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뉴스앤조이기사)

[제언] 목회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세 가지 준비를 준비하라…영혼에 대한 관심, 공부하기, 사랑하기

1. 한 영혼에 대한 관심

목회는 기술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학교 과정에서 목회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를 배우려고 골몰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 골몰하는 초점의 의미는 숫자적인 부흥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따라서 거의 방법론에 매달리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에서 한 영혼에 대한 관심으로 인식의 전환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목회 기술자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먼저 한 영혼에 대한 관심과 애끓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저녁 무렵 해질녘에 들판에 먹을 것이 없이 모여 있던 수만 명의 영혼들을 향해서 민망히 여기셨던 그 마음을 배우는 것이 관건입니다. 여기서 민망히 여기셨다는 말의 의미는 창자가 끊어지는 단장(斷腸)의 고통을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사역자를 꿈꿉니다. 좋은 사역자란 의도적인 목표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건강한 상식을 가진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양떼의 마음과 삶의 정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목회자는 ‘목회 기술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다루는 목회는 대범해서는 안 됩니다. 소심하게 목회를 해야 합니다. 민족의 시인 윤동주의 시에 보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웠다”라고 하는 구절이 있듯이 성도들의 가녀린 신음 소리에도 무시하지 않고 귀와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 섬세한 마음, 섬세한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일은 대범하게 할지라도 영혼에 대한 태도는 대범해서는 안 됩니다.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다루듯 장차 하나님 앞에 계산할 자의 심정으로 영혼을 만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혼들이 잘 자랄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는 히브리 원어에 보면 ‘잘 듣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아기 소유권 문제로 백성들이 찾아왔을 때 아무리 하찮은 백성들의 문제일지라도 문제의 본질을 잘 들을 줄 아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두 여인의 주장 속에서 모성의 끓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을 지혜의 왕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소리라도 무시하지 말고 들어주는 마음과 태도가 필요합니다.        

2. 설교자는 신학자이어야 합니다

흔히 목회자가 따로 있고 신학자가 따로 있는 것으로 이해를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인식입니다 설교를 하는 목회자는 또한 신학자이어야 합니다. 설교 속에 모든 신학의 문제가 녹아져서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의 기초가 바로 서 있지 않으면 바른 설교가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오늘날의 젊은 목회자들이 빠져 있는 오류는 서구 목회의 어설픈 접목을 통해서 소위 실용주의 설교에 매몰되었다는 겁니다.

설교란 두 가지가 중요한 전제로 뼈대를 이루어야하는데 첫째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그리고 두 번째는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설교는 그 출발이 “청중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에 설교의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인식들입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고통하는 영혼들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시는가로부터 설교의 준비가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의 출발은 사람의 필요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로부터 출발을 해야 옳은 설교입니다.

이러한 오류가 바로 잡힐 때에 설교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즉 설교란 내가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청중들에게 안내해주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입니다. 설교자가 청중을 깨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자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철저한 안내자일 뿐입니다. 청중이 은혜를 받는 여부가 설교자의 설득력에 있을 거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지 않는 이상 우리는 점점 설교를 잘하는 기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학생 시절에 신학의 기초를 견고히 공부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신학의 기초가 약하면 설교의 구조나 전개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 우왕좌왕하게 되고 실용주의 풍조나 세상의 풍조에 흔들거리는 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의 리더십은 강단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에게 아무리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설교의 문제는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책임입니다. 그리고 책임은 무한대입니다. 그만큼 설교자는 늘 성도들에게 먹을 것을 준비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설교는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준비 사역이어야 합니다.

3. 소명과 사명을 넘어서 사랑으로 하십시오

우리가 신학을 하게 된 동기는 소명과 사명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명과 사명 때문만이 그 이유가 된다면 우리는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못 당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못 당합니다. 또한 아무리 재미있게 일해도 사랑해서 하는 일은 진짜 못 당하는 법입니다.

특히 소명자는 사랑해서 일하지 않는 어떤 것도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근원은 어디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온 인격 속에 만난 십자가 사랑의 경험과 흔적이 없이는 사명자로서 이 길을 걷는 목회자로서의 인생을 다시 기도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준비가 여러분들의 신학생 시절에 철저히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 2·3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송태근/ 강남교회 목사·교갱협 상임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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