 &#8216;약함&#8217;이라는 주제와 엮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바울이 자랑하는 고난의 목록은 바울에게는 절대 &#8216;약함&#8217;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것을 &#8216;약함&#8217;과 연관시키는가?</p>
<p>우선 이해해야 하는 것은 바울이 제시하는 고난 목록의 내용들이 사람들에게 &#8216;자랑&#8217;이 아니라 &#8216;약함&#8217;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고난의 목록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여행의 고난이고 두번째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박해이다.</p>
<p>먼저 당시 사회에서 여행은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특히나 바다에서의 여행은 더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출항에 앞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신을 위로하는 의식을 치뤘다. 이런 &#8216;신&#8217;개념 아래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세번의 파선이 의미하는 것은 두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신이 노했거나 혹은 신이 힘이 없거나&#8230; 그렇기 때문에 여행의 실패는 단순히 고생이나 수고의 의미를 넘어선 신과의 관계 문제의 실패로까지 이해될 수 있다. 특히나 죽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바다에서의 일주야를 지낸 바울의 경험은 어찌보면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당한 여러가지 위험은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8216;정말 바울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사람일까?&#8217;라는 의문이 들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p>
<p>두번째는 사람에게서 당하는 고난의 문제이다. 바울의 시대는 아직 국가적인 차원의 기독교 박해가 이뤄지기 이전이다. 그렇기때문에 당시 바울이 당한 고난은 지역적인 차원의 박해에서 온 것이고 그것은 대부분 종교적인 문제이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 좋은 예를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나 바울은 자신이 태장을 당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로마시민이라는 바울의 신분에서는 집행될 수 없는 형벌이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보다는 당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에 대해 로마시민권을 무시하고 집정관에 의해 임의적으로 태형을 집행한 예들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더 정직할 것이다. 게다가 바울이 40에서 하나 감한 매와 돌로 맞는 형벌은 신성모독과 같은 특별한 범죄에 해당하는 형벌이다. 여기서 마지막 거짓형제에 관한 부분이 자신의 경쟁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양쪽으로부터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꽤나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집단적 상호성이 지배적이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바울에 대한 일종의 부정적인 평판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 바울은 모든 사회에서 꽤나 문제거리인 사람이었다.</p>
<p>바울은 12장에서 말하고 있듯이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서 분명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고난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의 고난 목록은 당시 유행하던 철학자들이나 왕들의 고난 목록 양식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몇가지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박익수 교수는 그의 책 [누가 과연 그리스도의 참 사도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p>
<blockquote><p>고대 그레코-로만 시대의 고난 목록과 바울이 전하는 고난 목록은 그 형태에 있어서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목록은 견유학파나 스토아학파에서 잘 알려진 것이었다. 이런 고난의 목록은 두가지 반응 결과를 제시한다. 먼저 고난을 잘 견디는 자는 높은 지위를 얻으나, 반대로 잘 견디지 못한 자는 실패자로서 낮은 지위를 얻게 된다. 또한 현명한 사람은 그런 고난을 잘 극복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스토아적인 평행구절들은 고난을 극복하는 인물과 그의 업적을 부각시키면서 고난 자체는 덜 중요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울이 고난의 목록을 제시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그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첫째는 고난을 받는 것이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고상한 경험이 아니라 위신과 명예를 손상시키는 경험</span>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둘째는 명백한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성공과 목적의 달성이 아니라 분명한 실패의 본보기로서</span> 고난이 제시된다는 점에서 스토아적인 고난의 용법과 차이가 난다.  [p.356]</p></blockquote>
<p>바울의 고난 목록이 &#8216;생색&#8217;이 아니라 &#8216;약함&#8217;과 연결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 바울의 사역에서 실패로 인식될 수 있었고 바울의 권위와 명예를 손상시키고 의구심을 갖도록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바울을 비방하는 경쟁자들의 &#8216;비방목록&#8217;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울은 경쟁자들에 맞서 자신의 약점으로 인식될 수 있는 조건들을 나열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자랑이라고 말한다. 물론 바울이 그것을 자신의 약점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을 비방하던 사람 혹은 고린도교인들의 인식과 그것을 뒤집고 있는 바울의 고난 인식의 대립이다.</p>
