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의 아고라 설문조사를 보고

얼마 전 뉴스앤조이에서 “당신은 왜 기독교를 싫어하나요?”라는 제목으로 DAUM 아고라에 설문조사를 올렸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뉴스앤조이 측에서 이 기사를 로그인해야 볼 수 있도록 해놓았네요. 아마도 악플러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은 합니다만…

어쨋든 뉴스앤조이 측에선 조사 결과를 크게 다음 몇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말따로 행동따로
2. 사랑은 없고 욕심만 가득
3. 권력과 결탁
4. 수준 미달 목사들
5. 예수천당 불신지옥
6. 헌금강요와 불투명한 재정사용
7. 끼리끼리, 왕따

솔직히 이런 류의 글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교회가 받는 비판들은 대부분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들어먹을 욕을 듣고 있는 것이지요. 분명히 기독교에게 있어서 고쳐져야 할 부분이고 기독교 안에 있는 저 같은 사람도 왜 안 고쳐지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기독교 일부의 문제라던가 매우 작은 문제인 것처럼 축소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시도일 것입니다. 헌금 강요나 성전 건축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자기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교리를 전도하는 것이라던가 교리적 배타성등은 일부 교회만의 문제라고 하긴 힘듭니다. 특히 재정문제는 더욱 그렇지요. 작은 교회들이야 재정 규모랄게 없어서 문제가 되지 않을 뿐이지 고의적이든 고의적이지 않든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교회는 몇군데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재정 사용에 대해서는 저희 교회 연말 보고 내용을 토대로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과 불필요한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에 대한 글을 한번 써볼 예정입니다.]

물론 이런 기독교 비판을 접할 때마다 억울함에 가슴을 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일부 교회의 목회자들이 갖는 비도덕성이 모든 교회의 모습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 그리고 그 중에 자신도 끼어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어지는 것이 기분 좋을리 없습니다. 그리고 정작 이런 비판에 상처 받으시는 분들은 열심히 고쳐보려 노력하는 분들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오히려 교회를 비판하고 개혁하려 하신다는 분들(특히 인터넷 논객들)이 ‘개독교’,’먹사새끼’등의 거침없고 극단적인 말투를 서슴이 없이 쓰면서 교회를 욕하는 것이 곧 교회를 개혁하는 것처럼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말하고 글을쓰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개혁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워주거나 깨끗이 씻어주거나 보듬어 줘야 하는 지체를 향해서 마치 도려내야 하는 암덩어리인 것처럼 칼을 꽂는 것은 교회를 개혁하는 방법일 수 없습니다. 늘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런 모든 문제에 있어서 늘 최고의 피해자이면서 상처를 받는 사람들은 교회의 지체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신학의 문제를 뒤로 하고 행함의 문제로 접근하려 하는 것 또한 눈가리고 아웅하려는 시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근본적인 신학과 교회에 대한 이해가 새롭게 되지 아니하고 그저 행함이라는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스스로 지지 못할 짐을 형제를 향해 지우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특히나 스스로를 복음주의라 정의하시는 분들) 기독교 전통의 다양성도 이해하지 못하는 교회가 세상의 다양성의 요구앞에 유연할 가능성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많은 교회들이 오래 전부터 이런 문제점에 공감하고 그것을 고쳐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고치려는 노력만으로는 무언가 해결되지 못하는 갈증같은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주차장 문제 같은 경우 지역 주민에게
개방을 한다거나 교인들끼리 카풀을 하는 등 여러가지로 노력하고 있는 교회들이 있음에도 그것만으로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진
않습니다. 마치 위에서 이야기된 조건 중에 한가지만 잘못되면 모든 조건에 해당하는 것처럼 대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특히나 반기련같은 경우는 중립이나 개선의 요지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기독교는 없어져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면 정말 저라도 나서서 변호해주고 싶은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서 도망갈 때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을 향해서 돌을 던지며 욕을 하는 이야기가 사무엘서에 나옵니다. 시므이는 사울의 친척이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을 사울을 죽인 살인자라고 비난하며 온갖 저주를 퍼붓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그가 하나님께서 기름부은 자를 저주했다.”라고 말하며 시므이를 죽이려고 할 때 다윗이 한 말이 예술입니다.

“스루야의 아들아, 나의 일에 너희가 왜 나서느냐? 주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고 분부하셔서 그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그가 나를 저주한다고,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느냐?” 그런 다음에, 다윗이 아비새와 자기의 모든 신하에게 말하였다. “생각하여 보시오. 나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도 나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데, 이러한 때에, 하물며 저 베냐민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소. 주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혹시 주께서 나의 이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오늘 시므이가 한 저주 대신에,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삼하 16:10~12)

세상이 요구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물론 이것이 “교회다움이란
이런 것이다” “교회는 이래야 한다”를 정의해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교회를 향해서 다른 것도 아니고 세상과 다른
거룩함을 요구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말들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정말 억울하다면,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입니다.

일하면서 쓰다보니 앞뒤가 없네요. -_-;;

2 Comments

  1. 하지만 다윗은 이후 죽기 직전에 남긴 유언에서 결국 시므이를 처단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는 어떻게 설명하실 것입니까?

    1. 그 처형이 정당한 처형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성경관련 블로그에 제가 쓴 글입니다. http://bgblog.tistory.com/10 저는 시므이의 처형은 솔로몬의 정권 장악 과정에서 행해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거기엔 다윗의 복수심도 작용했겠지요.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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