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성찬식의 서글픈 단상

활절이 지났습니다. 부활절 같은 절기가 되면 각 교회들은 성찬예식을 행하지요. 물론 매주 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그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1년에 두 차례 혹은 세 차례정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누군가로 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성찬식을 치즈케잌으로 하셨다는 이야기였지요. 물론 교인이 10명 미만인 개척교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상황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교회라는 시스템 속에 있는 전도사로서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기독교가 10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토착화된 기독교가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국적인 기독교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흔히 무속기독교라고 하는 것이지요. 흔히 목사님들이 설교시간에 korean style prayer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시며 세계가 배우려 한다는 통성기도 같은 것이지요.(뭐 전 침묵기도가 좋습니다만…)



무속기독교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 무속신앙, 혹은 기복주의 신앙같은 것들을 생각합니다만 이 말이 100% 부정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속적 신앙도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재발견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찌보면 무속적인 기독교가 한국 교회의 현실이면서 한국교회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무조건 기복주의라고 부정만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무속신앙이 기복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만큼 분명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그 곳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쨋든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것이 무속적인 신앙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안타까운 것은 그런 ‘한국인의 신앙 양태’가 정작 한국교회의 신학과 따로 놀고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토착화 문제라고 말합니다. 어찌보면 변화된 시대에 현대화 문제와도 연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교회의 신학이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명칭 문제도 큰 문제이지만 이것은 뭔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 같은 느낌도 있고 글 주제와 맞지 않으니 다루지 않겠습니다.)

래 성찬식의 의미는 가장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음식들을 통해 이뤄지는 나눔의 식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성찬식에 대한 절차들을 고민할 때 이것을 떡과 막거리로 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었지요. 지금 들으면 ‘그게뭐냐’며 비웃겠지만 초기에는 진지한 고민이었습니다.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식사에 사용되는 음식’이라는 조건과 ‘나눔을 상징할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는 조건때문에 한때 청소년 단체에서 피자와 콜라로 성찬식을 거행하려는 시도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런 노력이 우리 삶의 자리로 기독교의 고백을 체화시키려는 노력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에서 말했던 치즈케잌으로 성찬식을 거행한 목사님의 이야기는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 교회의 성찬 음식들은 “성찬식때만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말았습니다. 포도주도 아니고 포도쥬스도 아닌 어정쩡한 음료수와 가래떡을 짤라 놓은 것같지만 사실 뭔지 정체를 알기 힘들게 생긴 성찬의 떡은 평소의 삶과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성찬의 자리를 완벽하게 갈라놓았습니다. 마치 신앙생활은 교회와서만 하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과거 서양의 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신학에 쉽사리 무임승차하려는 한국 교회의 꼼수가 결국 우리 신앙의 삶의 자리를 일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런 삶과 신앙의 분리로 인해 종교권력이 부패하기는 더욱 쉬워진 것도 사실입니다.



은 맥락에서 매번 부활절을 지내면서 또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부활절의 분위기는 바로 고난주간에나 치뤄질 법한 성찬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가 몇일 뒤에 다시 십자가에 물과 피를 쏟으며 돌아가셔야 하는 것처럼 침울하고 거룩한 분위기에서 모든 순서들이 진행됩니다. 고난 주간에 흘러나오던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거룩하고 약간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줄줄이 강단앞으로 나와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십니다. 여기서 누군가 소리내어 웃었다고 생각해보십시요. -_-;;;

이것은 그저 부활절에 성찬예식을 거행했다는 것에 태클을 걸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지금도 어떤 교회는 매주 성찬을 거행합니다. 저는 그것이 더 교회 전통에서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적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_-) 그렇다면 그 성찬은 기쁨의 부활절에도 슬픔의 고난주간에도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뻐하는 성탄의 절기에도 거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찬은 누군가 주장하듯 ‘기쁨의 애찬식’이 되어서도 안되고 ‘슬픔의 성찬식’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그 무엇보다 가장 일상적인 식사를 통해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픈 우리의 상태를 그대로 담을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따로 마련된 시간이 아니라 가장 일반적으로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자리에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며 그 모임이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임을 배우고 더불어 함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것을 다짐하고 서로 격려하는 자리여야 할 것입니다.  뭐 이렇게 되면 사실상 성찬식이라는 것이 별도로 필요없는 상황이 되겠지요. 김교신 선생님이 성찬에 대해서 냉담하셨던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닐지…

주후 2010년… 나를 기념하라는 말 말고는 성찬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도들에게 설명해주는
목사님은 거의 본 적이 없는 듯… 형식만 있을 뿐 정작 부활의 의미와 감동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2000년 째 하고 있을 교회를 바라보면서….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Content Protected Using Blog Protector By: PcD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