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만들어진 예수 : 누가 예수를 왜곡하는가? – 크레이그 에반스


작년엔 휴일이 전부 주말과 겹쳐 있었던지라 긴 연휴를 보내는 것이 참 오랫만이다. 요새 일하느라 책읽을 시간이 없었던 터라 연휴 첫날 여자친구와 함께 교보문고에 가서 죽치고 앉아 책을 보기로 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읽고 나올 책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최근 새물결 플러스에서 발간한
[만들어진 예수]를 보기로 했다. 출판사에겐 미안한 일이다. 사서 보지 않고 서점에서 보고 오는거니까… -_-;;; 나중에 돈 되면 살 생각이다. 대신 리뷰라도 잘 써야할 듯… 

이 책은 크레이그 에반스 교수가 쓴 책인데
[누가 예수를 왜곡하는가?]라는 부제는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도 발매 되었던 바트 어만의 [예수 왜곡의 역사]를 겨냥한 듯한 제목이다. 바트 어만과 크레이그 에반스의 공개 토론은 전에 한번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한 적이 있다. (토론 동영상은
여기)

저자의 주된 논쟁의 대상은 크게 세부류로 나눌 수 있다. 역사적 예수 문제를 이슈화 시킨 지저스 세미나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다빈치 코드]같은 종류의 소설을 써대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뭐라고 묶어야 할지…) 그리고 그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바트 어만이다. 물론 에반스가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집단들도 서로 친하진 않다. 바트 어만이 다빈치 코드의 역사적 오류를 다룬 책은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이미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다. 에반스가 비판하는 내용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논지는 바트 어만도 크게 다르진 않다. 
어쨋든 에반스는 이렇게 다양한 집단을 상대로 성경의 진정성을 변증한다. 때로는 공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방어하기도 하면서 적절하게 내용들을 다뤄 가는 것을 보면서 그의 학문적 깊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한사람 한사람 토론 상대자들의 논지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에반스의 주된 방법론은 여러가지 역사적 근거들을 통해 상대의 헛점을 비판하고 현재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바트 어만이나 예수 세미나, 다빈치 코드류의 소설들이 선전하는 역사적 증거라는 것이 많은 부분 왜곡/과장된 것이고 행여 사실인 부분들도 그것이 직접적으로 그들이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거나 신앙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한다. 
이런 논지에서 에반스의 비판은 정당하다. 이미 예전부터 지저스 세미나의 편향된 자료 선택이라던가 평가, 혹은 의도적으로 자료를 무시하는 형태들 그리고 종말론적 배경을 무시한 예수상은 이전부터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비판받아 왔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바트 어만의 논지 역시 지저스 세미나의 그것보다는 덜하다고 하더라도 의도된 결론, 혹은 잘못된 전제로 인해 비판받아 왔던 부분들이다. 다빈치 코드 류의 소설이 보여주는 허구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결론적으로 에반스는 그들이 제시하는 대부분의 증거나 성경에 대한 평가가 왜곡되었고 과정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런 왜곡과 과정에 근거한 잃어버린 기독교, 다른 예수의 가능성은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에반스의 이 책은 바트어만이나 다빈치코드 그리고 지저스 세미나를 주도하는 학자들의 반대편에서 우리 신앙의 건전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이 몇군데 있다. 한가지 분명하게 해두어야 할 것은 여기서 제시하는 문제들은 에반스의 결론을 비판하는 것이기보다는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 대한 비판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첫번째로 
바트 어만에 대한 에반스의 비판은 정당한 것일까? 바트 어만이 그려내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극단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이전에 그의 책을 리뷰하면서도 한번 지적한 적이 있다.([성경 왜곡의 역사] 서평 보러 가기) 하지만 학문적으로 봤을 때 어만에 대한 에반스의 비판은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어만이 ‘서로 다른 기독교가 경쟁하며 존재했다’고 말할 때 어만은 예수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던 1세기의 기독교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외경들이 기록되었다고 보는 2세기 기독교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 시기는 크레이그 에반스가 ‘이단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종파들이 분명 존재하던 시점들이다. 
