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회’를 배달하나?

철가방 교회 프로젝트를 여기저기 광고하면서 여자친구로부터 질문 하나를 받았다. 왜 설교나 설교자가 아닌 교회를 배달하냐는 것이다.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고 내가 철가방 교회 프로젝트를 시작한 주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질문인 것 같아서 그에 대한 답을 적어보려고 한다.

교회를 배달한다는 말이 왜곡된 목회자의 자기 이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고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쉽게 말해서 신학을 했다고 해서 자신이 곧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이런 염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고 충분히 걱정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과거 가톨릭의 기본적인 신학 흐름이기도 했고 지금도 많은 목사님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목회자의 자기 인식 문제는 언제나 경계하지 않으면 쉽사리 선을 넘어 버리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배달한다는 말이 이런 오해를 불러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설명하기 전에 분명히 해야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제부터 내가 설명하는 것은 내가 사람들과 만나서 드릴 예배의 내용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목적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앞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무엇이 되었든 예배를 배달 시키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와 관련된 ‘강의’를 듣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철가방 교회 프로젝트가 찾아 가서 하는 것은 절기와 사람, 그리고 장소에 맞는 예배이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찾아와 주는 교회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어떤 목적으로 이 일을 시작했으며 [교회]를 배달한다는 말이 갖는 의미이다.

일단 내가 이해하고 있는 기본적인 전제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교회란 믿는 자 두세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다. 거기에 목회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목회자는 예배라는 모임을 위해서 교회가 자기들의 기능을 위임한 사역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철가방 교회 프로젝트는 이런 목회자의 기능적 측면만을 극대화 한 것이다.

철가방 교회 프로젝트가 찾아가려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적인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사회적인 이유로, 혹은 정서적이거나 신앙적인 이유로 교회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즉, 앞에서 이야기한대로라면 그곳은 목회자가 있고 없고와 관계없이 원래 교회이다. 이 말은 철가방 교회 프로젝트가 그들을 찾아가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교회라는 말이다.

문제는 그 교회가 오늘 날 종교라는 환경 속에서 교회로 인정받기를 거부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주일에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 수 있다면 그 자리는 원래 교회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또 다른 교회공동체로부터 교회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주일에 교회 안나가고 일하는 사람들]로 취급된다. 혹은 스스로 그런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경우도 있다. 또는 자신이 곧 교회라는 인식 없이 목회자가 없으면 예배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대부분의 현상의 원인은 우리나라 신앙인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목회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인한 것이다. 철가방 교회 프로젝트는 이런 사회적 오해들로 만들어진 현상을 역이용하여 교회의 본래적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프로젝트이다. (너무 말이 복잡한가?-_-;;)

철가방 교회 프로젝트의 본질적인 목적은, 본래 교회이지만 그 지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교회에게 사회적인 교회의 시스템을 배달하는 방식을 취한다. 여기서 사회적인 교회 시스템이란 본래적인 의미의 교회가 아닌 사회적으로(비록 오해에서 비롯되었지만) 인정되는 형태의 교회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목회자가 있어야 교회인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인식이 목회자가 있어야 교회라고 생각한다면 그곳에 목회자를 배달해서 사회적 환경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켜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교회의 옳바른 의미를 교육한다거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은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아니다. 철가방 교회 프로젝트는 잘못된 인식따위는 쿨하게 그대로 포용한다. 본래 교회이지만 교회의 지위를 박탈당한 현장에 교회의 지위를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이를 통해서 짧게는 기존 교회의 틀 밖에 존재하는 잃어버린 교회를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이렇게 ‘배달하는 교회’라는 뻘짓을 통해 사회적으로 고정된 교회 개념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킬 수 있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결국엔 건물과 목회자로 상징되는 교회 개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이 프로젝트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예배나 목회자를 배달해주는 것을 넘어 교회를 배달한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내 생각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또 이것이 옳은 개념인지 아닌지에 대한 검증도 나 스스로 하기엔 역부족이다.(그래서 될수록 많은 의견을 참고하려 노력 중이다.) 어쩌면 혼자서 떠들다 아무 소득 없이 끝날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이 시도가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떨림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시작해 보는 것이다.

‘대안없이 비판만 하지 말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대안 없이 비판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이 말이 마치 완벽한 대안이 없으면 비판도 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라는 틀 속에서 우리는 이와 비슷한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도 자주 완벽하지 않은 대안은 시도하면 안되는 위험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고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나는 비록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내딛을 수 있는 한걸음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나중에 고쳐나갈 수 있다. 모든 것은 완벽이 아닌 완벽하지 않은 한걸음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내가 이 말도 안되고 별다른 호응도 없는 일을 시작하는 이유이다.

– iPad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3 Comments

  1. 목회자가 없으면, 주일에 모이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고 예배가 아니라는 인식이 너무 견고하지요.
    공격적인 의도가 없으실지라도 철가방 프로젝트는 그러한 관념에 정면도전하기에 아마 위협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인식의 개선이라기보다는 필요한 자들을 위한 섬김으로 보이네요. 개념이 옳은지 검증도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사람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우선이라는 점에서 지지합니다.

  2. 예배 할 수 없는 성도에게 찾아가 예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철가방 교회 프로젝트의 취지가 마음에 드는 군요.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환경에 있는 사람도 많이 있으니깐요. 이 성도들을 제자 삼아 그들의 환경(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환경)을 딛고 일어 설수 있는 믿음과 비전을 심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즉 철가방 교회는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교회에 나올 수 있게 이끄는 역할만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에 근거해서 드린 이야기 입니다.

    1. 제 글을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교회 밖에 있는 교회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즉, 교회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교회에 안가도 예배드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이유는 그들을 교회로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그들의 필요와 마음을 무시하고 상황만을 판단하며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부당한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1)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행 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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