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나님과 제국

크로산 자신이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그의 저작들 중 거의 끝판왕 같은 느낌을
가진 이 책은 지금껏 크로산이 주장해 왔던 역사적 예수와 바울
그리고 로마라는 시대적 상황에서의 기독교 공동체라는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역사적 예수에
관한 책 중에 가장 대놓고 이야기하는 듯한 책인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서평을 쓰기 전에 일단 한국어판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고
넘어가자면 굳이 하드커버에 이렇게 두껍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론
글자가 큼직큼직해서 읽기는 편하고 좋았지만 책값이 비싸다는… 우리나라에도 하루빨리 페이퍼백 문화가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전체적인 논지는 폭력과 비폭력의 갈등이라는 주제로 신약성경을 해석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해석은 현대 신약성경 해석에 있어서 커다란 흐름으로 인식되어지고 있지요. 단순히 진보진영을 넘어서서 일반 철학자들과 복음주의
계열의 사회운동에서도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요즘 추세인 것 같습니다.


크로산은 1부에서 제국과 문명의 폭력성을 정상적이고 일반 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제기되는 문제들을 질문하면서 논지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크로산은 제국적 세상에 대한 대안으로서 두가지 가능성이 존재해 왔다고 말합니다. 첫번째는 악에 대한 하나님의
세상정화로써의
노아식의 해결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비폭력적인 아브라함식의 해결방법입니다. 크로산은 노아식의 해결방법은 폭력적 제국문명에 대한 신의
폭력의 상징으로, 뒤에 나오는 아브라함식의 해결방법은 비폭력적 해결방법의 상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두가지
해결책이 서로
모순된다고 주장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한다고 말합니다.

2장부터 시작되는 예수와 바울의 역사적 재구성은 크로산이 평생을 통해
이야기하려 했던 비폭력을 통한 세상의 변화 모델입니다. 크로산은 이것은 ‘제국주의적 정상성과 하나님의 급진성’의 충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급진성이라는 단어선택이 크로산의 의도를 모두 표현해주지 못한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뜻을 이해하기에
불충분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듯 성경 안에는 아브라함식의 비폭력적 해결책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노아식의
신의 폭력으로 대변되는 해결책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크로산은 이 두가지 성향이 성경안에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엘리야나 엘리사의 폭력을 통한 정권 탈취라던가 묵시사상에서 나타나는 세상 정화로써의 신의 폭력이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크로산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요한계시록 신학에 대한 비판입니다.

앞부분의 내용들은 사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식상할
법한 이야기였지만 마지막장을 차지하고 있는
요한계시록과 폭력의 포르노그라피라는 제목의 장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서 크로산은 요한계시록의 신학이 예수가
꿈꿔왔던 [세상의 폭력적 정상성에 대한 하나님의 비폭력적 급진성의 해결책]을 향한 세상의 정상성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크로산은 미국의 제국주의 폭력을 부추기고 있는 원인을 요한계시록에 대한 세대주의적 해석으로 보고 성경의 역사적
해석을 통해 그 허구성을 파해칩니다. 이 부분은 정말 속이 다 후련하네요.^^ 흔히 무천년주의의 성경해석의 역사주의적 해설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크로산은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삶과 메시지에
촛점을 맞추면서 초대교회의 신학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바울문서와 계시록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폭력적 해결책과 비폭력적
해결책이 꾸준히 공존하고 있음을 말하고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과 함께 비폭력적인 예수의 해결책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제국적 힘은 정상적인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아니며 우리가 비폭력적인 삶을 살아갈 때 그 곳에는 천국이 현존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크로산의 주장에 있어서 역시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요한계시록을 다루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그 의미를 밝히려 했던 다른 시도들과 달리 그는
의미를 밝힘으로써 요한계시록을 성경으로부터 제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예수를 비폭력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너무나도
당연히 제기되었을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과거 영지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악과 선, 구약의 폭력적인 하나님과 예수의 사랑의
하나님은 쉽사리 일치시킬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가지가 마치 너무나도 당연하게 하나였던 것처럼 고민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던 예수가 정작 자신의 원수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같은 논리적 전개를 보이기도
하지요. 크로산의 이런 문제제기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그의 문제제기가 어떤 반응들을 이끌어낼지 또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보수적인 쪽에서 본다면 사탄의 세력처럼 보일지 모르는 책이지만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저같은 사람이라도 그의 문제제기는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도전 받은 것이 있다면 신약의 외경 중에
‘시빌의 신탁’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비폭력과 평등이라는 주제를 잘
담고 있는 예언서인 것처럼 소개가 되어 있네요.

2 Comments

  1. 예수세미나를 이끌어가고 있는 훌륭한 분이죠.. 최근 크로산을 비롯한 예수세미나의 흐름을 거부하고 새로운 복음서 읽기, 즉 제3의 연구를 진행하는 핵심 주자인 톰 라이트의 책을 함께 본다면 더 유익하리라 봅니다. 크로산이 철저하게 예수의 묵시적 모습들을 제거시키고 지혜교사로서 현 시대의 변화를 꽤하고 있다면 라이트는 예수를 묵시적 예언자로 그리며 기존의 관점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제시합니다. 톰 라이트의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

    1. 오랫만에 뵙네요^^ 안그래도 라이트의 책을 읽어볼까 생각은 하고 있는데 두께도 그렇고 확 땡기지가 않네요.^^ 요새는 호슬리의 책과 샌더스의 책들을 주로 읽고 있습니다. 요새 관심은 역사적 예수보다는 바울에 대한 새관점인 것 같습니다. 늘 찾아뵙는다고 말만하고서는 찾아뵙기가 힘드네요. 취직도 하고나니 평일도 시간이 안되는 듯… 내년쯤 전도사 그만두면 한번 찾아뵐 수 있을지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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