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남을 위해 살고 있을까?

남을 위해 무엇을?
나는 교회에서 학생들이나 청년들을 가르칠 때 예수의 메시지를 남을 위한 나눔의 삶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남을 위해 살고 있을까? 사실 이것을 객관적으로 측정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렇다보니 교회에서 이런 나눔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되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을 위해 사는 삶… 나는 어디쯤 있을까? 나름 목회라는 길을 선택하고 직업 자체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보니 이런 물음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어느 정도 기준 이상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은 문제가 안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때는 다르다.

뭔가 눈에 보이는 결과로 객관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가장 쉽게 객관화 시키면서도 내 삶의 가치관을 쉽게 반영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돈’이다. 예수님께서도 제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던가? 이것이 모든 것을 재단하는 척도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난 얼마나 많은 돈을 남을 위해 쓰고 있을까?

가계부 쓰기
어릴적 용돈기입장이든 스마트폰 어플이든 누구든 한번쯤은 금전출납부 형태의 가계부를 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돈의 흐름을 잘 알 수 있고 혹시 쓸데 없이 지출된 돈이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우리가 쓰는 돈을 이렇게 기록해보자. 단, 두 칸으로 나눠서 한쪽에는 ‘나를 위해서 쓴 돈’, 다른 한쪽엔 ‘남을 위해서 쓴 돈’을 기록한다. (여기서 한쪽의 기준을 ‘하나님을 위해’라고 해버리면 기준이 애매해지기 때문에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내가 쓴 돈을 기록하면 내가 쓰는 돈의 몇%정도가 남을 위해서 쓰여지는 돈인지 살펴볼 수 있다. 월말에 양쪽을 합산해서 통계를 내어보면 더 확실히 보일 것이다.


물론 이 기준이라는 것이 상대적이다. 축의금 같은 것은 남에게 쓰는 돈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중에 수금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이 돈은 나를 위해서 쓰는 돈일까? 남을 위해서 쓰는 돈일까? 답은 없다. 고민해보자. 내가 지금 내는 축의금은 나를 위해 내고 있나? 아니면 정말 그 사람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내고 있나? 이렇게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그 돈을 내는 축하의 마음은 달라질 것이다.

‘우리’를 위해 쓰는 돈은 왠만하면 나를 위한 것으로 치자. 우리 가족, 우리 자녀, 우리 친척… 적어도 ‘우리’라는 관계로 묶을 수 있는 것들은 배제하자. 물론 애인과 쓰는 데이트 비용도 안된다. 우리 교회… 안된다. 우리 교회의 어떤 형제… 괜찮을 것 같다. ‘우리’라는 관계 속에 묶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나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요소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역시 특별히 기준이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나의 자녀를 위해 쓰는 것을 그 자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아이가 나와 관계 없는 아이였을 때도 똑같이 쓸 수 있는 마음이라면 그리 생각해도 좋다.

누군가를 돕기 원한다면 후원할 곳을 직접 찾아보자. 돈이 잘 쓰이고 있는지, 허투루 쓰이지는 않는지 꼼꼼히 살펴보자. 직접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고 그것을 위해 지불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워나가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자동이체를 하지 말고 매달 직접 챙겨보라. 자동이체는 내가 무엇을 위해 지출한다는 느낌보다 그들이 내 돈을 빼간다는 느낌이 들고 돈을 쓰는 이유와 목적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렇게 되면 힘들여 이 짓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쓰는 돈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필요가 있다.

신뢰할만한 사람이 있다면 함께 실천해보고 서로 비교하면서 이 요소가 정말 나를 위해서 사용한 것인지, 아니라면 어떻게 써야하는지 비교하고 토론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썼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럴 땐 그것이 왜 다른 이를 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정말 그 사람을 위해 썼는지… 그러다보면 내가 생각지 못했던 내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거나 전혀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십일조 제대로 하는 법
성경에 보면 십일조라는 것이 나온다. 갑자기 쌩뚱맞게 십일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십일조가 본래 교회에 내는 세금이 아니라 ‘가계부의 오른쪽’을 위한 돈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십일조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구약 이후에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십일조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다만, 십일조는 절대 교회에 하지 말라.

오늘날 교회에서 십일조는 꽤 커다란 수입원이다. 교회 헌금을 분류하다보면 감사헌금보다 십일조 액수가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한국교회의 십일조만 모으면 전 세계 기아 문제가 해결된다고 할만큼 한국교회의 십일조 액수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문제는 성경에 언급되는 십일조가 교회건물 유지비나 성도들의 식사비 혹은 교역자 월급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부양하는 목적으로 쓰여지는 돈이었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매 삼 년 끝에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모아서 성 안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레위 사람이나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이 경영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신명기 14:28-29)

신약에서 십일조의 근거가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예수를 통해 드러난 신약의 하나님은 십분의 일이 아니라 모든 것을 요청하신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분을 따르기 원하시고 우리의 모든 시간을 당신을 위해 바치기 원하신다. 신약 시대 이후에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모든 삶을 그분께 드리기로 약속하는 일종의 계약금 같은 것이다. 십분의 일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최소의 약속인 것이다. 여기서 ‘계약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나머지 잔금도 치뤄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계약금 치루기도 만만치 않다. 이 말을 흔히 교회에서 십일조 꾸준히 하기 어렵다고 하는 의미처럼 알아듣지 않기 원한다. 오히려 교회에 소득의 십분의 일을 뚝 떼어서 내버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기존 교회에서는 그것을 종교적 보상이나 장래에 받을 것을 위한 투자 정도로 설명해 버리니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 쉬울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그 돈이 어디 쓰이는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 목적이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예산/결산을 얼렁뚱땅 넘겨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 폐해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그럴 경우 내가 낸 돈이 나를 위해 쓰이는지 남을 위해 쓰이는지 알 길이 없다.(그냥 ‘주님을 위해’라는 말로 얼버무려 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십일조를 교회에 하지 말기를 권한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직접 후원할 곳을 찾으면서 어떤 단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에 돈을 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를 고민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내 주변에 형제 자매들 중 지금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나아가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남을 위해 쓰는 십일조의 본래 의미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기준은 상대적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돈으로 추산할 수 없는 노력과 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돈만 가지고 계산되어질 수는 없다. 요즘은 재능기부 같은 것도 있어서 이 기준을 모든 삶에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내가 여기서 제시하는 방식은 다른 이를 위한 삶을 실천하기 위한 시작점에 불과하다. 어떤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그것의 현재 상태를 조금 더 객관적이고 명확한 결과물로 만들어 보여주는 진단서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진단서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매번 돈을 사용할 때마다 이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남을 위한 것인지 솔직하게 물어보기 시작할 때 그 노력은 내가 쓰는 돈의 의미와 내가 그 돈을 쓰는 대상과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삶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명확히 보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반은 치료된다고 할 수 있다.

– iPad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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