<p><img class="alignright" style="border-image: initial; border-width: 5px; border-color: black; border-style: solid;" title="십자가" src="https://lh4.googleusercontent.com/-LZK5q2qEya4/T6ilx_QHA4I/AAAAAAAAAkI/WG1HixqD3kM/s450/ChristCrucified14.jpg" alt="" width="300" height="271" />바울은 12장 10절과 13장 4절에서 자신의 약함을 그리스도의 약함과 연결시키는데에서 파악될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약함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약함에도 이 두가지 인식이 교차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스도는 &#8220;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갈 3:13)&#8221;라는 율법의 정죄 위에서 십자가를 지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떤 영웅적 죽음이 아니라 실패한 선지자이며 하나님의 저주를 당한 사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약함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이 보기에 &#8216;약함&#8217;, &#8216;약점&#8217;, &#8216;실패&#8217;로 인식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약함이 하나님 앞에서 강함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후13:4)</p>
<p>바울은 자신의 약점으로 여겨지던 것을 역설적으로 자랑목록에 놓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약함과 자신의 약함을 동일시한다. 이것은 당시 외적이나 사회적으로 열세에 놓여있던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던지는 한판뒤집기인 것이다. 이런 뒤집기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를 위한 고난이듯이 자신의 고난 역시 고린도교회를 위한 고난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경쟁자들이 자신들을 &#8216;그리스도의 일꾼&#8217;이라고 소개하던 말을 받아치면서 바울이 &#8216;나는 더욱 그러하다&#8217;라고 말하면서 고난 목록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을 수 있는 이유였다. 그의 고난은 교회를 향한 염려에 기반한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령님의 탄식(롬 8:26)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p>
<p>바울의 경쟁자들은 소위 &#8216;큰 사도들&#8217;의 권위를 등에 엎고 있었다. 실제 그들이 예루살렘과 연관이 있는지는 증명될 수 없으나 적어도 그들은 사도들의 추천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연속성을 자신들의 자랑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꽤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예수를 직접 보았던 제자들에 비해서 바울의 사도성은 언제나 의심받아 왔다. 이런 사도 개념에 대해서 바울은 그들의 자랑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이 진정한 사도성의 근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힘을 등에 업고 자기 자랑거리들을 앞세우는 세상의 법칙을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p>
<p>특히나 바울이 자신의 실패를 내세우는 것은 오늘날 사회 가운데 큰 도전을 준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1등이 아니면 곧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목회도 사람을 많이 모아야 하고 학생은 성적을 잘 받아야 하고 기업은 실적을 높여야 하는, 그래야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이런 세상을 향해서 바울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가 자신의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결과를 통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세상의 법칙이 아니라 역으로 가치를 통해 결과가 평가되는 새로운 삶의 방법이다. 똑같은 목록을 놓고 어떤 이들은 &#8216;약함&#8217;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8216;강함&#8217;이라 말한다. 바울에게도 자신의 자랑거리들이 있었을 것이다. 12장 1-5절에 나오는 경험은 어쩌면 경쟁자들에게 맞서서 제시할 수 있는 좋은 무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울은 이런 것들을 자랑하지 않는다. 고린도교회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몇마디 하긴 했지만 바울에게 이것은 참 불편한 일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p>
<blockquote><p>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span> 그만두노라 (12:6)</p></blockquote>
<p>오늘날 우리는 이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흔히 &#8216;약할 때 강함되시네&#8217;라고 찬양한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서, 그리고 세상 앞에서 약해지려 하는지 생각해봐야한다. 오히려 몸집을 불리고 더 많은 사람을 모아서 우리의 힘을 과시하려하고 있지는 않은지&#8230; 이런 자랑들을 통해서 정작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가 가려지고 있지 않은지&#8230; 오늘날 한국 사회에에 바울이 던지는 외침은 큰 울림이 되리라 믿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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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900일 쯤 지난 커플의 하루&#82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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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3 May 2012 15:01:39 +0000</pubDate>
		<dc:creator>베땅이</dc:creator>
