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6:20-26] 팔복? 우리가 잃어버린 축복과 저주 (3)

이 글은 부록으로 썼던 이야기를 앞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세번째 부분으로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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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e

‘지금’과 ‘그날’사이를 사는 사람들

이 글을 끝내기 전에 누가의 복음서를 읽고 있는 독자들이 누구인가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전 글에서 누가복음을 ‘부유한 이에게 보내는 가난한 이를 위한 복음’이 라고 정의했다. 그 이유는 누가복음이 표면적으로 ‘각하(κράτιστος)’라고 불리는 데오빌로를 수신자로 설정하면서도 끊임없이 부정적인 관점으로 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쫓은 제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를 만나고 부당하게 번 돈을 다 갚겠다던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사로를 돌보지 않아서 후회하는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예수의 모습을 통해서 누가는 끊임없이 부의 문제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당연히 이런 언급들은 부자들에게 불편했을테지만 누가는 그 불편함을 감수할만큼 부의 문제를 제자로서의 삶의 핵심이라고 믿고 있다. 누가의 복음 속에서 부자는 거부되며 가난한 자는 환영받는다.

이런 누가의 관점은 마치 세상을 가난한 사람과 부요한 사람으로 양분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유산계급과 무산계급 같은 프레임으로 이 말씀을 읽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라는 누가의 표현은 세상을 양분하는 표현이 아니다. 당시 사회에서 부요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속주의 몇몇 엘리트 집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환경 속에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자(πτωχοι)’라는 표현이 이런 대다수의 대중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표현은 당시 사회의 극빈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계 수준 이하의 삶을 살았지만 그들이 모두 ‘가난한 자’로 불리지는 않았다. 즉, 누가가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를 언급할 때 그는 양극단 사이에 어떤 집단의 자리를 비워두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찾아온 병자들처럼 가난한 이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버릴 배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데오빌로처럼 부자도 아니었다. 누가복음의 실제 독자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의 선포 속에서 ‘가난한 자’와 자신을 동일시 하고 ‘부요한 자’와 자신을 차별화 할 것을 요구받는다. 누가가 극명하게 부와 가난을 대비시키지만 그의 실제적인 관심은 이상적인 의미의 부자나 가난한 자가 아니라 그 사이에서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이들이다.

‘지금’이라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데오빌로의 삶을 꿈꾼다. 그물이 찢어질만큼 물고기를 잡은 베드로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가 잡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쫒았다는 이야기에 감동받기보다는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다시 한번 믿음으로 그물을 던지자고 노래부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은가. 그런 우리들에게 부요한 자를 향한 예수의 저주는 위험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가난한 자가 복되다는 축복은 데오빌로를 꿈꾸는 욕망에 가려 축복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집 앞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나사로 쯤은 무시하면서 쫌 더 편하게, 부요하게,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우리의 욕망은 그렇게 2,000년 동안 누가의 축복과 저주의 선언을 마태의 팔복 뒤에 가려왔다. ‘가난한 자의 것이라 선포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의 자리는 어디인가?’ 아마 누가의 글을 읽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끊임없이 이 고민 속에서 누가의 글을 읽어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을 살지만 동시에 ‘그날’ 앞에 서 있는 ‘지금’과 ‘그날’ 사이를 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수의 선포는 ‘지금’ 부요하게 살고 있는 부자들을 향한 변혁의 메시지임과 동시에 그들을 동경하며 내 옆에 가난한 자를 향해 눈을 가리고 있는 수많은 ‘데오빌로 지망생’들을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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