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신의 길, 인간의 길’을 보고 – 3,4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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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신의 길 인간의 길’이 드디어
4편을 마지막으로 말 많았던
여정을 마무리했다
. 당초
한기총의 방영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영을 강행한
SBS와 한기총과의 갈등은
4편이 한기총의 반론보도와
함께 방영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는 듯 보인다
.3,4편이 이틀 간격으로 연속방영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글로 함께 다뤄보려 한다.



‘신의길, 인간의길’ 3편 남태평양의 붉은 십자가

3편에서
먼저 살펴볼 수 있는 주제는 인간이 가진 종교성의
의미
라는 것이다
.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신앙과 교회의 잘못된
선교 역사에 대한 부분은 약간 진부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좋은 문제제기였다고 생각한다
.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국의 비정상적인
종교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 일반적으로
사회의 안정성
, 혹은 경제적
수준과 그 국가의 종교성은 반비례하는 것이 보통인데
미국은 경제적 수준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있어서는 열정적이라는 것이다
.
다큐에서는 이런 미국의 비정상적 종교성의 원인을
미국의 불안정하고 양극화된 사회구조를 통해서
분석해냈다
. 다시 말해 미국은
경제적인 수준은 높지만 의료보험 제도등 사회의 구조가
불안을 유발하기 때문에 종교성이 높다는 것이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난 학기에 선교학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와 많은 논쟁을 했던 부분 중에 하나가
이것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 기존의
기독교 선교는 복음과 사회성을 예리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
. 그들은
지켜야할 것과 버릴 수 있는 것을 간단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우리가 가진 복음은 곧 우리가 가진 사회성을 포함한
결과물이다
. 우리가 어떤
신학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도 우리의 믿음때문이기
보다는 우리의 사회성의 반영이라고 보아야 한다
.
과거 부끄러운 교회의 제국주의적 선교는 말로
할 것도 없고 미국의 종교성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이
가진 복음은 그들이 가진 사회성의 결과물이다
.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든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다른 말로 그들의
종교가 그들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
종교를 쇼핑하는 사회거나 다른 문화에 맞서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사회거나 종교는 자신들의 삶을
반영한다
. 누군가가 ‘신학은 인간학’이라고 했던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지적한
SBS의 노력은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


3편에서
또 한가지 살펴볼 중요한 주제는 구원에 관한 것이다
.
제작자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내 눈에는 굉장히
중요한 주제로 다가왔다
. 다큐는
종교성과 경제수준을 비교한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 아마 제작의도는
부유하고 발달된 국가일수록 덜 종교적임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내 눈에는 정반대로 보였다
.
즉 인간은 자신의 가능성이 끝나는 곳에서야 신을
찾는다는 것이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간 쯤에 보여진 영국의 샤머니즘
숭배자들이라던가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라는 구절이
떠오른 것은 나뿐일까
?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같은 영국인이었던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 범죄한
인간이 갖는 원죄
, 즉 죄된
본성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 그는
원죄는 행동이 아닌 바로 그들의 상태라고 말하며 당시
타락한 영국 사회가운데 거룩과 완전
,
그리고 신과 인간을 향한 사랑이라는 길을
제시했었다
.

그들의 인터뷰 내용가운데도
나타났듯이 신이라는 존재가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나에게 구원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 필요하다면 그것은
과연 나로부터 올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은 두가지이다.
첫째로 사회의 발전은 불안을 감소시킴을 통해서
인간의 연약함을 가린다
. 하지만
이것은 결코 그것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
인생의 위기 앞에 설 때 인간은 신을 찾게 된다.
반면에 위기 앞에서지 않으려는 사람,
또은 그것을 위기라고 인식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결코 신을 찾지 않는다
. 그들은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혹은
힘들고 괴롭지만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죽음이라는 유한성을 가진 나’라는
존재는 그 존재 자체에 위기와 불안을 내포하고 있다
.
아무리 인정하려 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폭풍은
불어오는 법이고 인생의 끝은 다가오는 법이다
.


