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잘 쓰는 사람

예전엔 책의 서문이란 건 시상식에서 스타들이 하는 수상소감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도움 준 사람들의 이름을 혹시나 빼먹을까 고민하면서 주저리주저리 읇어대는 그런 공간 말이다.

제임스 던의 로마서 주석 읽기를 시작했다. 서문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서론을 참 잘 쓴다는 것이다. 던의 서문은 이 책이 필요한 이유를 강력히 주장하는 다른 책과는 달리 굉장히 겸손하다. 이 책이 부족한 부분, 책을 쓰면서 신경쓰기 힘들어 빼먹은 부분을 언급한다. 이런건 나에게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서문의 마지막 구절도 우리나라 책들의 식상한 서문들처럼 누구누구에게 감사한다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로마서 주석 서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마침내 로마서를 완간하니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 지난 5년만에! 하지만 나는 합격했는가?

이런 느낌은 던의 책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예수 세미나의 연구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을 즐겨 읽는 것은 어찌보면 절반은 그의 서문 때문이다. 그의 서문은 마치 한편의 신앙고백을 듣는 것 같다. 정통 기독교의 예수상을 산산히 부숴버리기를 시도하는 크로산이지만 그에게 이런 예수상은 그저 학문의 대상이 아니다. 그의 서문엔 자신이 믿는(재구성한) 예수를 향한 신실한 신앙 고백이 가득하다.

글을 읽으며 내가 읽는 책의 서문을 쓰는 작가의 마음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왜 서문은 가장 처음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에 써야하는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나의 삶에 서문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를 고민해 본다.

– iPad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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