이 점을 인정하고 이야기를 진행할 때 부딫히는 문제는 1세기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 에반스가 정통 기독교라고 말하는 2세기의 그것과 100% 완벽하게 동일했느냐의 문제이다. 이것은 약간 문제가 복잡한데, 중요한 것은 어만의 주장처럼 2세기의 모든 종파들이 스스로를 기독교, 그것도 정통 기독교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에반스 스스로가 말하듯이 2세기의 논쟁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예수의 ‘신성’이 아니라 ‘인성’에 관한 문제였다. 즉, 모든 종파들이 예수가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혹 에비온파와 같이 예수의 신성을 100% 인정하지 않는 집단도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써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는 점에는 동의했다고 봐야한다. 즉, 에반스가 이단이라고 말하는 2세기의 다양한 기독교 종파들도 초기 기독교의 고백과 자신들의 신앙 사이에 모순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만은 여러개의 종교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신앙 고백 안에 서로 다른 이해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그룹으로 모였으며 서로 주도권을 잡고자 노력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1세기의 기독교가 촘촘하게 짜여진 조직신학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순진한 상상을 하지 않는 이상 1세기의 초기 기독교로부터 2세기의 정통 기독교만이 그 신조를 전승했고 나머지는 혼합되어 변질되었다는 주장은 학문적인 논증일 수 없고 어만이 의미한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이처럼 에반스가 비판 대상의 주장을 올바르게 요약하고 공정하게 다루는지에 대한 염려는 바트 어만뿐 아니라 지저스 세미나에 대해서 평가하는 부분에도 동일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두번째로 연대 측정에 관한 부분이다. 에반스는 지나치게 외경들의 연대를 앞당기려는 지저스 세미나의 의도를 비판하면서 공관복음서들의 연대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 연대가 과연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연대인지는 조금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다. 특히나 마가복음의 연대를 예루살렘 성전 멸망 이전으로 추정하는 것은 많은 이견들이 있다. 즉 그가 일반적인 학자들의 이해라고 말하는 기준은 대부분 지저스 세미나를 비롯한 진보적 학자들의 의견을 제외한 학자들의 의견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그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한다고 하는 것도 정말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에반스는 ‘잃어버린 기독교’에 대해 비판하면서 초기 기독교 안에 그렇게 심각한 차이가 존재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바울서신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에서 온 자들’이라는 점이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에 대한 언급을 무시한 것이고 이방인 선교나 율법 준순에 있어서 교회 내부에 있었던 의견충돌을 간과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에반스는 예루살렘 회의를 언급하면서 교회 안에 그런 차이가 없었다는 근거로 내세운다. 즉, 교회가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회의가 필요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차이들이 존재했다는 반증이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일곱집사 선정과 스데반의 순교 사건의 배경이 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헬라계 그리스도인 사이의 분열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그것이 신학적인 부분이 아니고 차후에 해결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으로부터 축출되는 사람들이 헬라계 그리스도인들에 한정되었다는 점은 유대인과 헬라인으로써 그들이 가지고 있었을 신학적 차이가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분명 다른 목소리가 있었고 그것을 조절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가능성과 2세기에 나타나는 외경들을 전제로 할 때 1세기부터 어느 정도의 스펙트럼이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닐까?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으면서 책을 잘못 골랐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담고 있는 내용의 깊이나 그 가치에 있어서 잠깐 앉아서 읽고 끝낼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기억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서평을 쓰면서도 옆에 그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만큼 학문적으로도 그렇고 기독교의 뿌리부터 오해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봤을 때도 이 책은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은 가치 있는 책이다. 비록 조금 전문적인 내용들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성기문 교수의 번역이 훌륭해서 어렵지 않게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껏 많은 기독교 변증서가 있었지만 에반스의 책은 기독교의 교리를 변증하기 보다는 역사를 변증한다는 측면에서 지금까지 있어왔던 다른 기독교 변증서와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기독교 신앙으로 고민하고 계신 분들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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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오래 전에 올리신 글인데, 바트어만과 크랙 에반스 영상 검색하다 우연히 들어와 읽게 됐네요 ^^

    딱 제 관심분야인데 공유할 수 있는 분이 있어 너무 반갑습니다~

    위에 쓰신 글의 내용 중에 다른 의견을 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요.
    마지막에서 세번째 문단과 그 다음 문단에서 쓰신 내용에 관한 겁니다.

