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바울, 율법, 유대인

E.P샌더스의 책은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 아닙니다. 그나마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고 생각되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책도 크로산과 타이센 사이에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 연구에서는 이야기가 다르지요. 바울에 관한 새로운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이라는 최근의 연구에서 샌더스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학자입니다. 물론 현재 그것을 주도하고 있는 학자는 N.T.라이트나 J.D.던같은 학자입니다만 그 시작은 샌더스의 책 Paul and Palestinian Judaism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바울 당시의 유대교에 대한 모습을 재정의함을 통해서 바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만 아직 우리나라엔 번역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바울, 율법, 유대교]를 구할 수 있어서 읽어보았습니다. 먼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책은 지금까지 루터의 종교개혁적 관점으로 율법과 유대교를 바라보는 것을 비판하고 바울의 시대상황과 유대인이라는 바울의 정체성 위에서 율법과 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피고 있는 부분과 동족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부분으로 이루워져 있습니다.  이 책에서 샌더스가 주장하고 있는 것을 몇가지로 요약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바울은 일관적이지 않다.


샌더스는 기존에 바울연구에서 율법에 관한 바울의 일관적인 무언가를 해명하려는 노력에 반대합니다. 샌더스는 바울의 기록들 가운데 있는 서로 모순되는 율법에 대한 설명(믿음으로 구원얻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믿음을 위해 실패하게 하는 역할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을 위해 주셨으나 죄가 율법을 역으로 이용했다 등등…)에 대해서 어설프게 하나로 엮어내려고 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울의 비일관성의 원인에 대해서 샌더스는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두가지 확신으로 인해 생겨난 갈등 상황이라고 설명합니다.


2. 바울의 두가지 확신과 갈등

샌더스는 유대인이라는 바울의 정체성이 바울에게 부여했을 첫번째 확신(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과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 얻게됐을 것으로 믿어지는 두번째 확신(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사이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겨났을 질문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럼 구원에서 율법의 역할은 무엇인가? 율법으로 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왜 의를 주셨는가? 샌더스는 율법에 대한 바울의 비일관성은 바울이 이런 두가지 확신으로 인한 갈등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샌더스는 결국 바울의 사상이 발전했다는 입장에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샌더스는 바울의 이런 비일관성은 시간에 따른 발전이 아니라 바울이 처해있던 서로 다른 환경과 상황에 따른 변화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3. 바울은 율법을 축소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여러곳에서 그리스도인이 율법을 완성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바울은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전제 위에 할례라던가 정결예식등을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된다는 것처럼 말하거나 지키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것은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의 확신으로 인한 적용인데 바로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동일하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샌더스는 믿음이 하나님의 몸된 교회로 들어오는 입교조건이라는 주장이 바울의 중심된 확신이었으며 그것을 위해 할례나 정결예식과 같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용하는 율법을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샌더스는 여기서 바울이 겪었을 또 하나의 딜레마를 바울의 반대편에 서있었을 가상의 유대인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무슨 말이든 하라. 에스겔이 신명기를 수정했다고 말하라. 참된 순종이 내면적이지 외면적이지 않다고 말해라. 디아스포라에게 율법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해라. 그러나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을 때 순종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으셨다고 말하지는 말라”

이처럼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일부 율법은 지키든 말든 관계없다거나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바울에게 이 문제는 하나의 딜레마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샌더스는 바울이 자신이 율법을 축소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말로 이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4. 구원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의 의미

바울의 언어에서 의로움이라는 것은 크게 두가지 상황에서 나타나는데 하나는 어떤 지위로의 이동이라는 문맥이고 다른 하나는 변경된 지위의 유지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두가지 율법을 구분하고 있지 않으며 여기서 이동의 문맥은 일관되게 이방인이 하나님의 몸으로 들어오는 입교의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샌더스는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입교조건으로 유대인의 의로움의 조건이었던 율법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바울의 언어라고 샌더스는 말합니다. 즉, 종말론적 비전에서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던 다른 이들과 달리 이방인과 유대인이 동등한 조건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바울의 논지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일부 율법을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5. 유대인 선교의 실패와 이방인 선교
로마서를 저술할 당시 기독교의 선교 상황을 요약하면서 큰 성공을 이루었던 이방인의 선교와는 달리 실패한 유대인 선교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자신의 이방인 선교가 유대인의 구원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확신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부분은 앞의 내용과 구별되는 내용이고 양도 그렇게 많지 않아 주의 깊게 읽지 않았습니다. -_-;;

@ 샌더스가 그려내는 바울의 모습
샌더스가 제시하고 있는 바울의 모습은 일관된 논리로 논쟁하는 신학자이기보다는 아직 자신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두가지 확신으로 인해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노력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는 때로는 비일관적이고 때로는 과도하게 주과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이해하지도 못하고 무언가를 논쟁하기 보다는 확신에 차서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바울은 유대교 종말론적인 시각에서 옛시대와 새시대의 사이에 서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며 그에게 계시된 이해는 기존에 유대교에 알려졌던 이해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스스로도 이 서로 다른 확신으로 인해서 고뇌하는 모습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샌더스는 바울을 16세기 종교개혁의 이해로부터 끄집어 내어 1세기의 유대교라는 환경 가운데 던져넣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 가운데 샌더스는 바울이 말하는 율법은 감정적이거나 개인적인 측면이기보다는 사회적인 측면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고 더불어 그에게 율법은 결코 부족하거나 악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며 여전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있으며 유대교는 결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기를 요구하는 행위의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전제하고 속죄를 통해서 용서하는 은혜의 종교였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샌더스는 바울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를 만남으로써 가지게 되었던 ‘이방인과 유대인이 동등한 조건 위에서 구원에 이른다.’는 확신이 바울의 모든 서신을 바라보게 하는 기준이요 열쇠인 것처럼 말합니다.

@ 서평을 마무리 하며
이 책을 읽으면서 율법에 관한 내용이다보니 참 어렵다는 생각과 함께 바울이 굉장히 친숙하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언과 굉장히 과대평가된 바울의 모습보다 살아 움직이는 1세기의 바울을 만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떠나지 않는 질문 한가지는 “바울에 관한 일관성된 설명의 가능성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뭐 지금 저에게 있어서 그것이 신앙적으로 큰 걸림이 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함께 엮어가려는 노력은 조금 더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스스로를 향한 도전을 남기고 읽기를 마무리 했습니다.

최근 발전되고 있는 바울에 관한 새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한번은 거쳐가야할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번역이 쫌 엉망이네요. 오탈자도 굉장히 많구요. 이 책 읽고나서 크로산과 보그의 책을 읽으니 휙휙 넘어가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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