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누가와 바울이 말하는 성령과 하나님 나라 – 조영모

이 책은 현재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약을 가르치고 계신 조영모 교수의 책이다. 누가복음을 공부하고 바울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성령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을 선택한 큰 이유였다.

저자는 첫 장에서 지금껏 누가와 바울의 성령 개념에 대해서 다루어 왔던 멘지스나 던, 터너와 같은 학자들의 관점을 요약한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이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르게 말하면 뒷 부분은 별 것 없다는 뜻이다.) 저자에 따르면 멘지스는 중간기 문헌에 나타나는 ‘영’이 ‘예언의 영’이라고 주장한다. 누가는 이런 중간기 문헌의 성령 개념을 그대로 가져오지만 바울 서신은 성령을 생명의 원천인 ‘생명의 영’으로 나타낸다. 멘지스는 이것을 근거로 바울과 누가 사이에 비연속성을 주장한다. 반면 던은 누가와 바울 모두에게서 ‘생명의 영’ 개념이 나타난다고 주장하며 바울과 누가의 연속성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터너는 중간기 문헌에 ‘예언의 영’ 개념과 ‘생명의 영’ 개념이 함께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저자의 주 비판 대상은 터너이다. 저자는 중간기 문헌부터 시작하여 자신가 대화하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본문들을 되짚으며 자신의 논리를 세워 나간다. 하지만 서론에서부터 저자 스스로가 느끼고 있듯이 그의 결론은 멘지스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다만 방법론적으로 공관복음의 ‘하나님 나라’ 개념과 바울의 ‘성령’ 개념을 비교하면서 바울의 ‘성령’언어가 예수의 ‘하나님 나라’개념을 대체하는 언어였을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공헌이라고 하겠다.

저자의 논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바울의 하나님 나라는 공관복음서와 유사하고 바울의 성령 개념도 공관복음의 하나님 나라와 유사하다. 하지만 누가의 성령 개념은 하나님 나라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여기서 누가의 하나님 나라가 공관복음의 하나님 나라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볼 때 누가의 성령 개념은 바울의 성령 개념과 다른 것이 된다. 즉, 바울의 성령 개념은 하나님 나라와 직접 연결되는 ‘생명의 영’인 반면 누가의 성령은 하나님 나라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중간기 문헌 전통의 ‘예언의 영’이다.

여기에 한가지 틈이 보인다. 그렇다면 바울의 하나님 나라와 성령은 어떤 관계인가? 바울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개념과 연결되는 두가지 개념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왜 바울이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성령을 하나님 나라 개념과 겹쳐지게 하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누가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와 성령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성령과 직접 연결되는가? 만약 두가지 다 아니라면 굳이 ‘공관복음의 하나님 나라’라는 가상의 개념을 끼워맞춰서 논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물론 이런 반문도 소위 ‘공관복음’의 신학이라는 것을 하나의 일관된 신학으로 종합하는 것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독자와 목적, 언어를 구사하는 세가지의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 부르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나같은 사람은 공관복음의 하나님 나라라는 신학적 틀을 미리 상정해 놓고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의미없는 행동처럼 보일 뿐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결과적으로 저자는 바울과 누가와의 관계에 관한 한 멘지스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가는 중간기 문헌의 ‘예언의 영’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반면 바울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이 두가지가 서로 다르다는 것과 바울의 ‘성령’ 개념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개념을 대체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는 점까지 설명했다. 문제는 왜 누가는 바울의 개념을 다시 중간기의 그것으로 되돌리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멘지스처럼 누가가 바울과 접촉이 없었다고 말하면 되는 것일까?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바울이 기존에 내려오던 유대교의 성령 이해 위에 무언가 획기적인 것을 첨가했다면, 더군다나 그것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반영한 것이라면 왜 누가는 그것을 다시 이전의 이해로 돌려 놓는가? 누가복음이 바울 이전에 쓰여진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펴지 않는 이상 저자는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한다. 바울은 정말 새로운 것을 ‘첨가’하긴 한 것일까?

누가복음과 바울서신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그다지 추천해주고 싶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의 주된 목적이 그것임에도 이 책은 바울과 누가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대안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듯 보인다. 바울과 공관복음서라면 몰라도… -_-;;
또, 이 책이 전해주려는 것에 비해서 저자의 논리는 과하게 꼬여있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명확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겠다. 논증은 지루하고 서술은 빈약하다.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 iPad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2 Comments

  1. 대략 저자의 논지가 예상되는군요. 전 막스 터너에게 배워서인지 그의 입장이 던이나 멘지스에 비해 훨씬 강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던이 바울의 성령론으로 누가를 재단하고 있다면, 멘지스는 유대교의 성령 이해, 즉 ‘예언의 영’이 누가의 관점이며 바울과는 판이하게 다른 능력의 공급자로 묘사되고 있다는 얘기지요. 터너는 훨씬 정밀하게 따져 들어가서, 누가와 바울의 성령론이 다르다는 것을 먼저 밝히되(멘지스 논지에 기본적 공감. 사실은 멘지스가 터너에게 논문지도를 받았으니, 이 부분은 터너의 원래 입장이죠), 유대교의 회복종말론을 매개로 누가신학과 바울신학은 무리 없이 이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영국서 신학 학부 졸업 논문으로 던, 멘지스, 터너의 성령론 비교를 썼던터라

    1. 값진 댓글 감사합니다. 사실 책을 읽고서도 터너의 입장은 잘 이해가 안가더군요. 앞으로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괜찮으시면 터너의 관점에 대한 좀 더 세밀한 설명이나 자료를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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