    일단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여러 소스들을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 진술로 볼 것이냐 아니면 문학적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에서 저는 후자 쪽입니다. 그래서 스데반 순교 직후에 일어나는 박해, 그리고 축출사건에서 역사성을 찾기는 무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즉, 박해.축출.흩어짐으로 이어지는 급진적인 묘사와 바울(사울)의 첫 등장이 맞물리고 있다는 점에서, ‘열둘’에서 ‘바울’에게로 포커스가 넘어가고 선교 대상이 ‘유대인’으로부터 ‘이방인’으로 바뀌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문학적 표현’이라 봅니다. 그래서 기독교 공동체 내 갈등의 근거를 스데반 죽음 직후의 박해사건에서 찾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 초기 기독교 내에 얼마만큼의 차이가 존재했는가? 라는 질문에 있어서만큼은 바트 어만의 의견은 비약이 과하다고 봅니다.  1세기에 한해서라면 아마 기독교 내의 갈등보다는 기독교vs유대교의 갈등이 주요했겠죠. 스데반의 설교 내용 또한 유대교에 대한 비판으로 그 칼날이 겨눠져 있으니까요. 사도행전이 거의 1세기 말에 서술되었다는 점에서 기독교 내의 갈등이 어만의 말처럼 심각했다면 그에 대한 언급이 없을 수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시대에 쓰여진 성서 어디에도 유대교와의 갈등에 준하는 기독교 내 갈등요소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회사적으로도 51년경의 클라디우스 황제의 유대교 축출사건을, 기독교와 유대교 간의 갈등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고, 64년의 네로황제의 박해(아마 행전 박해사건의 역사성을 찾는다면 그 근거가 될만한 가장 유력한…)때도 헬라파와 히브리파의 구분없이 박해가 있었고, 예루살렘 교회가 흩어지고 지도자들은 펠라로 옮겨갔다는 것을 말하더군요. 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의 경우도 물론 심각한 문제이긴 했지만, 이방인 할례에 대한 문제는 대체적으로 합의에 이르렀고, 그것으로 인한 분파생성이나 갈등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갈등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바트 어만보다는 크랙 에반스의 의견이 더 타당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 댓글을 읽어보실지는 모르겠지만, 제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

    1. 부족한 글인데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서학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이지요. ㅋㅋ 

      말씀해주신 부분에 대해서 짧게 답을 드리겠습니다. 앞에서 사도행전의 문학성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는 스데반의 설교 역시 문학적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내의 갈등보다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갈등이 주요했다는 것은 초대 교회의 상황이라기보다는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상황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어만의 주장처럼 2세기 이후 정경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다면 더욱더 초대교회의 상황이라고 보기는 힘들지요. 물론 어만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긴 합니다.

      특히나 사도행전의 경우 많은 학자들이 예루살렘 기독교와 바울 기독교를 하나의 틀로 이어내려 하는 의도가 담긴 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은 사도행전의 역사성보다는 바울 서신에 언급된 부분들만을 고려했을 때 그려지는 그림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헬라파와 유대파의 갈등 문제는 사도행전의 역사성을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면에 깔려있는 있는 7집사로 상징되는 지도자 그룹과 12사도로 지칭되는 지도자 그룹의 갈등 상황을 통해서 유추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7집사를 복음전하는 일이 아니라 구제하는 일을 위해서 세웠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그들의 사역은 복음 전하는 데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저자가 서로 분리되어 존재했던 두 지도자 그룹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엮어 내려는 시도라고 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갈등에 준하는 기독교 내의 갈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역시나 에반스처럼 어만의 주장을 공평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먼저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을 서로 분리된 종교의 상호 비판으로 보느냐 아니면 유대교 내부의 소종파 운동으로 보느냐에 따라 갈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그대로 역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후자의 의견이 더 성경이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교로부터 기독교가 분리된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겠지요. 물론 바울 서신과 마가복음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약성경이 그 이후에 쓰여졌으니 말씀하신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라고 하시면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이 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고 있는 70년 이전은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추출사건 역시 ‘유대교 내에 크레스투스로 인한 소동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인 것은 맞지만 아직 그 둘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로마인들은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반면 신학적인 차이는 그보다 더 다양했다고 봅니다. 유대교 내에도 에세네파나 쿰란종파,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젤롯당처럼 다양한 신학적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입니다. 여기에 아마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나사렛당도 더하면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흔히 기독교만은 일치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신빙성이 없다고 봅니다. 특별히 어만이 말하는 외경의 신학이 반영하는 다양한 집단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신약 성경 내에 존재하는 다양성은 개별적인 공동체 간에 있었던 차이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공동체는 유대교와 자신을 구분하기보다는 자신이 진정한 이스라엘임을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어디가 더 차이가 있을까요? 

      부족한 글에 부족한 답이었는데 답이 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자주 댓글 남겨주시면 성실히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짧게 쓰려 했는데 안 짧네요. -_-;;

      1. 답변 감사합니다 ^^

        스데반 설교에 관한 언급은, 그 역사성을 전제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삽입한 사도행전 저자의 입장을 스데반 설교를 통해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세기를 살아가던 저자에게서 드러나는 주요한 갈등상황이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갈등이라 본 거에요.

