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장 본문비평 장치 해설

얼마 전에 1세기로 추정되는 마가복음 사본이 발견됐다는 글에 어떤 분이 “왜 신뢰할만한 5000개의 사본을 제쳐두고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거, 변개한 고대사본 2개가 가장 오래됐다는 이유로 가장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궁금하네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마가복음 16장 끝부분에 대한 본문비평장치 해석과 더불어 9절 이후가 삭제된 이문을 원문으로 보는 이유에 대해서 올려본다. 아래 그림은 네슬알란트 28판의 16장 8절에 해당되는 비평장치의 일부를 보기 편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마가복음 엔딩

본문비평 장치의 첫번째 절은 소위 짧은 엔딩으로 알려진 부분만 수록하고 있는 경우를 보여준다. 짧은 엔딩이란 8절 뒷부분에 추가되는 부분으로 새번역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여 각주에 수록하고 있다.

“그 여자들은 명령받은 모든 일을 베드로와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간추려서 말해 주었다. 그 뒤에 예수께서는 친히 그들을 시켜서, 동에서 서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구원을 담은, 성스러우며 없어지지 않는 복음을 퍼져나가게 하셨다.”

이렇게 짧은 엔딩만을 수록하고 있는 읽기는 고대 라틴 번역 k와 하클렌시스판 시리아어 번역본의 여백에 쓰여진 읽기의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이 읽기를 지지하는 사본의 수가 굉장히 적은데다 사본의 질도 떨어지기 때문에 외적 증거가 약하다.

비평장치의 두번째 절은 짧은 엔딩과 현재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긴 엔딩을 함께 수록하고 있는 사본에 대해서 소개한다. 이 이문은 6-9세기에 기록된 네개의 대문자 사본과 세개의 소문자 사본, 사히딕 방언과 보하이릭 방언의 콥틱 번역본 일부 사본과 에티오피아어 번역판 일부 사본의 지지를 받는다.

비평장치의 세번째 절은 긴엔딩만 존재하는 전통적인 읽기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이 읽기는 8개의 대문자 사본의 지지를 받는데, 주로 5세기(A,C,D,W)와 9-10세기(Κ,Γ,Δ,Θ)사본들이다. 그리고 페밀리 13으로 명명되는 소문자 사본 그룹과 몇몇 주요 소문자 사본, 그리고 다수 본문(majority text)으로 불리는 소문자 사본 필사본들, 고대 라틴어와 일부 시리아어 번역, 대다수 보하이릭 방언 번역본과 이레니우스,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 등의 교부들의 인용문 일부의 지지를 받는다.

긴 엔딩에는 몇가지 주목할만한 이문들이 있는데, 페밀리 1로 명명되는 주요 소문자 사본 그룹은 짧은 엔딩은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긴 엔딩 앞에 추가적인 문장이 더해져 있다. 5세기 사본인 W의 경우 14절에 굉장히 긴 삽입구가 포함되어 있어서 전혀 다른 형태를 띄고 있다. W의 경우에는 위 비평장치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긴엔딩의 세부 비평장치에 나타나 있다. 이처럼 ‘긴 엔딩’이라고 구분지은 사본들 가운데 굉장히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8절 이후에 유사한 형태의 엔딩이 함께 있다는 면에서 본다면 가장 많은 외적 증거의 지지를 받는 읽기이다.

마지막으로 8절에서 끝나는 엔딩은 시내사본과 바티칸 사본, 일부 시리아어 번역판과 사히딕 콥틱어, 아르메니아어, 에디오피아어 번역판괴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 등의 교부 저작에 인용된 일부 사본들의 지지를 받는다.

Codex Vat_Mark
바티칸 사본

외적증거의 물리적인 양으로 따지면 긴 엔딩만을 수록하고 있는 이문이 가장 많은 사본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다른 이문에 비해 그 차이가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절 이후가 생략되는 이문을 원문에 가깝다고 판단하는 첫번째 이유는 사본의 저작연대이다. 시내사본과 바티칸 사본은 4세기 사본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문자 사본이다. 파피루스 사본들의 발견을 통해 더 고대 자료들을 연구할 수 있지만 마가복음 16장은 아직 발견된 파피루스가 없다.

비록 긴 엔딩이 가장 많은 수의 사본을 가지고 있지만 외적 증거를 사본 수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특히 독일어 대문자 M으로 표기되어 있는 majority text의 경우 수천개의 사본이 대부분 거의 일치하지만 외적 증거를 판단할 때는 그저 하나의 사본처럼 다뤄진다. 그 이유는 이 사본들이 수도원 같은 곳에서 훈련된 필사자들에 의해서 대량 생산된 사본들이기 때문이다. 15세기의 필사자들이 아무리 많은 사본을 정확하게 배껴쓴다고 해도 그 숫자가 4-5세기 사본에 대한 가치판단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고 배낀 사본이 원문에 가까운 것인지 다른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보고 쓴 사본이 원문과 다른 사본이었다면 그들이 만들어 낸 수천개의 사본은 우리를 원문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근거가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이 이 사본들은 그들이 동일하게 보고 배낀 사본 하나의 가치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이런 다수사본의 증거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마치 숫자가 많으면 더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판단이다.