				<category><![CDATA[공개일기 (日步)]]></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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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a style="clear: left; float: left; margin-bottom: 1em; margin-right: 1em;" href="https://lh5.googleusercontent.com/-x0R0XtTBDlM/T6KaPd0l5MI/AAAAAAAAAjc/B_VAxa4O-Mg/s1536/IMAGE_BEE4865C-2382-41CB-8E0B-0619A2DA9C78.JPG" target="_blank" rel="lightbox[2383]"></a> <p style="text-align: justify;">1900일쯤 되면 어떤 느낌일까?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겠지만 여자친구와 1900일이 됐다.^^ 아직은 100일마다 한번씩 서로 고마워하는 시간이 지속되고 있어서 참 좋다.</p> <p style="text-align: justify;">건축학 개론을 보려고 예매까지 했다가 둘다 쉬고 싶은 마음에 미련없이 취소하고 속시원해 했다.^^; 어둠컴컴한 영화관에서 영화에 집중하기보다는 같이 앉아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separator" style="clear: both; text-align: left;"><a style="clear: left; float: left; margin-bottom: 1em; margin-right: 1em;" href="https://lh5.googleusercontent.com/-x0R0XtTBDlM/T6KaPd0l5MI/AAAAAAAAAjc/B_VAxa4O-Mg/s1536/IMAGE_BEE4865C-2382-41CB-8E0B-0619A2DA9C78.JPG" target="_blank" rel="lightbox[2383]"><img id="blogsy-1336056478381.7996" class="alignleft" src="https://lh5.googleusercontent.com/-x0R0XtTBDlM/T6KaPd0l5MI/AAAAAAAAAjc/B_VAxa4O-Mg/s500/IMAGE_BEE4865C-2382-41CB-8E0B-0619A2DA9C78.JPG" alt="" width="384" height="512" /></a></div>
<p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xx-large;">1900일</span>쯤 되면 어떤 느낌일까?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겠지만 여자친구와 1900일이 됐다.^^ 아직은 100일마다 한번씩 서로 고마워하는 시간이 지속되고 있어서 참 좋다.</p>
<p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x-large;">건</span>축학 개론을 보려고 예매까지 했다가 둘다 쉬고 싶은 마음에 미련없이 취소하고 속시원해 했다.^^; 어둠컴컴한 영화관에서 영화에 집중하기보다는 같이 앉아서 아이패드로 더킹투하츠를 보는 것을 택했다. ㅋㅋ 함께 하기위해 뭘 해야했던 시간보다는, 뭘 안해도 같이 있어서 좋은 시간이 된 듯&#8230;</p>
<p style="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x-large;">이</span>쯤되면 안해본 것이 있을까 싶겠지만 길가다가 1+1으로 파는 컨버스 신발을 맞춰신고 좋다고 돌아다녔다. 아직 같이 해봐야할 것이 너무 많은 듯&#8230; 깨끗한 신발이 나란히 발맞추어 나가니 기분도 좋고&#8230; 뭔가 잘될거 같다.</p>
<p style="text-align: justify;">처음 사랑한 날보다 1900배 더 예뻐요.^^ 고마워요. 앞으로도 잘 키워주세요.</p>
<p style="text-align: justify;">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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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새로운 iPad용 한컴오피스(한글) 몇일 사용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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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7 Apr 2012 14:02:07 +0000</pubDate>
		<dc:creator>베땅이</dc:creator>
				<category><![CDATA[아이패드 라이프]]></category>
		<category><![CDATA[ios]]></category>
		<category><![CDATA[IPAD]]></category>
		<category><![CDATA[아이패드]]></category>
		<category><![CDATA[한글]]></category>
		<category><![CDATA[한컴오피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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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a href="https://lh3.googleusercontent.com/-R-IUeAJfLiI/T5qfrRW3DnI/AAAAAAAAAjA/J0Qy5AOAdIs/s186/IMAGE_1B1D1053-5D34-4C1C-94C5-2BBA72012DA0.JPG" target="_blank" style="clear: left; float: left; margin-bottom: 1em; margin-right: 1em;" rel="lightbox[2380]"></a> <p>애플 제품들을 사용하다보면 별거 아닌데 걸리적 거리는 것이 있습니다.</p> <p>바로 한글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게 그다지 쓸 일은 없는데 없으면 은근히 이래저래 불편합니다. 물론 한글뷰어가 있었지만 뷰어로는 뭔가 해결이 안되는 것들이 있지요. 이번에 나온 한컴오피스 한글은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반가운 어플이었습니다. 발매 전 4월 출시라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class="separator" style="clear: both; text-align: left;"><a href="https://lh3.googleusercontent.com/-R-IUeAJfLiI/T5qfrRW3DnI/AAAAAAAAAjA/J0Qy5AOAdIs/s186/IMAGE_1B1D1053-5D34-4C1C-94C5-2BBA72012DA0.JPG" target="_blank" style="clear: left; float: left; margin-bottom: 1em; margin-right: 1em;" rel="lightbox[2380]"><img src="https://lh3.googleusercontent.com/-R-IUeAJfLiI/T5qfrRW3DnI/AAAAAAAAAjA/J0Qy5AOAdIs/s100/IMAGE_1B1D1053-5D34-4C1C-94C5-2BBA72012DA0.JPG" id="blogsy-1335535208065.1106" class="alignleft" alt="" width="100" height="126"></a></div>
<p>애플 제품들을 사용하다보면 별거 아닌데 걸리적 거리는 것이 있습니다.</p>
<p>바로 한글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게 그다지 쓸 일은 없는데 없으면 은근히 이래저래 불편합니다. 물론 한글뷰어가 있었지만 뷰어로는 뭔가 해결이 안되는 것들이 있지요. 이번에 나온 한컴오피스 한글은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반가운 어플이었습니다. 발매 전 4월 출시라는 소식만으로도 꽤나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지요. 물론 아직 osx용도 제대로 없는 상태에서 아이패드용을 먼저 출시한 것은 조금 아이러니입니다.</p>
<p>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쓸만합니다. 뉴아이패드에서 타이핑이 약간 밀리는 감이 있긴 한데 여러가지 장점에 비하면 참고 쓸만 합니다. 아이패드1에서 페이지 타이핑 밀리던 거 생각하면 양반이지요.</p>
