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변론”과 양보, 성령

원문 출처 : http://kjkim1001.egloos.com/1474986

무엇보다도 초대 교회가 어려운 상황을 처리해 감에 있어서 이렇게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한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바울에게 있어서나유대주의적 예루살렘 교회에 있어서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을 텐데양측이 모두 양보하고 합의에 이른다성령을 의지하여 단번에 기도해서 결정을 내리거나 자신이 겪은 체험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끝까지 밀어 부치는 것이 아니라그들에게는 “많은 변론이 있었다오랜 토론을 통해 서로 양보하며 신중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그런 점에서 성령의 역사는 이러한 토론과 대화양보 속에서 진행된다달리 말해성령의 역사가 민주적인 절차와 상대에 대한 승복과 타협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라는 점도 의미 있다누가는 복음서를 기술할 때에도 독선적인 자세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기에 타당하고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1:1-4).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시간을 필요로 하고 서로간에 대화와 양보를 통해 이루어진다성령의 역사라고 해서 단번에 결정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이렇게 긴 토론과 논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그렇지만 많은 경우우리는 ‘변론하지 말라는 말씀만 기억하기 일쑤이다(딤전 1:4; 6:4,20; 딤후 2:23;  3:9). 그러나 동일한 단어 “제테시스가 사도행전 15장에서도 쓰이고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쓸모 없는 변론이 있는가 하면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이루어내는 성령 안에서의 변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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