두번째, 이문의 발생을 설명하기 어려운 본문이 원문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이문에 비해 9절 이후가 생략된 본문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짧은 엔딩과 긴 엔딩은 분명히 8절의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에 대한 당혹스러움에서 발생한 이문으로 보인다. 고대에 성경 본문을 필사하는 ‘신실한’ 필사자들은 복음서를 배껴쓰다가 다른 복음서와 일치하지 않는 본문을 발견했을 경우 그것을 오타로 여기고 다른 복음서들에 맞춰 수정하려는 노력을 자주 한다. 이런 노력은 신앙적 열심에서 행해지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각 복음서의 독특한 본문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소문자 274번 사본의 마가복음 엔딩
짧은 엔딩을 난외에 기록한 소문자 274번 사본

짧은 엔딩은 아마도 긴 엔딩의 요약문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했거나 여백에 적힌 것이었을 수 있다. 실제 10세기의 소문자 사본 274번은 긴엔딩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짧은 엔딩을 여백에 기록하고 있다. 두가지 엔딩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아마도 난외주로 적힌 요약본인 짧은 엔딩을 필사자가 본래 본문으로 여기고 9절 앞이 억지로 끼워 넣었을 것이다. 혹은 두가지 엔딩을 함께 참조한 기록자가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둘 다 본존하기 위한 조치였을 수 있다. 반면9절 이후가 생략된 본문은 부활을 부정하는 집단의 의도적 삭제라는 음모론을 제기하지 않는 이상 그 본문이 왜 삭제가 되었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음모론을 굳이 고려하더라도 함께 수록된 다른 복음서는 그대로 둔 채 왜 마가복음의 엔딩만을 삭제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더구나 고대에는 마태복음이 먼저 기록되고 마가가 그것을 요약한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엔딩을 그대로 둔 채 마가복음의 엔딩만을 삭제했다는 것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세번째, 8절과 9절 이후의 연속성의 문제이다. 실제 9절 이후의 문장과 8절 사이에 여러가지 형태의 이문들이 끼어들고 있다. 8절을 변형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9절 앞에 다양한 본문이 추가되는 이문이 나타난다. 이것은 두 본문이 본래 분리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8절 마지막에 여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언급은 뒤에 이어지는 엔딩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네번째, 메쯔거는 9절 이후 본문이 마가의 언어가 아닌 외부적인 표현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것이다.

12절에서 ‘다른 모습‘이라고 번역된 μορφή같은 단어는 마가에서 단 한번 쓰였을 뿐 아니라 다른 복음서에서도 전혀 쓰이지 않는 단어이다. 14절에서 ‘부활을 사람들’이라는 구절에서 사용된 θεασαμένοις가 분사 형태로 사용된 것은 마가복음과 요한복음 정도이지만 어형 변화를 무시하더라도 이 단어를 예수의 부활과 연결하는 것은 마가복음의 긴 엔딩이 유일하다. 역시 14절에서ἐγείρω를 분사형태로 사용하는 것도 마가복음 전체에서 긴 엔딩 부분이 유일하다. 17절에서παρακολευθεω는 신약성서 전체어서 4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미래부정사로 사용한 예도 마가복음의 긴 엔딩이 유일하다. 이단들이 자주 사용하는 18절은 거의 대부분이 마가 혹은 신약성서 전체에서 사용되지 않는 낯선 단어들이다. 19절에서 예수가 하늘로 올라가시는 장면에서 사용된 ἀναλαμβάνω의 경우도 복음서 전체에서 마가복음의 긴 엔딩에만 사용된다. 20절에서 “주님께서 함께 일하셨다”고 번역되는 συνεργοῦντος는 오히려 바울적인 용어라고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분사형태는 마가의 긴 엔딩이 유일하다.

이처럼 많은 단어 혹은 용례들이 마가복음의 16장 9절 이하의 긴 엔딩이 마가적이지 않은(혹은 신약성서 전체에서 낯선) 본문임을 보여주고 있다. 마가복음의 긴 엔딩은 신약성서 전체에서도 생소한 단어를 사용할 뿐 아니라 분사를 많이 사용하는 세련된 헬라어를 구사한다. 그러다보니 긴엔딩의 용례들이 일부 후대 목회서신의 용례들과 유사한 부분도 있다. 이는 아람어적 특성이 많이 나타나는 투박한 헬라어를 사용하는 마가복음의 용례와는 많이 어긋나는 것들이다. 물론 이런 단어 사용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논쟁적일 수 있다.

우리가 간단하게 “긴 엔딩”, “짧은 엔딩”이라고 이름 붙인 본문들 안에도 또 다른 수많은 이문들이 존재하며 그 차이는 신약 성경 전체를 따져보더라도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사실 말만 같은 단어로 묶어놨을 뿐 그 본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상당히 크고 다양하며 이런 이문의 발생 초기부터 발생하고 있다. 그렇기에 바티칸 사본과 시내사본이 부활을 삭제하여 성경을 변개하고 있다는 흔한 오해는 이런 나머지 사본들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것이다. 그저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본문만을 무턱대고 신뢰한 채 마치 굉장히 신뢰할만한 엔딩이 원래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뢰할만한’ 사본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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