<div class="separator" style="clear: both; text-align: center;"><a href="https://lh6.googleusercontent.com/-mGmSS1CSWtE/T5qephKF3TI/AAAAAAAAAis/VYrmGw1lb8w/s1528/IMAGE_2E90D350-65F4-47D4-91A1-D3A081CCE417.JPG" target="_blank" style="margin-left: 1em; margin-right: 1em;" rel="lightbox[2380]"><img src="https://lh6.googleusercontent.com/-mGmSS1CSWtE/T5qephKF3TI/AAAAAAAAAis/VYrmGw1lb8w/s500/IMAGE_2E90D350-65F4-47D4-91A1-D3A081CCE417.JPG" id="blogsy-1335535208016.6296" class="aligncenter" alt="" width="500" height="261"></a></div>
<div class="separator" style="clear: both; text-align: none;"></div>
<div class="separator" style="clear: both; text-align: none;"></div>
<div class="separator" style="clear: both; text-align: none;">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간략한 메뉴바입니다. 한글의 잡다한 기능이 7개 정도의 아이콘에 녹아있습니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구요. 정말 기본적인 것들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워드프로세서의 기능에만 충실한 것이지요. 가장 왼쪽부터 메뉴로 나가기 / 실행취소 / 실행복구 / 검색 / 사진 및 도형, 표 넣기 / 문자, 문단 설정 / 기타 도구모음 입니다.</div>
<div class="separator" style="clear: both; text-align: none;"></div>
<div class="separator" style="clear: both; text-align: right;"><a href="https://lh5.googleusercontent.com/-wxvr0wev3yk/T5qeoEQq_EI/AAAAAAAAAik/P2Ft7oWqmic/s915/IMAGE_90B04344-D659-4EC8-9D4A-B4B7EBA85074.JPG" target="_blank" style="clear: right; float: right; margin-bottom: 1em; margin-left: 1em;" rel="lightbox[2380]"><img src="https://lh5.googleusercontent.com/-wxvr0wev3yk/T5qeoEQq_EI/AAAAAAAAAik/P2Ft7oWqmic/s200/IMAGE_90B04344-D659-4EC8-9D4A-B4B7EBA85074.JPG" id="blogsy-1335535208033.1765" class="alignright" alt="" width="200" height="249"><br /></a></div>
<p> 아이콘 누르면 이렇게 팝업이 뜹니다. 폰트에 대한 여러가지 조정이 되고 문단 모양도 꽨 깔끔하게 바뀝니다. 아&#8230;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다른 폰트도 설치 가능합니다. 원래 아이패드는 한글 서체는 한가지만을 지원합니다만 이번에 출시된 한글 어플은 조금 특이한 방법으로 폰트를 추가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p>
<p>바로 문서 폴더 안에 독립적인 폰트 폴더를 따로 마련해 놓은 것입니다. 이 폴더에 개인적으로 폰트를 추가하면 아이패드에서 (물론 한글 어플에서만&#8230;) 폰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p>
<p>자세한 폰트 추가 방법은 <a href="http://thatcom.tistory.com/314" target="_self" title=""><strong>한컴 공식 블로그</strong></a>에 가시면 알 수 있습니다.</p>
<p>몇일 써본 결과 자간조정이자 자평 조정처럼 한글만의 고유한 설정들이 불가능합니다. 제가 자간 조정을 할 일이 있어서 찾아봤는데 지원하지 않더군요. 줄간격이나 문단조정이 되는 것도 감지덕지 해야하는지 모르겠으나 아쉬운 기능들은 있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그림자 설정까지 지원하고 클라우드로 보내기도 가능해서 기본적인 에디터로 쓸 생각만 아니라면 충분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
<p>문제는&#8230; 가격이죠 ㅜㅜ</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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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8230; 교회 다니고 싶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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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Apr 2012 23:02:06 +0000</pubDate>
		<dc:creator>베땅이</dc:creator>
				<category><![CDATA[공개일기 (日步)]]></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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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번에 사역을 시작하려 할 때 쯤&#8230; 이번엔 사역하기보다는 교회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8230; 이번에도 실패인듯하다. </p> <p>특히나 이번엔 1년을 쉬다가 다시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8230; 사람들과 가까워지기가 너무 힘들다. 뭔가 이도저도 아닌 상황 속에 있는 듯&#8230;</p> <p>어쩌면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가 이전보다 좁아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이지 요즘 같아선&#8230; 목회라는거 자신이 없다. </p>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이번에 사역을 시작하려 할 때 쯤&#8230; 이번엔 사역하기보다는 교회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8230; 이번에도 실패인듯하다. </p>
<p>특히나 이번엔 1년을 쉬다가 다시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8230; 사람들과 가까워지기가 너무 힘들다. 뭔가 이도저도 아닌 상황 속에 있는 듯&#8230;</p>
<p>어쩌면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가 이전보다 좁아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이지 요즘 같아선&#8230; 목회라는거 자신이 없다. </p>
<p>에효&#8230; 어째 아침부터 축축 처지는 소리나 하고 앉았다. 아무래도 어제 여자친구와 살짝 투닥한 것이 맘에 걸리나부다. 그래도 오늘은 쫌 생각 좀 해보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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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로리 서덜랜드 : 광고쟁이의 인생 교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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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0 Apr 2012 06:07:39 +0000</pubDate>
		<dc:creator>베땅이</dc:creator>
				<category><![CDATA[펌글창고]]></category>
