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회 설교] 당신은 예수님의 친구인가?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장 15절

All Photos-1068오늘 우리가 함께 찬양하면서 고백하길 “예수는 좋은 내 친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십니다. 아멘?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변함없는 우리의 친구가 되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에서 조금만 앞부분을 읽어보면 조금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방금 우리 15절을 함께 읽었습니다. 그 바로 앞에 있는 1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14절은 분명히 ‘명한 것을 행한다’는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행하면 친구, 아니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친구이십니까? 갑자기 뭔가 조건이 붙었습니다. 친구끼리 조건이 어딨습니까? 그런데 있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명하신 것을 행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행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한 절 뛰어넘어서 1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랍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친구됨의 조건입니다. 내가 한 것처럼 하면 친구, 아니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친구이십니까?

자, 너무나도 기분 좋았던 성경 구절이 갑자기 불편해졌습니다. 조건이 붙고 해야할 것들이 생겼습니다. 친구는 친군데 뭔가 까다로운 친구입니다.

12절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계명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그것을 행하면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그 사이에 있는 13절에서는 뭐라고 하실까요?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예수님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은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랍니다. 이 계명을 지켜야 친구랍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친구이십니까? 아까 우리는 열심히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길래 예수님의 친구이십니까?

All Photos-1067우리는 ‘친구’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합니다. 우리는 흔히 친구를 심심할 때 잘 놀아주는 사람, 술 먹자고 부르면 거절 안하고 나오는 사람, 속 얘기하면 잘 들어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혹은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 정도로 여깁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들이 우리가 예수님을 친구라고 고백할 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누군가에게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라는 고백은 영화 친구에 나오는 그런 의미일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 나오는 그런 의미일수도 있습니다. 마치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은 하나님도 엄한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경험했던 친구의 이미지가 지금 우리가 고백하는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라는 말을 뒤덮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물었던 물음과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왜 여러분의 친구이십니까?

첫 번째, 예수님은 우리처럼 되셨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 앞부분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처럼 되셨다는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는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누군가를 친구라고 부를 때 그 의미는 한 사람을 보면 그의 친구가 어떤 사람일지 알 수 있는 사람, 즉, ‘똑같이 그 삶이 닮아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비난하면서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고 비난할 때, 이 말은 예수님이 죄인이랑 친하게 지낸다는 보고가 아니라 그가 그들과 똑같은 죄인이라는 조롱입니다.

앞에 읽었던 말씀에서 예수님의 친구이기 위한 조건 중에 하나가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해야 한다 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먼저 그 조건대로 우리처럼 되셔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듯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만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처럼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이신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말씀은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조건 역시 만족시키고 우리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친구’라는 말을 총 6번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 3번이 방금 우리가 읽었던 말씀에 나옵니다. 그리고 한번은 나사로를 우리 친구 나사로라고 부르십니다. 또 한번은 세례요한을 비유하실 때 신랑을 위해 신부를 준비하는 친구의 예를 드시지요. 그런데 성경 원문에는 있는데 우리나라 말에는 아무리 ‘친구’라고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2절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고함을 알고 놓아주기 위해서 고민할 때, 유대사람들이 빌라도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 사람을 놓아주면, 총독님은 황제 폐하의 충신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말로 ‘충신’이라고 번역된 말이 사실 ‘친구’라는 뜻입니다. NIV에는 friend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한글 성경이 ‘친구’가 아니라 ‘충신’이라고 번역한 이유는 헬라어의 ‘친구’라는 말이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라는 말로는 그 의미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황제 폐하의 충신이라고 할 때 이 의미는 전쟁터에서 생명을 걸고 함께 싸우는 동지, 전우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인 이유는 나랑 친해서도 아니고, 내가 아픈 얘기하면 들어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이신 이유는 그가 우리와 같이 되시고 또한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되려면 예수님처럼 되어서 그가 하신 것처럼 목숨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다시 처음 우리가 읽었던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한 조건 중에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살지 못했고 누군가를 위해 죽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조건도 채우지 못한 우리를 향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부르겠다.” 이것은 친구가 되기 위한 조건의 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신뢰입니다. 그렇게 살아주리라는 신뢰, 그 길을 뒤따라 걸어주리라는 신뢰, 그리고 결국엔 예수님이 하셨듯 다른 이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주리라는 신뢰 말입니다.

요한복음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뭐냐고 물으면, 많은 분들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요한일서 3장 16절이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릅니다. 아시는 분 계십니까? 마지막으로 이 구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친구가 되길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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