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의한 칭의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믿음에 의한 칭의>가 현재에 대한 진리임을(바울이 아주 명쾌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망각한다. 즉, 미래의 심판에 앞서 누가 진짜로 하나님의 백성인지를 현재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따라서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여 자신의 죄가 진짜로 용서받았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진리임을 망각한다. … 미래의 심판은 한 사람이 영위해 온 모든 삶을 기초로 이루어질 것이다.”

모두를 위한 로마서 I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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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하랴? 아멘이다. 구약에 보면 가인과 아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는가? 이에 대한 갖가지 해석들이 나왔었다. 하지만 본문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의외로 간단한 답을 내리고 있다. 하나님은 가인과 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과 그의 제사는 받으셨다. 우리의 구원은 그의 삶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일까?

라이트는 이것을 기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신뢰라고 부른다. 나는 늘 이 문제에 부딫힐 때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을 되새겨 본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에서 ‘산다’라는 말은 ‘살아난다’는 의미일까? ‘살아간다’는 의미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늘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산다.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이기 때문에 이 믿음이 없이 이 복음대로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 짓이다.

믿음은 행함의 반대가 아니다. 믿음은 삶의 방향이 올바르다고 말해주는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구원은 오직 우리의 삶의 방향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향해서 맞춰져 있고 오늘 우리가 그 길을 걷고 있는지, 혹은 걸으려 하는지에 의해서 가려질 뿐이다.

– 블로그 프레스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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