		<category><![CDATA[ted]]></category>
		<category><![CDATA[로리서덜랜드]]></category>
		<category><![CDATA[키노트]]></category>
		<category><![CDATA[프레젠테이션]]></category>
		<category><![CDATA[행동경제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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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p> <p>보고 계시면 배꼽 빠집니다. ㅋㅋㅋ</p> <p>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 퍼와봅니다.</p> <p>아&#8230; 나도 다이아몬드스러운 것을 만들고 싶네요.</p> <p>보는 내내 학생회 예배 생각이 났습니다.</p> <p>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가치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p> <p>행동심리학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부가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강연인 듯 합니다.</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object width="526" height="374"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40,0"><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 /><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wmode" value="transparent" /><param name="bgColor" value="#ffffff" /><param name="flashvars" value="vu=http://video.ted.com/talk/stream/2009G/Blank/RorySutherland_2009G-320k.mp4&amp;su=http://images.ted.com/images/ted/tedindex/embed-posters/RorySutherland-2009G.embed_thumbnail.jpg&amp;vw=512&amp;vh=288&amp;ap=0&amp;ti=658&amp;lang=ko&amp;introDuration=15330&amp;adDuration=4000&amp;postAdDuration=830&amp;adKeys=talk=rory_sutherland_life_lessons_from_an_ad_man;year=2009;theme=what_makes_us_happy;theme=unconventional_explanations;theme=the_creative_spark;theme=media_that_matters;event=TEDGlobal+2009;tag=advertising;tag=business;tag=creativity;tag=economics;tag=happiness;tag=life;tag=psychology;&amp;preAdTag=tconf.ted/embed;tile=1;sz=512x288;" /><param name="src" value="http://video.ted.com/assets/player/swf/EmbedPlayer.swf" /><param name="pluginspace" value="http://www.macromedia.com/go/getflashplayer" /><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 /><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embed width="526" height="374"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src="http://video.ted.com/assets/player/swf/EmbedPlayer.swf"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 wmode="transparent" bgColor="#ffffff" flashvars="vu=http://video.ted.com/talk/stream/2009G/Blank/RorySutherland_2009G-320k.mp4&amp;su=http://images.ted.com/images/ted/tedindex/embed-posters/RorySutherland-2009G.embed_thumbnail.jpg&amp;vw=512&amp;vh=288&amp;ap=0&amp;ti=658&amp;lang=ko&amp;introDuration=15330&amp;adDuration=4000&amp;postAdDuration=830&amp;adKeys=talk=rory_sutherland_life_lessons_from_an_ad_man;year=2009;theme=what_makes_us_happy;theme=unconventional_explanations;theme=the_creative_spark;theme=media_that_matters;event=TEDGlobal+2009;tag=advertising;tag=business;tag=creativity;tag=economics;tag=happiness;tag=life;tag=psychology;&amp;preAdTag=tconf.ted/embed;tile=1;sz=512x288;" pluginspace="http://www.macromedia.com/go/getflashplayer"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 /></object></p>
<p>보고 계시면 배꼽 빠집니다. ㅋㅋㅋ</p>
<p>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 퍼와봅니다.</p>
<p>아&#8230; 나도 다이아몬드스러운 것을 만들고 싶네요.</p>
<p>보는 내내 학생회 예배 생각이 났습니다.</p>
<p>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가치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p>
<p>행동심리학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부가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강연인 듯 합니다.</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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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바울 신학의 중심으로서 고린도전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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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Apr 2012 10:17:29 +0000</pubDate>
		<dc:creator>베땅이</dc:creator>
				<category><![CDATA[바울스터디]]></category>
		<category><![CDATA[고린도전서]]></category>
		<category><![CDATA[로마서]]></category>
		<category><![CDATA[바울]]></category>
		<category><![CDATA[바울신학]]></category>
