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신학의 주체로서 고린도 교회

paul_mosaic처음에 고린도전서로 논문을 쓰려고 했을 때 했던 생각가운데 하나는 “바울의 신학을 형성시키는 주체로서의 고린도”였다. 물론 논문은 다른 내용이 되긴 했지만…

민중신학을 배우면서 감명 깊었던 것은 복음서의 주객도식을 뒤집어 민중이 네러티브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다. 민중이 예수냐의 문제는 차후하고 적어도 예수를 예수이게 하는 것은 민중이었다. 그런데 바울신학에 있어서만큼은 이 주객도식이 무너지질 않는다. 교회는 바울신학의 배경으로 연구될 뿐이다. 가끔 그 입장을 대변하려는 신학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결론 역시 그들이 본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로 귀결된다. “여자의 눈으로 보니 바울도 가부장주의자” 뭐 이런 식이다.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위해 그들의 눈이 인용될 뿐 실제 바울을 바울이게 만든 주체로써 그들이 어떻게 바울의 편지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바울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를 공부할 때는 도무지 풀어갈 방법을 못찾겠다 싶었는데 고린도후서를 공부하면서 약간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른 서신과 달리 고린도는 복수의 서신을 보존하고 있다. 데살로니가전후서가 있지만 데살로니가후서의 바울저작이 의문시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복수서신은 고린도전후서 뿐이다. 게다가 고린도후서가 몇개의 서신으로 구성된 복합서신이라는 이론을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고린도서신만으로 적어도 네개의 바울편지의 내용의 힌트를 얻을 수 있으며 더불어 바울에게 보낸 고린도인들의 편지도 약간이나마 재구성할 수 있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두개의 고린도서신은 굉장히 긴 대화의 기록이며 이 과정에서 고린도교회는 끊임없이 바울의 이야기상대가 된다.

고린도교회의 현상을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에서 벗어나서 바울과 대화하는 그들의 신학으로 이해한다면 바울신학 형성에 중요한 논쟁자로서 등장하는 교회의 모습을 끄집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뭐라고 말했느냐가 아니라 고린도교회가 어떻게 바울로 하여금 그것을 말하게 했는가 그리고 교회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왜 거부했으며 어떤 정당화의 과정으로 자신의 것을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가 중첩되는 내용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밑으로 흐르는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다면 바울의 특정 신학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고린도교회의 역할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즉, 잘못해서 가르침받는 자가 아니라 바울이 신학을 형성하도록 끊임없이 묻고 문제제기하는 자로써 고린도교회의 역할을 재구성해낼 수 있다면 오늘날 교회에 대한 이해도 많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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