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경험과 은혜

오늘 예수

메모를 뒤지다가 예전에 썼던 글이 있어서 옮겨와 봅니다.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은 정의의 회복과 은혜는 따로 갈 수 없다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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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독교의 메시지가 안먹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죄인은 그 죄의 결과를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경험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 아닐까?

죄에 대한 벌이라는 법칙이 무너진 곳에서 은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실에 그런 경험이 없으니 자꾸 심판을 내세의 문제로 미루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은혜는 내세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세의 심판 개념으로는 은혜가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자꾸 은혜는 의미없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아마 목사들이 십일조 안 하면 망한다는 협박을 하는 것도 이런 죄와 은혜의 관계성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어떻게 죄와 심판의 개념을 되살릴 것인가? 그것은 오늘날 악한자의 대명사인 권력자에 대한 심판을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뉴스를 통해 대중에게 ‘돈 있으면 법은 피해갈 수 있다’는 개념이 끊임없이 재확인 되는 사회 속에서는 절대 은혜가 힘을 받을 수 없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아니라 돈이 은혜를 내려주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즉 권력자에 대한 정의가 회복되지 못하면 기독교의 메시지는 원래의 의도대로 전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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