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책읽기[2] 문명의 배꼽, 그리스 _ 박경철

문명의 배꼽 그리스고린도전서로 논문 주제를 정했을 때 우교수님께서 한번 읽어보면 도움이 될꺼라고 추천해주신 책이다. 원래 여행기같은 건 잘 안읽는데, 교수님의 추천도 있고, 박경철이라는 이름이 주는 호기심도 있어서 집어 들었다. 그런데 거의 1년이 지나서야 이 책을 다 읽은 이유는 전적으로 논문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고 싶다. ㅋ 논문을 쓰던 당시에는 다른 읽을 책들이 눈에 선해서 서둘러 코린토스 부분만 읽고 넘겼더랬다. 논문을 눈 앞에 둔 이에게 인문학적 여유 따위는 사치일 뿐이라… ㅜㅜ 논문을 마무리하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책을 붙잡은 이유는 당시 나의 정신없음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처음 구입할 당시는 청춘콘서트와 안철수 비람이 한텀 지나간 시점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나의 머리 속에는 박경철이라는 이름은 곧 안철수라는 이름으로 연결되던 시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행기라니… 뭔가 속세를 떠나는 도인의 느낌이랄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펼쳤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자기성찰적인 여행기라기보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먼나라 이웃나라처럼 인문학적 느낌이 강한 여행기였다고 하는게 맞겠다.

이 책은 코린토스에서 출발해 스파르타로 이어지는 펠레폰네소스 반도 전체를 다루고 있다. 방금 말했듯, 이 책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인문학 서적이나 그리스 신화에 관한 책 정도로 읽는게 맞을 것 같다. 기본적인 컨셉은 그리스의 유명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의 작품들과 함께 떠나는 그리스 여행이다. 여행기 내내 마치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그의 목소리가 등장하면서 저자와 대화를 한다. 평소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관심있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느껴질 구성인 것 같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에겐 그냥 ‘뭔소리지’ 싶은 정도였다.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그 지역에 얽힌 신화들을 살피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근데 이 책은 신화와 역사가 짬뽕된 이야기의 분량이 굉장히 많다.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국가적 경제 위기를 맞은 그리스의 풍경이 너무 간단하게만 언급되고 바로 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게 조금 아쉬웠다. 그런 모습이 중간중간 보여지긴 하는데, 너무 여행 후 남아있는 스틸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은 단편적 기억만 묘사되고 있다고 할까? 쫌 더 깊이 살펴보고 적어냈다면 좋았을텐데… 아니, 아예 책 전체의 주제를 그런 방향으로 가져갔다면 더 풍부한 인문학적 성찰을 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중간중간 언급되는 말로 봐서는 저자는 그리스 지역을 여러차례 여행하면서 책에서 그려내고 있는 지도를 여러번 밟아본 사람이다. 적어도 이 책은 베낭여행족과 같이 미지의 세계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 생짜바리의 여행기는 아니다. 그가 바라보는 그리스는 초심자의 눈에 비친 것이기보다는 그야말로 작가의 눈에 비친 그리스이다. 어쩌면 그런 저자의 익숙함이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여행에 동참하게 만든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그리스 작가의 눈에 비친 그리스의 모습을 중심으로 신화와 역사를 곁들여 맛있는 그리스 요리 한 코스를 우리에게 대접하고 있다. 책 표지에 적혀있는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라는 문구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저자가 보여주려 하는 그리스의 색깔이다. 고통의 현실에 굴하지 않고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하려는 상승의 욕구가 인간의 탁월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탁월함의 모범으로 스파르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현대의 눈으로 봤을 때, 과도하게 강압적이고 야만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스파르타의 이야기 속에서 탁월함이라는 가치를 읽어내는 저자의 관점은 새로운 눈으로 스파르타를 바라보게 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탁월함 속에서 인간으로써 살아가는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성찰들도 있다.

다만, 너무 선생님 같은 그의 자세는 독자로써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많은 부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잘 모르는 길이라도 함께 좌충우돌 하면서 걸어갈 친구를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로써 나의 욕심이다. 정작, 이 책은 개인의 여행기이기보다는 그의 영웅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성지순례의 여정이다. 그렇기에 거기에는 사소한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인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고, 본질적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 맞을 것이다. 누군가 이 책을 읽는다면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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