		<category><![CDATA[성서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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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한참 로마서에 관심을 갖다가 요즘은 고린도전서에 꽂혀있습니다. 그 이유를 조금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써봤습니다. 아마도 이 내용에서 조금 바꿔서 졸업 논문 서문이 될 것 같습니다. 각주를 달까 하다가 일단 그냥 올려봅니다.</p> <p>=====================</p> <p>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한참 로마서에 관심을 갖다가 요즘은 고린도전서에 꽂혀있습니다. 그 이유를 조금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써봤습니다. 아마도 이 내용에서 조금 바꿔서 졸업 논문 서문이 될 것 같습니다. 각주를 달까 하다가 일단 그냥 올려봅니다.</p>
<p>=====================</p>
<blockquote><p><strong><span style="color: #ff6600;">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2)</span></strong></p></blockquote>
<p><a title="IMAGE_F5D847A0-9BD0-452F-8C53-E8E5BDEA40AC.JPG" href="http://lh3.ggpht.com/-yCXxBOqY-KA/T41ElpMvRXI/AAAAAAAAAiE/BaaQafP-gTk/IMAGE_F5D847A0-9BD0-452F-8C53-E8E5BDEA40AC.JPG" rel="lightbox"><img class="alignleft" title="IMAGE_F5D847A0-9BD0-452F-8C53-E8E5BDEA40AC.JPG" src="http://lh3.ggpht.com/-yCXxBOqY-KA/T41ElpMvRXI/AAAAAAAAAiE/BaaQafP-gTk/w250/IMAGE_F5D847A0-9BD0-452F-8C53-E8E5BDEA40AC.JPG" alt="IMAGE_F5D847A0-9BD0-452F-8C53-E8E5BDEA40AC.JPG" width="250" /></a> 고린도전서의 서문에서 바울은 이 편지가 단순히 고린도 교회가 아니라 <strong>&#8216;각처&#8217;</strong>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런 광범위한 수신자 설정은 지금껏 가장 보편적인 바울 신학의 텍스트로 여겨지던 로마서에도 없는 것이다. 기존에 바울 서신이 회람서신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이 서신은 애초에 광범위한 교회에서 읽혀질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오늘날 고린도전서 연구에서 종종 무시되곤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p>
<p>우리는 흔히 고린도전서는 굉장히 구체적인 교회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에만 특정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로마서 같이 추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서신은 그 상황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회를 염두하고 있을 것이라 가정한다. 하지만 가장 구체적인 상황 속에 있는 서신이 사실 가장 광범위한 대상을 향해 쓰여졌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p>
<p>바울 서신을 다룸에 있어서 착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바울 서신의 주된 핵심이 신학적인 문제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서를 제외한 바울 서신들의 수신처는 모두 바울이 개척했던 교회들이다. 그들은 이미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들었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바울의 편지에서 그것을 다시 들을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바울은 부활 이전의 예수의 삶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바울이 몰랐던 것일까? 아마도 바울은 그것을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p>
<p>우리는 바울 서신에 드러난 바울의 신학이 다른 제자들과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울 서신에서 바울만의 독특한 무엇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전해받은 것을 전했다고 말한다. 실제는 어땠을지 몰라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런 신학적 대립 구도는 갈라디아서의 논지에 과도하게 빠져있을 때만 가능하다. 오히려 자신이 가보지 않은 교회에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 속에 있는 로마서에서 바울은 당시 안디옥을 중심으로 한 이방 기독교의 신학과 (더 나아가 예루살렘의 신학과) 자신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을 것이다. 즉, 로마서의 신학은 바울의 독특한 것이거나 주된 관심이기보다는 굉장히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것이지 않았을까?</p>
<p>만약 바울이 단순히 신학 교육이나 논증을 넘어선 무언가를 의도하고 서신을 썼다면, 그래서 신학적인 것보다는 그가 세운 교회에 <strong>&#8216;참 이스라엘&#8217;의 새로운 정체성을</strong> 만들어 가려는 &#8216;목회적 관심&#8217; 가지고 있었다면, 그의 서신의 무게 중심이 당시 서신들의 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앞부분이 아니라 뒷부분에 있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미 바울에 의해서 전해 듣고 모든 교회가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여겨졌을 복음의 내용이 아니라 방랑 설교자처럼 순회하던 다른 사도들과 자신을 구분할 수 있는, 그것이 무엇과 어떻게 부딫히고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구체적인 &#8216;교회의 문제&#8217;가 아니었을까?</p>
<p>그런 의미에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던 고린도 교회는 굉장히 좋은 샘플이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만들고 싶었던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대한 가장 좋은(?) 역할 모델이었을 것이다. 즉, 바울에게 있어서 신학의 중심은 자신이 가본적도 없는 로마 교회를 향해 적어주는 기초적이고 모두가 공유했을 신학적 내용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를 모델로 해서 모든 교회에 적어보낸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신학의 현실화 메카니즘이다. 즉, &#8216;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다&#8217;가 아니라 <strong>&#8216;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질 때 그 문제는 세상의 시스템과 이런 부분에서 부딫히고 그때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우리됨의 정체성이다&#8217;</strong>로 요약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전서에는 당시 대부분의 교회들이 처해있던 중요한 문제들이 거의 모두 등장한다.</p>
