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체납하시는 장로님…

37억 지방세 체납 최순영씨 자택 들어가보니[다음 뉴스 링크]

지인의 페이스북을 타고 들어간 뉴스에서 어처구니 없지만 이제는 놀랍지도 않는 기사를 하나 보았습니다.
13년째 지방세를 안내서 채납금이 37억이라는 전 신동아그룹 회장…
하지만 집을 뒤졌더니 여기저기서 나오는 돈다발과 명품들…
마지막 외치는 변명이라고는 “헌금할 돈을 가져가면 벌받는다”
세상을 향해 복음을 외쳐야 할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나올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고백입니다.
“나는 돈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과 다르지 않네요.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었던 최순영씨는 현재 할렐루야교회의 원로장로로 되어있습니다.
신동아그룹이라고 하면 63빌딩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게다가 최순영 장로는 온누리 교회 건축을 비롯해 극동방송,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교, 할렐루야 축구선교단 등 수많은 기독교 사업에 기여한 바가 크고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교계 원로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난 날 하나님의 역사라고 여기며 감사하던 사업들이 사실은 이런 비양심의 기초위에 서 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장과 성과에 목을 매면서 그 과정의 중요성을 잃어버린 것은 세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세속 권력의 성장주의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장과 함께 영양분을 주고 받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자기만의 사정이 있으니 최순영 장로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제 체질에 맞지가 않네요.
그렇다고 그 행위에 대해서 변호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세금을 체납한 것은 어쨌든 사실이니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구요.
문제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교회 안에서 성도를 선도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법적으로 실형을 살거나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제가 알기로는 장로 면직 같은 것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냥 담임목사가 찾아가서 ‘장로님 회개하십시오’라고 하면서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요.
그마저도 제대로 옳은 소리 할 수 있는 담임목사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시나리오는 이런 식입니다.
아마 이런 소식이 담임목사에게 들어가면 담임목사는 심방을 하고 장로님은 목사님에게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기도해달라고 하겠지요.
이 상황에서 “이것은 기도할 문제가 아니라 장로님이 회개하셔야할 문제입니다”라고 말할 미친 목사는 없습니다.
그런 입에 바른 소리 하는 목사는 저렇게 큰 교회 담임목사까지 되지도 못합니다.
목사의 청빙과 신임이 당회 즉,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조직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기서 목사님이 장로님의 심기를 잘못건드린다면 그것은 교회 내에 힘싸움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완전할 수 있느냐?”,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신게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러 오신 것이다.” 뭐 맞는 말입니다.
복음에 모든 사람이 동일하고 부자 역시 거기서 예외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깨끗한 부자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안에 돈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이 잘못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여전히 세상의 돈 많은 사람의 모습으로 있다면 그것은 잘못일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은 아니지만 죄인을 불러 지멋대로 살도록 하시려고 오신 것도 아닙니다.
물론 지금 그 사람의 모습이 그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겠지요.
하지만 장로의 자리는 그런 사람이 서는 자리가 아닙니다.
특히나 당회를 중심으로한 장로제도라는 간접민주제가 거의 모든 교단에서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상 장로와 목회자는 한명의 신앙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대표해서 세상 앞에 서야하는 위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도덕적 기준과 사회적 책임이 뒤따릅니다.
물론 모든 인간이 완전할 수 없지만, 기독교인은 세상이 잘못이라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 속에서도 사탄의 체제가 가진 악함을 깨닫고 그 안에 속해 있던 나의 부족함과 죄인됨을 인식하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개신교의 복음이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돈많은 지배계층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의 방향성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기업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불리고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려는 교회의 노력은 이미 예전부터 그 위험성을 지적받아 왔습니다.
훌륭한 목사가 되려면 신학서적보다는 디자인과 마케팅을 공부해야 하고,
큰 교회를 비판하지만 결국 자신도 교회성장이라는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기 일반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생명을 잃어버린 복음은 지배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기득권층에게는 너무나도 반가운 친구요 고통당하는 자들에게는 착취자의 또 다른 모습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세상 지향적인 교회의 모습을 개인의 도덕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개신교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이고 더불어 그 복음의 왜곡이 가져오는 문제입니다.

흔히 교회에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다른 종교에도 문제가 많은데 유독 교회 문제만 드러나서 욕을 먹는다구요.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가지 착각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종교에 비해서 많든 적든, 그리고 그것이 드러났든 드러나지 않았든.
하나님은 그런 것과 관계없이 우리의 죄악들을 바라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언론 때문에 드러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잘못된 보도라면 바로잡아야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이상 우리는 사탄의 공격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더러운 부분을 일부러 감춰서 사람들을 속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산위의 마을은 숨기지 못하고 등잔은 말 아래 두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세상가운데 드러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몇일 전 다음 뉴스에는 총회에 보고 되는 개신교 신도의 수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을 보도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신도 수 뚝뚝.. 개신교계 긴장]
총회의 교세통계라는 것이 굉장히 보수적인 수치이고 어느정도 뻥튀기된 면도 있는 수치기 때문에 이 수치에서 교인감소가 보고되었다는 것은 국가나 외부단체에서 시행하는 조사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미래의 모습이라고 예상되는 미국의 개신교에서는 청소년들이 ‘교회에 하나님이 없다’면서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를 안나가는 소위 ‘가나안 성도’가 100만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교회가 싫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가 그저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의 개혁이 아니라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전에는 “교회는 사람보고 다니는 거 아니”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런 말들이 개신교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정당화해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최대의 걸림돌은 교회 자신입니다.

제발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오늘날 교회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지 깨닫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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