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시작 (눅 4:1~13)

운보 김기창 - 마귀에게 시험받다.

복음서의 공통적인 증언 가운데 하나는 사탄에게 받았던 예수의 시험이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특히나 누가-행전의 신학에서 성령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라는 개념을 가장 빈번하게, 가장 독자적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서 예수의 유혹은 세례에서 받았던 성령의 충만함이라는 전제 위에서 이뤄집니다. 즉, 여기서 사탄의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로써의 예수의 신분에 대한 증명을 위한 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사역에 대한 기록 역시 이 개념을 제외하고 가긴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시험의 전제는 ‘니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 됩니다.

누가복음에서 성령이 강조되는 것은 성령이 가지고 있는 종말론적 의미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교에서 성령은 마지막 날의 상징으로 여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가 성령을 종말론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누가복음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에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이어지는 베드로의 설교에서 베드로가 요엘서를 인용하는 장면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2:17~21

물론 여기서 마지막 날은 단순히 세상의 종말이기보다는 이 시대의 마지막이면서 동시에 예수에게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마지막 날의 도래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으로써의 성령이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사건 이전에 이미 예수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세례와 시험에서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를 수많은 언급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15,35,41,67/2:25,26,27/3:16/4:1,14,18)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면서 등장한 예수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세가지 시험을 받게 됩니다. 이 시험 기사는 마태와 누가만 등장하는 독특한 기사입니다만 그나마도 두가지가 서로 다른 순서로 인해서 많은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마태복음은 떡-뛰어내리라-절하라의 순서로 되어 있는 반면 누가복음은 떡-절하라-뛰어내리라의 순서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중에 어떤 것이 원형이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누가가 특별히 자신이 기록한 마지막 시험의 장소를 예루살렘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태도 성전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장소가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만 누가의 이런 기록은 누가의 최종 목적지인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의 방향성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순서가 어쨋든 예수는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됨에 대한 테스트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사탄이 묻는 세가지 질문의 본질 혹은 의도에 대한 많은 해석들이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이 시험들은 당시 예수에게 부족했었고 필요했던 것들에 대한 유혹이고 예수는 그 유혹을 거절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앞으로 그의 길이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효용성이나 결과주의의 방법으로 이뤄질 것이 아님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이런 예수의 길은 사탄이 세상의 권세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에서 더 큰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언급은 누가에만 등장하는 것으로 누가의 의도적 삽입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세상의 주관자로 여겨지던 것은 사탄이 아닌 로마황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언급을 통해서 누가가 사탄과 로마제국을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에게 사탄과의 싸움은 단순히 하늘 위에 있는 영적인 존재와의 싸움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 현실화 된 사탄의 실체, 로마에 의해서 주도되는 세계질서인 ‘팍스 로마나’와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세 가지 시험은 이런 로마의 ‘팍스로마나’가 만들어내는 떡을 제공함으로 불만을 입막음했던 거짓 평안, 다른 이의 힘에 의존하여 권력을 얻는 후견인 제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곧 정의가 되는 전쟁신학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세상의 길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에서 누가는 이 시험 뒤에 사탄이 잠시 떠났다고 말합니다. 잠시 떠났다는 것은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진짜 싸움은 곧 다시 찾아 올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예언되었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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