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책읽기 [7] 사회과학 이해하기 _ 로저 트리그

understanding자고로 “모르면 용감하다”했다. 책을 읽었으니 뭔가 정리하고 남기긴 해야할텐데, 이 책의 리뷰를 쓸만큼 책을 잘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옛날 같았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용감하게 이것저것 써내려갔겠지만, 나이를 먹으니 그것도 쉽지 않은가보다.

 

졸업논문을 쓰면서 아무런 바탕이 없이 지식사회학에 발을 들여놓다보니 헷갈리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런 주장들이 왜 의미가 있는지, 어떤 맥락 속에 있는 것인지 알아듣질 못하니, 어떤 방식으로 연구나 적용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이게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도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순간들이 많았다.

 

문제는… 지식사회학이라는 분야가 사회학 중에도 꽤나 아웃사이더인데다가 유행도 지난 분야라 사회학개론 책을 봐도 지식사회학이라는 챕터에 짧은 설명만 나올 뿐 자세한 설명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처음 접했던 피터버거의 지식사회학은 지식사회학 중에서도 사회학이라기보다는 현상학에 근간을 둔 철학에 가까워보였다. 처음 이 책을 주저없이 집어들 수 있었던 이유도 ‘사회과학에 대한 철학적 소개’라는 이 책의 부제 때문이었다.

 

사회학은 과학인가? 이 책이 붙들고 있는 이 물음은 단순히 어제 오늘만의 문제도 아니고 굳이 사회학만의 문제도 아니다. 흔히 우리가 사회과학이라고 부르는 분야가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지의 문제는 굉장히 긴 논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적 실재’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자연과학적 연구방법이 곧 객관적인 방법으로 이해되다보니 사회과학의 학문으로서의 객관성이 의문시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연과학의 방법론이 사회과학으로 흘러들어오면서 자연과학적 사회과학의 풍토가 생겨나기도 했다. 내가 처음 지식사회학으로 논문 주제를 잡고 피터버거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사회학을 전공하셨다는 분의 말은 이런 사회과학적 흐름을 잘 보여준다.

 

사회과학에서 객관적인 방법은 양적연구밖에 없어요.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사회를 연구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사회과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적 실재’가 자연과학의 연구대상인 ‘자연’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런 문제 앞에 저자는 최근 사회과학의 전개방식 속에 담긴 몇가지 철학적 주제들을 다루면서 실증주의와 환원주의 사이에서 과학으로써 사회학의 방법론을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과학철학의 문제에서 시작해서 지식사회학의 문제와 사회적 실재의 문제, 합리성과 문화, 사회생물학, 비판적실재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굳이 사회과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와 연결된 인식과 실재 합리 등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 전체에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주제가 바로 환원주의와 상대주의이다. 처음에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지식사회학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이다. 지식의 사회의존성을 주장할 경우 지식이 사회의존적이라고 말하는 이의 지식 역시 사회의존적이기 때문에 결국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두가지 방법 사이에서 사회과학의 학문으로서의 객관성을 이야기하려고 꽤나 노력하고 있다.

 

저자는 실증주의와 환원주의라는 거대한 협곡을 가느다란 외줄에 의지해 건너는 곡예사처럼 양쪽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결국엔 둘 사이에서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독립적인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꼭 자연과학의 그것과 같은 기준을 가질 필요는 없다. 사회적 실재라는 것이 엄연히 과학적 실재와 다르기때문에 그에 대한 객관성 역시 자연과학의 기준과 같을 필요는 없다.

 

여러가지 복잡한 개념들의 향연에 정신을 잃긴 했지만, 그래도 몇가지 떠들기는 해야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보람이 있겠다 싶다. 피터버거를 공부한 입장에서 보기에(이 책에서 다뤄지는 몇몇 분야를 공부한 이들도 비슷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피터버거의 모습이 과도하게 편향되었다는 느낌이다. 저자가 수많은 연구들을 큼직큼직하게 묶어서 다루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는 피터버거가 흔히 구성주의 가운데 하나의 예시로 제시하면서 사회가 인간의 경험에 의해 구성된다고 여기는 것은 결국 환원주의로 빠져 상대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피터버거의 경우 인간의 경험에 의해 사회가 구성되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구성된 지식이 객체화의 과정을 거쳐 인간 밖에 존재하는 실재가 되고 나아가 다시 내면화의 과정을 거쳐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까지 나아간다. 피터버거는 이 두가지 과정 사이에 ‘시간적 간격’을 둠으로써 두가지 상반된 과정을 하나로 통합한다. 물론 피터버거를 흔히 구성주의 혹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으로 분류하지만 피터버거 역시 어느정도 저자가 말하는 두 협곡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저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사람이 비단 피터버거 뿐만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책은 대충 이런 식으로 마무리가 된다. 물론 위에서 한 얘기들이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용어를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아 그렇구나 이 책 안 읽어봐도 되겠네’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길 바란다. 지금 내 머릿 속에 남아 있는 이 책의 인상은 반드시 다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것 뿐이다. 실제 사회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사회학과 인문학의 학제간 연구를 생각하고 있다면 한번쯤 정리하고 넘어가면 큰 도움이 될 책일 것 같다.

 

로저 트리그의 다른 책 정보

 

 

 

1 Comment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Content Protected Using Blog Protector By: PcD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