        그리고 제 단어선택 자체가 ‘유대교’와 ‘기독교’로 되어 있어 오해하셨을 수 있는데, 저도 당시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인 공동체가 유대교내의 한 종파로 분류 되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헬라파와 이방인의 구분은 제 글의 어떤 부분을 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전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헬라파에 관한 진술들이 ‘복음전파 대상’에 있어서 ‘유대인’에서 ‘이방인’에게로 넘어가는 과정을 이어주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겁니다. 일곱집사에 관한 진술에서 헬라파와 히브리파의 갈등을 유추하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이구요. 

        다만, 헬라파와 히브리파 간의 갈등이 얼마만큼 심각했던 것이냐에 대한 물음에는 행전이 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바울서신에서 드러나는 예루살렘교회와 바울파의 갈등에서 보듯 그것이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는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만, 안그래도 소종파로서 그 존립이 불명확했던 기독교공동체가 개별 공동체 간의 갈등을 얼마만큼 확대시킬 수 있었겠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유대교는 충분히 소종파가 나뉠 수 있었지만 기독교공동체 안에서의 분열은 곧 자멸에 가까운 것이었겠죠. 각 공동체별로 다양한 신학이 형성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 봅니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어떤 대립과 경쟁의 구도로 보는 것은 조금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종파에서 하나의 종교로 수렴해가는 과정정도로 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긴장관계는 그 선을 훨씬 벗어났다고 보고요.

        행전의 박해기사를 네로의 박해와 연관시킨 것은, 클라우디우스 때는 유대교, 기독교 구분 없이 축출했고, 네로 때에 와서야 비로소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일어났고 이 때 기독교인들 다수가 거주지를 이동했다는 기록때문입니다. 하긴 어차피 행전의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 없는 셈이긴 하네요ㅎ 어쨌든 행전의 스데반설교-박해기사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은’유대교에 대한 비판(스데반 설교-특히 복음의 정통성에 관련해서)’과 ‘기독교인들의 이동, 흩어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나마 네로 박해가 시기가 아닌 내용상으로는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한 거에요.

        초기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크고 작은 갈등과 신학적 차이들이 있었다는 것은 물론 동의합니다만, 그것이 경쟁적으로 투쟁하게되어 최종 승리한 집단의 편협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논조의 바트어만의 결론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투쟁이라 할만한 기독교내의 갈등은 역시 2세기에나 가능했던 거죠. 물론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미 1세기부터 이것이 진행되고 있었고 신약성서의 여러 부분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일부분 공감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1세기에 한해서는 분명 투쟁보다는 합의와 수렴에 가까운, ‘다듬어져가는 차이’였다고 봅니다. 시대정황상 ‘기독교들’이라고 할만한 종파들을 가질 여력도 없었을 것이고, 신약성서의 이문들이나 각 서의 진술 차이만을 가지고 ‘기독교들’의 존재를 유추한다는 것은 상당부분 상상력을 동원하여 부풀리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것 참;; 쓰다보면 길어지네요… 신기하네…

        1. 그렇지요^^ 역시 쓰다보면 길어집니다.

          역시 결론은 거의 비슷해지는 것 같습니다. 

          몇가지만 덧달면 헬라파와 유다파의 갈등은 행전이 말할 수 없기에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행전 자체가 이것을 봉합하고 통합시키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더 미약하게 적을 이유는 없었겠지요. 

          신학이 하나로 수렴해가는 과정이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수렴 과정이 갈등이 없거나 작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서로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바트 어만이 말하듯이 나중에 정통이라고 부르는 한 종파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수렴되었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 문제제기를 약화시키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합의와 수렴이라는 이유로 ‘기독교들’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큰 상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사도행전의 프레임을 벗어나면 가능성이 극히 낮아지는 상상이지요. 물론 조그만 공동체에서 분열이라니… 자멸에 가깝지요.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들의 정체성이 아직 ‘기독교’로 명확히 선 그을 수 없는 상태에서 그것이 곧 자멸을 초래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공동체끼리 서로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더 가능성은 커지지요. 마태공동체와 누가공동체는 서로 알지 못했다는 것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합니다. 굳이 분열이 아니어도 다양성은 설명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수렴의 과정이었다고 분열이 없었던 것이 되거나 그 갈등의 심각성이 약화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유대교와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행전의 박해 얘기는 자꾸 뭔가 잘못도는 느낌이네요. 저는 그것이 로마의 박해를 반영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행전의 박해가 역사적인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유대교 내부의 갈등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의 박해가 행전 기록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헬라파와 이방인의 구분은 제 글에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말씀하신 것처럼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이어주고 있다는 말에 대한 답이었을 겁니다. 글이 길어지니 답글이 어떤 내용에 대한 답글인지 추적하기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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