<p>바울의 편지는 단순한 서신이 아니라 서신 속에 담긴 어떤 의도를 가진 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것이 신학적인 어떤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고린도교회라는 특정 교회의 문제를 다루는 내용들을 통해 모든 교회에게 개념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실천적 삶의 규정들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신이 아니라 하나의 행동 강령 사례집 같은 것이지 않을까?</p>
<p>고린도전서에 등장하는 교훈들은 단순히 도덕적인 내용이 아니라 당시 바울의 교회들이 로마 사회 속에서 경험해야 했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가 만들어 내려 하는 공동체가 세상과 대립하는 접점들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제시하는 것이 고린도전서를 비롯한 바울 서신의 주된 목적이 된다. 바울 서신의 주제는 사도권의 방어도, 이신칭의도, 종말론도 아니다. 바울 신학의 중심은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관계가치로서의 <strong>&#8216;사랑&#8217;</strong>이다. 그러므로 바울 신학은 로마서가 아니라 고린도전서에서 시작해야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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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찬양인도 하는 내 모습&#82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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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Apr 2012 07:33:01 +0000</pubDate>
		<dc:creator>베땅이</dc:creator>
				<category><![CDATA[공개일기 (日步)]]></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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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p> <p>전도사라는 직업이 사실 남에게 보여지는 직업이다보니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br /> 그럼에도 아직까지 누가 제 모습을 촬영해서 보여준 적이 거의 없습니다.<br /> 어찌어찌 하다가 전도사님들이랑 있을 때 잠깐 언급했더니 큰전도사님이 그걸 기억하시고 이번 주에 찬양하는 모습을 녹화해서 아이패드에 담아주셨더군요.ㅋㅋ</p> <p>아놔&#8230; 보면서 빵터졌습니다.<br /> 발성도 엉망이고 체력도 저질이고&#8230; 좋다고 엉덩이 흔드는게 완전 코메디입니다.<br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frame src="http://www.youtube.com/embed/INKZVli_HOw" frameborder="0" width="480" height="360"></iframe></p>
<p>전도사라는 직업이 사실 남에게 보여지는 직업이다보니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br />
그럼에도 아직까지 누가 제 모습을 촬영해서 보여준 적이 거의 없습니다.<br />
어찌어찌 하다가 전도사님들이랑 있을 때 잠깐 언급했더니 큰전도사님이 그걸 기억하시고 이번 주에 찬양하는 모습을 녹화해서 아이패드에 담아주셨더군요.ㅋㅋ</p>
<p>아놔&#8230; 보면서 빵터졌습니다.<br />
발성도 엉망이고 체력도 저질이고&#8230; 좋다고 엉덩이 흔드는게 완전 코메디입니다.<br />
그래도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이랬으면 좋겠다 했던 그대로여서 감사했습니다.^^<br />
무엇보다 제가 보기에도 이사람&#8230; 행복해보이네요.</p>
<p>이런 걸 인터넷에 올렸다가 개그사이트에 도는 것 아닐까 걱정입니다. ㅋㅋㅋ<br />
혹시 누군가 보실 생각이라면 볼륨은 줄이고 보세요.^^ 화들짝 놀라십니다.<br />
보고 실컷 웃으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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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3일의 금요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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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3 Apr 2012 16:21:01 +0000</pubDate>
		<dc:creator>베땅이</dc:creator>
				<category><![CDATA[공개일기 (日步)]]></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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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3일의 금요일이라 그런가? 아침부터 지갑도 잃어버리고&#8230; 여자친구는 감기다.<br /> 뭔가 빵구난거 때우느라 하루종일 정신없었던 하루&#8230;<br /> 공부하려던 것도 못하고&#8230; 일하려고 했던 것도 못하고&#8230; 에효&#8230;<br /> 그래도 설교 준비도 못할만큼 정신빠진 것은 아니어서 감사&#8230;</p> <p>매주 과제를 해나가느라 시간이 빡빡하다.<br />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8230; 쌓아놓기만 하고 읽지를 못한다.<br /> 그래도 어제는 뭔가 영어가 술술 읽히는 컨디션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13일의 금요일이라 그런가? 아침부터 지갑도 잃어버리고&#8230; 여자친구는 감기다.<br />
뭔가 빵구난거 때우느라 하루종일 정신없었던 하루&#8230;<br />
공부하려던 것도 못하고&#8230; 일하려고 했던 것도 못하고&#8230; 에효&#8230;<br />
그래도 설교 준비도 못할만큼 정신빠진 것은 아니어서 감사&#8230;</p>
<p>매주 과제를 해나가느라 시간이 빡빡하다.<br />
읽어야 할 책도 많은데&#8230; 쌓아놓기만 하고 읽지를 못한다.<br />
그래도 어제는 뭔가 영어가 술술 읽히는 컨디션 좋은 날이어서.<br />
이것저것 못읽던 것들도 읽고 그랬다.<br />
가끔 이렇게 머릿속이 맑아지는 날이 있다.<br />
이걸 뭔가 조절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질 못하다.</p>
<p>조금씩 하자. 늘 그렇듯&#8230; 늦는 것은 뒤쳐지는 것이 아니니까&#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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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수의 무덤? 그리고 또 다른 무덤 소식&#82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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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3 Apr 2012 09:11:53 +0000</pubDate>
		<dc:creator>베땅이</dc:creator>
				<category><![CDATA[신학과 신앙]]></category>
