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첫번째 바울의 복음

제목만으로도 뭔가 포스를 전해주는 듯한 이 책은 게다가 저자가 보그크로산이라는 점에서 그 기대감은 몇배가 됩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나 역사적 바울 연구는 사실 기독교라는 틀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애초의 시작이 신앙의 그리스도에서 벗어난 예수의 모습을 밝히려 하는 목적이거나, 교회에 의해서 왜곡된 바울의 모습을 밝히려는 모습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역사적 예수 연구 혹은 역사적 바울 연구를 교회를 다시 끌고 들어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굉장히 많은 설명이 필요하고 때론 불필요하거나 왜곡된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은 과감하게 버려야하는 경우들도 생겨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껏 최근 바울 연구에서 이렇게 버리는 카드처렴 여겨졌던 대속이라던가 부활, 속죄의 개념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참여와 분배적 정의라는 개념으로 환원시켜 교회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려는 노력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서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몇가지 개념으로 요약해보면, 첫째로 이들은 한명 이상의 바울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 서신 전체를 한명의 바울이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지만 학문적으로는 굉장히 일반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진정서신 :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데살로니가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논쟁이 있는 서신 : 에베소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후서
분명한 비바울 서신 :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크로산과 보그는 이런 구분을 통해서 진정서신에 등장하는 ‘급진적인 바울’이 어떻게 논쟁적인 서신에 등장하는 ‘보수적 바울’을 거쳐, 비바울서신에 등장하는 ‘반동적인 바울’의 모습으로 길들여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을 통해서 바울이 비난받는 여성평등의 문제라던가, 노예제도에 대한 문제등 여러가지 사회문제에 있어서, 사실 그런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본래 바울의 서신들이 아니라 후대에 왜곡된 바울 이해를 담고 있는 서신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두번째로 이 책을 끌어가는 주제는 역사적 맥락안에서 바울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을 통해 바울 당시의 사회적인 모습들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해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당시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이 단순히 종교적 고백으로써의 의미를 넘어 역사적 맥락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보여줍니다. 바로 로마 제국의 전쟁신학에 맞서,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한 폭력적인 평화의 복음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를 통한 비폭력적 평화의 복음을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이 부분에서 로마서 13장의 “권세와 복종”에 관한 문맥을 산상수훈의 “원수사랑”의 메시지와 병행시키며 해석하는 부분은 이 책의 색깔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크로산과 보그는 유대교신비주의자로서의 바울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여기서 신비주의라는 것은 어떤 밀교적인 형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영적인 경험을 통해 바울이 갖게 된 “그리스도 안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런 신비주의를 곧 하나님과의 연합이라고 정의하고 이런 정의 아래서 대속이나 속죄, 믿음과 칭의 같은 개념들을 재해석해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야 말로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요. 기존 교회를 통해서 고백되어져 오던 신학적인 언어들을 하나하나 재정의 하면서, 새로운 교회의 행동 양식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읽다보면 “이 부분을 쓰고 싶어서 이 책을 썼구나”라고 느낄 정도입니다. 하지만 워낙에 짧은 분량안에 여러가지 주제를 다루다보니 설명이기 보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크로산과 보그는 역사적 예수 연구로 유명한 학자이다보니 그들이 바울 연구에 있어서 어떤 혁신적인 무엇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책은 바울에 대한 자체적인 분석을 담고 있는 책이기보다는 미국내의 진보기독교의 조직신학서, 백과 사전, 사용자 설명서와 같은 느낌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즉, 바울의 언어에 귀를 기울였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것에 맞는 바울에 관한 해석들을 모아놓았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바울 해석이 자의적이라던가 몹쓸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은 최근 바울 연구에 있어서 영향력있는 학자들에 의해서 이미 제기되었던 것들이며 이들은 그 문제제기들을 하나의 공통적인 관심사에 의거하여 잘 묶어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다만 몇가지 난점들이 이 책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고 있는 것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먼저 크로산과 보그는 유대인으로써 바울의 정체성에 거의 주목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소 출신의 디아스포라라는 정체성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인지, 이들을 바울을 철저히 로마제국과의 연결 속에서만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실제적인 문제로 드러나는 부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들은 대속의 의미를 철저하게 “다른 이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죽음”이 아니라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서 죽는 죽음”으로 해석하면서 대리적 죽음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말하듯 대속 혹은 희생제사의 본래 의미는 하나됨이며 화해입니다. 하지만 그런 결론에 대한 별다른 설명을 하고 있지 않고 그냥 단정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는 별개의 개념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특히나 히브리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가까운 친척이 빚을 대신 청산하는 고엘제도같은 독특한 개념은 구약부터 시작하여 성경 저자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사상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고엘제도 뿐 아니라 책 전체에 유대인으로써 바울의 정체성은 그다지 반영되어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바울에게서 이런 일관성을 찾아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책이 그려내고 있는 바울의 신학은 꽤나 정교하고, 보편적 평등 개념과 사회정의를 향한 비폭력적 저항, 그리고 참여와 헌신의 신앙이라는 몇가지 일관된 관점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아마도 크로산과 보그는 반동적인 바울과 보수적인 바울의 허울을 걷어내면 비일관성이나 애매모호함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서신들이 처해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이렇게 간단하게 묶어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샌더스가 제시하고 있는 문제처럼 율법이나 유대인에 대한 바울의 자세는 일관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런 바울의 비일관성에 대한 부분은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해석하고 있는 ‘의’의 개념과 ‘믿음’의 개념은 바울 스스로가 사용하고 있는 아브라함이라는 모델에 의해서 벽에 부딫히고 맙니다. 이 책이 너무나도 간결하고 분명하게 요약하고 있듯이 의가 곧 분배적 정의(p.225)이고 믿음은 프로젝트에 대한 헌신(p.230)이라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신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예화는 바울이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끌어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설명이 필요하고 이해하기도 힘든 예화가 아니었을까요? 특히나 이 책에서 말하는 “의롭게 됨”이라는 개념이 [전가]가 아닌 [변화]이기 때문에, 즉, 실제적인 변화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p.226) 아브라함은 어떻게 정의로워졌으며 무엇을 향해서 헌신한 것일까요?

이런 해석적 난점에도 불구하고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신학에만 머물던 것을 실질적인 해석과 적용으로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과 바울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해줬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신앙인의 삶을 향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는 것 등은 이 책을 지은 두명의 저자가 했을 고민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이 책이 전해주려고 하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다양합니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도전들과 논쟁점들을 적으라면 몇개의 글을 써도 모자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또한 대단히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이 책은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를 넘어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직 논쟁의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새롭게 열릴 시대에 자주 언급해야만 할 책인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크로산과 보그가 쓴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쳐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에 대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는
  우리가 실패할 경우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벌하실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성공할 경우 이 세상이 우리를 처벌할 것이기 때문이다.(p.252)

2 Comments

  1. 핑백: ssh4jx's me2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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