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속이지 말라 : 갈라디아서 6장 번역에 대한 고민

2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3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4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5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2-5‬ 새번역)

오늘 하루 종일 골치 아팠던 본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1절은 해결이 안됐다. 이 구절을 읽다보면 1절을 포함해서 각 절이 서로 따로 논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알아먹기도 힘들 뿐더러 특히 2절과 5절은 서로 모순되는 권면처럼 보인다. 여기에서는 몇가지 문제만 얘기해보자.

일단 3절은… 뭔 소린지 모르겠다. 마치 ‘ 어디서 듣보잡 녀석이 나대냐’며 눈꼴시려 하는 사람같다. 원문 역시 쉬운 구조는 아니다. 보통 번역들이 εἶναί τι를 뭔가 ‘사람의 됨됨이’ 혹은 ‘일의 성취’ 아니면 ‘사후의 공덕’쯤으로 멋대로 이해하도록 애매하게 번역해놔서 그야말로 읽는 사람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여기서 εἶναί τι가 가르키는 것은 앞에 나오는 ‘남의 짐을 지는 것’이다. 즉, 남의 짐을 지지 않으면서(μηδὲν ὤν) 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럼 속인 것과 속이지 않은 것을 어떻게 구분할까?

이어서 4절에서 바울은 각자가 자기의 일을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도 어렵다. 일단 τοτε는 ‘일을 점검하는 그때’이지만 의미상 ‘일을 점검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5절까지 뒤에 이어지는 문장은 모두 미래시제라는 점은 의미가 있다. 여기서 점검한 각자의 일은 자신에게만 자랑할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아니다.

이제 문제의 5절인데… 이게 언뜻 보기에 2절과 모순되는 얘기처럼 들린다. 남의 짐을 지라더니 다시 자기 짐을 지란다. 새번역의 번역을 2절과 모순되게 처리하지 않으려면 마치 모든 사람에겐 각자가 져야할 몫의 남의 짐이 있다는 식의 상상의 나래를 펴야한다. 여기에 문법적인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는데, 첫째로 주동사 βαστάσει의 미래시제를 왜 ‘- 해야한다’는 식으로 번역했을까? 이 단어는 정확하게 2절의 그것과 같은 단어지만 2절에선 현재 명령법이다. 물론 미래가 당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이러면 4절과 5절을 어떻게 연결하라는걸까?

두번째 의문점은 5절 앞에 있는 γαρ를 왜 번역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니 마치 5절이 4절의 결과로 바울이 하려는 권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2절의 의미는 사실상 공중에 뜬 것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내가 번역해보면 이런 의미에 가깝다. “왜냐하면 각자가 (다른 이의 짐이 아니라) 자신의 짐을 질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남에게 자랑할 것이 없는 이유가 우리가 남의 짐이 아닌 ‘자신의 짐만’ 지는 삶을 (그것이 드러나는 미래 시점에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옮기진 않았지만 이어지는 6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말씀을 가르침받은 이들은 가르친 자와 모든 좋은 것을 나눠야 한다고 권면한다. 바로 이 나눔이 그들의 짐을 지는 행위인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7절부터 바울은 앞에서 말했던 ‘스스로 속임’에 대해서 다시한번 말한다. 즉, 남의 짐을 지지 않으면서 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자들을 향해서 바울은 ‘스스로는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조롱당하지 않으신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선언이 앞에 얘기했던 4절과 5절이 왜 미래시제인지를 알려준다. 하나님앞에서 그들은 ‘자기의(ἑαυτοῦ)’ 육신을 위해 심은 자들과 영을 위해 심은 자들이 수확하는 ‘결과’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그들이 심은 것이 내놓는 그대로의 결과를 통해 그가 정말 남의 짐을 져 주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짐만을 챙겼는지 드러난다.

바울이 말하려는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은 마음이나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결과로 설명되는 것이다. 아마도 바울이 의도한 실질적인 행위란, 가르친 자들 즉, 복음을 위해 떠돌아다니던 사역자들을 위한 교회의 재정지원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갈라디아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바울서신의 큰 주제 가운데 하나인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일 수도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이건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삶의 실천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6 Comments

  1. 갈라디아서 6장 1~5절에 대해 저도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왜 각각의 절이 따로 놀까 하며 씨름하고 있었는데, 님의 글을 보니, 제가 그리스 원어 분석까지는 못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 혹시 도움이 될까 올립니다. 6:1절은 5:26절과 이어서 생각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즉, 5:26에서 관계에 있어서 헛된 영광(유대교적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와 같이 헛된 영광을 추구하고 있음을 내포하고 있는듯 보임)을 구하지 말고, 관계에 있어서 6:1절처럼 해라 라는 식으로 이해해보면 어떨까요?

    1. 6장 1절이 2절부터 이어지는 내용과 분리되는 내용 같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5장 26절까지 이어지는 내용의 결론이 되겠지요. 좋은 팁 감사합니다.

  3. 2절의 ‘짐’과 5절의 ‘짐’에 대해서는 제가 원어풀이로 설명을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주석서들을 참고해보면, 2절의 짐은 ‘삶과 생활의 문제’에 대한 짐을 의미하고, 5절의 짐은 ‘각 개인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그것에 순종하며 반응하는 짐’을 의미하는 거라 나오는데, 이미 파악하신 것일수도 있겠지만,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1. 뭐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지만 사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저는 오히려 5절이 γαρ로 연결되면서 4절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미래형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위로 이해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굳이 ‘짐’이라는 단어를 두가지 의미로 구별하는 것은 불필요한 작업이지요.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Content Protected Using Blog Protector By: PcD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