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의 첨성대 에피소드를 통해 보는 신학 이야기


요즘 시청률 고공행진 중인 선덕여왕에 드디어 첨성대가 등장했습니다.
첨성대는 덕만공주가 월천대사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한 약속으로 격물이 사사로이 사용되는 것을 막기위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나옵니다.
당시 권력층에 의해서 독점되어왔던 책력을 백성들에게 공개하는 것이지요.
덕만과 미실은 이것을 두고 정치와 종교적 환상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됩니다.
덕만은 책력을 공개하여 백성들이 스스로 파종시기를 정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미실은 이에 맞서 백성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닌 환상이라고 주장합니다.
나 대신 하늘에 빌어주고 신통력을 발휘해 줄 사람에게 의지하길 바라는 것이 백성의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이후 덕만은 첨성대 공사를 진행하면서 백성들이 첨성대를 신성한 것으로 받드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 듯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이 생각난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당시 성경은 라틴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해석은 라틴어를 배운 사제들에 의해서 이뤄졌고 나아가 최종적 권위는 교황에게만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수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출판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교황이나 사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 각자가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게 만든 것이지요.
종교개혁에서 이야기하는 교리적인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루터의 독일어 성서 번역은 당시 유럽의 정치와 문화에 있어서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루터의 이런 개혁으로 인해서 카톨릭과 개신교가 분리되고 교황청이라는 거대종교권력으로부터 하나님과 성서를 성도와 교회에게 돌려주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개신교는 이런 루터의 정신을 다시금 종교권력의 전유물로 만들고 있는 듯 합니다.
만인 제사장의식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고 수많은 성도들이 직접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나아가기보다는 자기 대신 하늘에 빌어줄 누군가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일하신 중보가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이신데 또 다른 브로커를 통해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하는 오늘날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주 선덕여왕을 보면서 미실의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하늘이 누구의 것도 아니었고 그것을 다시 백성에게 돌려주려 하여도 백성은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 것만 같은 것이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미실의 말처럼 백성들을 향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잔혹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누군가가 나보다 나은 능력이 있어서 나를 위해서 대신 빌어주고 대신 일을 처리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루하루 세상 속에서 살기도 힘든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이것이 희망이 아닐까요?
하지만 미실이 옳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덕만이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천지창조부터 부활에 이르기까지 이와같은 종교권력의 세속화와 비신화화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신으로 여겨지던 자연현상은 그저 피조물이 되고 하나님의 형상은 왕으로부터 모든 인간으로 확대됩니다.
파라오에 의해서 독점되던 이집트의 신들은 여호와에 의해서 심판을 받고
하나님은 파라오의 하나님이 아닌 노예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리고 다시금 하나님이 아닌 왕의 지배 아래로 돌아간 이스라엘의 역사와 하나님의 심판을 거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예수의 죽음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일까 생각해볼 때 그것은 종교권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성전의 휘장이 갈라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종교 권력에 의해서 독점되던 하나님의 임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휘장을 떠나 세상을 향해 걸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메시지는 예수의 죽음을 통해 성전이 아닌 각 사람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는 자리를 만들고 심비에 쓴 율법을 적어나갑니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종교권력은 세속화 되고 율법은 비신화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것을 원했을까요?
아무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고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도 그 꿈을 같이 꾸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아마 다음 주 쯤에는 이야기가 풀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든 덕만의 꿈이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기대를 가지고 지켜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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