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꿈이 뭐냐는 질문을 마흔가까이 되어서 듣는 것도 참 희한한 일이다.
그만큼 난 사람들이 보기에 이뤄놓은 것이 없다.

내 나이 쯤이면 다들 이미 거쳐갔을 과정을 아직도 걷고 있고,
이 이후에 어떤 일을 할지도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그래서 나에게 꿈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일게다.

평소같으면 고민했을지도 모를 말이지만, 왜인지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답했다.
난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꿈이다.
난 어떤 직업을 갖는지, 무엇을 이루는지 보다 내 안에 가득한 질문을 고민하며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구원이란 무엇인지, 예수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성직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그 사고의 과정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이 있고 그것을 고민하고 대답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에게 학문이란 이뤄야하는 목표이기보다는 내가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유학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살 것인지,
앞으로의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런 것을 물으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왜? 어디든 관계 없다. 무슨 일이든 관계 없다.
난 어떤 일이든 내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일을 해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안에 몰아치는 질문들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곳에서 공부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무엇이 되고, 무슨 일을 하고, 어디서 공부하고…
이런 것들은 내 인생에서 너무 하찮은 것들이다.
그것이 내가 신학이라는 길을 선택한 이유이고, 한 때 수사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던 이유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나의 삶이 불안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실제 그렇다. 언제 내 삶이 안정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 지금 이 길을 이렇게 걷는 것이 꿈이다.
나는 꿈을 이룬 것도 아니고,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도 않다.
난 지금 그 꿈 속에 있다.

이 꿈을 위해서 지금껏 다른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해왔고, 성실하게 걸어왔다.
그리고 이 꿈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반되는 다른 모든 현실적 선택에 열려있고 그 댓가를 감내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사는 꿈이고, 내가 대답할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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