		<category><![CDATA[고고학]]></category>
		<category><![CDATA[기독교]]></category>
		<category><![CDATA[무덤]]></category>
		<category><![CDATA[신약]]></category>
		<category><![CDATA[예루살렘]]></category>
		<category><![CDATA[예수]]></category>
		<category><![CDATA[초기기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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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style="text-align: left;"><a title="jonah.jpg" href="http://lh4.ggpht.com/-dDNkzcZtuVk/T4Y019TabOI/AAAAAAAAAhM/eQGGsviYTrs/jonah.jpg" rel="lightbox"></a>몇년 전 예루살렘에서 예수와 그 가족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주장해서 화제가 됐었던 James Tabor 교수팀이 그 무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다른 무덤을 발견해서 다시한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흔히 탈피옷 무덤이라고 하는 것인데요.</p> <p style="text-align: left;">새로운 무덤에서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큰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아마도) 또 다른 유골함에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left;"><a title="jonah.jpg" href="http://lh4.ggpht.com/-dDNkzcZtuVk/T4Y019TabOI/AAAAAAAAAhM/eQGGsviYTrs/jonah.jpg" rel="lightbox"><img class="aligncenter" title="jonah.jpg" src="http://lh4.ggpht.com/-dDNkzcZtuVk/T4Y019TabOI/AAAAAAAAAhM/eQGGsviYTrs/w500/jonah.jpg" alt="jonah.jpg" width="500" height="387" /></a>몇년 전 예루살렘에서 예수와 그 가족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주장해서 화제가 됐었던 James Tabor 교수팀이 그 무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다른 무덤을 발견해서 다시한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흔히 탈피옷 무덤이라고 하는 것인데요.</p>
<p style="text-align: left;">새로운 무덤에서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큰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아마도) 또 다른 유골함에 새겨진 그림입니다. 발굴팀은 이것이 초기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소망하며 그린 요나 그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번 발굴이 초기 기독교인들과 관련된 것이라면 몇년 전에 발굴 되었던 예수의 가족 무덤에 대한 역사적 근거가 생긴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p>
<p><del>James Tabor교수는 다빈치 코드로 대표되는 &#8216;예수왕국설&#8217;을 추종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del> (밑에 답글에 있는 내용 참조 바랍니다. james tabor는 다빈치 코드와는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즉,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고(죽지 않은거였던가?) 마리아는 예수의 아이를 임신한 채 어딘가로 도망가서 살았다더라 뭐 이런 스토린데요.. 아마도 이 발굴이 그 스토리의 무게를 실어줄 것이라 생각하는지 엄청난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p>
<p>이에 맞서 NTGateway의 운영자인 Mark Goodacre교수는 이 발굴의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이번에 발굴된 유골함의 그림이 물고기와 요나 이야기를 상징하는 그림이 아니라 당시에 사용하던 손잡이 달린 항아리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Mark의 말처럼 사실 그림은 물고기처럼 옆으로 눕혀진 채 그려진 것이 아니라 항아리 처럼 세워져서 그려져 있습니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title="IMAGE_B7F592DB-4C5E-45F4-A2D1-386613557CF0.JPG" href="http://lh4.ggpht.com/-Oy4Or5nDiTk/T4fn9r2SJFI/AAAAAAAAAhc/_LIXUab2rRw/IMAGE_B7F592DB-4C5E-45F4-A2D1-386613557CF0.JPG" rel="lightbox"><img class="aligncenter" title="IMAGE_B7F592DB-4C5E-45F4-A2D1-386613557CF0.JPG" src="http://lh4.ggpht.com/-Oy4Or5nDiTk/T4fn9r2SJFI/AAAAAAAAAhc/_LIXUab2rRw/w350/IMAGE_B7F592DB-4C5E-45F4-A2D1-386613557CF0.JPG" alt="IMAGE_B7F592DB-4C5E-45F4-A2D1-386613557CF0.JPG" width="350" height="354" /></a></p>
<p>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람모양이라고 주장하는 부분과 히브리어로 &#8216;요나&#8217;라고 쓰여져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이 상당히 작위적이고 말이 바뀌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하겠습니다.</p>
<p>어쨌든 몇일 전 ABC 나이트라인에서도 다뤘다고 하니&#8230; 꽤나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p>
<p>ABC  방송 내용은 아래 링크를 타고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p>
<p><strong><a href="http://abcnews.go.com/International/jesus-tomb-controversy-rages-archeologists-explore-2000-year/story?id=16111993" target="_blank">링크</a></strong></p>
<p>추가적으로 Mark Goodacre가 정리한 <strong><a href="http://ntweblog.blogspot.com/2012/04/jesus-discovery-summary-and-top-ten.html?utm_source=feedburner&amp;utm_medium=feed&amp;utm_campaign=Feed%3A+MarkGoodacresNTBlog+%28Mark+Goodacre%27s+NT+Blog%29" target="_blank">탈피옷 무덤 개요와 10가지 문제점</a></strong>이란 글을 읽어보시면 좋습니다.<br />
물론 영어입니다. -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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