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e를 거꾸로 들으면 음란한 메시지가?

얼마 전 소녀시대의 Gee를 거꾸로 돌리면 음란한 메시지가 들린다는 동영상 때문에 화제가 됐습니다. 이걸 보면서 처음 보고 느낀 것은… 참 힘들게 돈벌어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실 자막까지 붙어있고 그러니 ‘어, 그렇게 들리나?’라고 할지 모르지만 자막을 가리고 듣다보면 과연 몇마디나 그 자막에 있는 말처럼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감춰진 메시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말이라는 도구가 하나의 실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생기는 오해입니다. 말은 우리가 의미라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사실 그것은 일정한 주파수의 연속체인 음성신호일 뿐입니다. 그 신호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처음 서태지의 교실이데아가 백워드메스킹 논란을 일으켰을 때도 그
메시지를 가지고 이거다 저거다 말이 많았습니다. 뭔가 들린다는 말은 있었지만 정확하게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한참 후에 가서야 공통된 답이 나왔던 것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잘 안들리기 때문이 아니라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들리는 것을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하면서 하나의 정답으로 절충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즉, 음성학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을 통해서 역으로 그 노래에 담긴 메시지가 결정된 경우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중국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츠팔로마(식사하셨어요)라고 했다고 그게 나를 향해서 욕한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중국 사람의 말을 듣고 우리가 욕설을 연상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그 음성신호가 욕설의 의미와 연결되어서 사용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엔 소녀시대의 노래에 메시지가 숨겨져 있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거꾸로 듣고 그 음성신호를 저 의미와 연결시키는 머릿속의 메커니즘이 문제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마치 팝송 ‘all by my self‘를 듣고 ‘아 저 사람이 나에게 “오빠 만세”라고 응원해주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착각입니다. 정말 작정하고 찬양음반에서도 저런 메시지를 찾아내면 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정말 궁금합니다. (검색하다보니 찬양을 백워드 매스킹 해놓은 동영상이 있네요. 맨 밑에 첨부합니다.)

지금 이시대의 가요계에서 성적인 요소가 굳이 감출 필요가 있을까요? 언젠가부터 현대문화에서 성은 이미 하나의 상품화된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 현실입니다. 14~16살의 여자아이들이 허벅지를 드러내고 나와서 섹시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얼마전에 G드래곤의 브리드라는 노래가 콘서트에서 성행위를 묘사했다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 ‘Breath’라는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이런거 방송에 나와도 되나?’ 싶을만큼 너무나도 분명히 성행위에 대해서 살짝 돌려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요즘의 대중 문화는 저런 백워드 메스킹보다 더 효과적이고 때론 직접적이고 때론 암시적인 방법을 통해 성적인 것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굳이 백워드를 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문제는 감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눈 앞에 보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전도사가 학생과 성관계를 맺고 교인들이 술집에 가서 자기 딸뻘되는 여자를 안고 술을 마십니다. 문제는 감춰진 백워드(backword)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프론트워드(frontword)입니다. 이처럼 별다르지 않은 세상과 교회의 프론트워드를 살짝 무시해주고 그 속에 감춰진 영적인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위의 영상에서 저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백워드라는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사탄성입니다. 문맥을 봤을 때 백워드라는 것은 그 전반적인 사탄성을 이야기하기 위한 극단적인 예일 뿐입니다. 이런 백워드 신드롬이 위험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한때 낮은울타리 등을 통해서 뉴에이지 붐이 일어나면서 기독교 내에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거부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저 자신도 그 낮은울타리의 애독자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의 통제력 가운데 있는 것이며 루시퍼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장이었기 때문에 문화적인 것을 천재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문화들도 결국 사탄의 영적 지배아래 있는 비신앙적 결과물들이고 아무 생각없이 그 결과물들에 노출되면 비신앙적인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이런 현상의 중심적인 이론입니다. 이처럼 대중문화를 사탄시하는 문화는 뉴에이지 운동이라는 정황과 겹쳐지면서 마치 그 속에 거대한 음모라도 담겨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름 생각있다는 사람들은 그 문화를 되찾아오자며 기독교 메시지를 담은 락음악을 만들고 기독교적인 문화들을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대중문화에 대한 사탄화 현상이 세상으로부터 기독교를 점점 고립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세상적인 것이 사탄의 것인냥 그리고 그 결과물들은 거부하거나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아서 바꾸어야만 쓸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문화라는 선물을 왜곡하고 방치하는 결과들을 낳게 됩니다. 사탄이 찬양을 담당하는 천사장이었다치더라도 그 주인이 하나님이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탄이 문화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그 근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사탄에게 문화라는 영역을 빼앗기기라도 한것처럼 말하는 것은 그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결국 그것이 정말 사탄의 것이 될 수 있게 만드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사탄의 것이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들을 우리가 거부하기 때문에 사탄에게 내어주고 있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의 대중문화가 가지고 있는 상업성이라던가 성을 상품화하는 경향들에 대한 분명한 경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화를 거부하거나 기독교화 된 문화만 소비하는 방식이 아닌 우리가 앞장서서 좋은 대준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방향으로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얼마전 가수 김현철씨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kid’s pop이라는 장르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는 인터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주된 내용은 내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없어서 아이들이 부를 수 있는 가요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요즘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내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들이 별로 없습니다. 낯뜨거운 가사부터 시작해서 섹시함을 어필하기 위해서 추는 춤들… 그런 것을 아이들이 따라하는 것을 보고 있지만 참 눈앞이 깝깝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이들에게 음악을 못듣게 한다거나 찬양만 듣게하는 방식을 정당화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들을만한 가요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그런 음악들을 소비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요? 아이돌들의 음악이나 의미없는 사랑타령이나 하는 음악들말고, 때리고 부수는 영화들 말고,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해지고 삶을 위로하는 음악들을 만들고 소비하는 것, 정말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음악, 좋은 영화, 그 속에 사람과 이웃이 담겨있는 좋은 문화들을 만들고 또 소비하는 일이 우리가 해야할 일일 것입니다.

문화는 사탄의 것이 아닙니다. 그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잘 관리할 책임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우리의 욕망에 따라 소비하고 생산하기 시작할 때, 그것을 소중히 다루지 못하고 세속적이라며 거부할 때 그것은 정말 사탄의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있는 백워드를 찾아내 문화의 사탄성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우리가 그 놀라운 선물을 얼마나 방치하고 소홀히 대했는지를 깨닫는 것이 아닐까요?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Content Protected Using Blog Protector By: PcD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