둘째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라면 그 구원이 어디로부터 온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이것은 기독교의
복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
기독교의 진리는 그 구원이 나로부터 올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자유주의 신학이 무참히
무너진 시기가 바로
2
세계대전이다
. 전쟁과 함께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는 깡그리 무너졌다
.
종교가 불안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사회가 안정되면
인간은 신을 찾지 않는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구원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인간의 오만함이 무너지는 시점에서
인간은 신을 찾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
기독교의 복음은 이처럼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향해있다
.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이나 부자들과 함께하지 않으시고 거지
,
창녀, 세리들과 함께
하신 것은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 절망적인
삶의 소망이요
,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가 가져다준 물질의 풍요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소망에 부풀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명과
경제의 발전과 종교성이라는 것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
. 왜냐하면 종교라는
것은 내가 무너진 자리 즉
, 불안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

미국이나 한국에서 부와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종교가 사회를 향해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신의길 인간의길’ 3편에서는
인간의 종교성이라는 것과 사회성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물론 이번에도 다큐의 진행은 그다지 매끄럽지
않았다
. 미국의 종교성과
범죄율이 정비례하는 것을 보여주며 마치 종교적일수록
더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 것처럼 편집해놨지만 이것은
바로 앞에서 자신들이 이야기했던 종교성이라는 것이
사회적 불안요소와 정비례한다는 것을 간과한 분석이다
. 사회적 불안 요소가 많은 곳이 종교성이 강하다. 동시에 사회적 불안 요소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범죄율도 높은 것이다.
이처럼 SBS의 보도는
자료 자체의 진정성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의도에
유리하게 편집하여 해석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다시한번
지적하게 되는 대목이다
.


‘신의길 인간의길’ 4편 길위의 인간

4편은
그나마 속 시원한 부분들이 많았다
.
조로아스터교에 관한 부분도 그러했고 종교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을지 모른다는 것을 종교 대화의
근거로 내세운 부분도 상당히 좋았다
.
하지만 해묵은 종교 다원주의의 이론들을 다시
들고 나온 것 같아서 진부한 면도 없지 않았다
.
나의 의견이라면, 나는
종교의 배타성 자체를 완전히 포기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물론 종교의 배타성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하는 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그렇다고 그 배타성이 완전히 포기되고
하나의 종교를 만드는 것 또한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종교적 폭력도 배타성의 결과이지만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종교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것 역시 배타성이다. 종교의 폭력성만 보고 배타성의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종교와의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닌 또 다른 대립과 양극화를 위한 진보/보수의 이념 논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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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종교 다원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종교가 함께
포용되어질 수 있는 틀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또
하나의 관점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는 것이다
.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좋아하는 표현처럼 산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을 하나 더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다
.
정작 종교 다원주의가 가야할 길은 서로의 배타성을
인정하면서 발전적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서로를 포용하며
인정하여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
그것은 결코 상대의 교리에 흠집을 내거나 비판하거나
포기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
오늘날 종교의 환경이 이미 배타적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정한 예수를 찾고 진정한 모하메드의 가르침을 찾는
것은 결국 지금의 것은 순수하지 못하고 무언가 잘못되었고 진짜가 아니라는 부정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다큐멘터리의 완성도에
관해서는 별다르게 할말이 있다기 보다는
4부작까지
만들기에는 힘에 붙여보였다는 생각이 많이 있다
.
논쟁이나 내용은 1편의
신화나 종교의 교리에 관한 부분으로 너무 많이
치우쳐버렸고 정작 종교간의 대화에 대한 길을 열어놓는
부분은 많이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
이야기전개 역시 다큐의 흐름을 따라간다기 보다는
이미 짜여진 각본에 맞춰서 필요한 부분을 편집했다는
느낌이 많았다
. (이것은 내용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다큐 자체의 완성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 신학적 이해역시
진보적인 진영에서 이야기되는 것 중에 상당히 상식적인
것에 그쳤다는 것도 안타까운 점이다
.
꽤 영향력 있는 학자들을 섭외하여 등장시킨 것은
지금까지 한국 종교 다큐에 있어서 놀라운 발전
(?)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너무 일부의 의견을 확대해석한
면도 없지 않다
. 아직 우리나라의
방송 수준이 종교에 관한 다큐를 그럴싸하게 만들어낼만큼의
수준은 안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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