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대화가 아닙니다.

오랫만에 블로그에 신학적인 성향의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려고 봤더니 예전에 썼던 글 중에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있더라능…
[기도는 대화인가?]
기도는 대화가 아니며 복종이고 믿음이라는 글이었는데…
완전히 같은 내용은 아니라서 글을 더 써보기로 했다.

기도가 대화라는 슬로건이 강조되는 문화는 최근 대화와 소통이 강조되는 문화와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이 어린 사람은 하나님께 이거달라 저거달라 요구만하지만 성숙한 성인이 된 그리스도인은 부모와 인격적으로 대화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내용은 어떤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본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사실 이 목사님 글을 읽고 생각하다가 쓴 것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읽는 분들의 입장에선 비판하는 대상이 말하는게 정확히 무엇인지 애매모호하고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해하시고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런 대화와 소통을 기뻐하시고 그것이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묻고 싶습니다.
오늘날 아이를 키우는 이 땅의 부모님들은 애들이 빨리 빨리 커서 부모와 인격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가 되길 바라시나요?

뭐 어떻게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나이의 사춘기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은 이런 말들에 공감하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애들이 도무지 말을 들어 쳐먹지를 않으니 빨리 어른이 되고 철이 들어서 부모님 마음도 쫌 알아주고 그랬으면 좋겠지요.

근데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 품에 안겨서 먹고 울고 하는 것 밖에 할 줄 모를 때, 그 때도 이 아이가 빨리 커서 나랑 대화가 됐으면, 하고 생각하셨습니까?
아니, 그 땐 아이와의 소통이 없었나요?
제대로 된 발음 하나 하지 못하던 유치원 시절 아빠에게 달려와서 재롱부리던 아이를 보면서 ‘얘가 빨리 커서 나랑 인격대 인격으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할텐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 땐 아이와의 소통이 없었나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엄마 아빠한테 떠들어 대던 초등학교 시절의 자녀와 장성해서 회사에 다니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자녀 중에 누구와 더 많은 소통, 대화를 하고 계신가요?
아이가 인격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던 시절…

우리는 어른들의 입장에서 ‘말’, ‘언어’라는 것에 매달려 소통은 그것을 통해서만 하는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한다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소통이 없는 것이 아니며, 부모와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그 그 관계의 친밀감이 더 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심장소리, 눈빛, 어설프게 움직이는 몸동작 하나까지 부모에게는 모든 것이 소통이고 대화입니다.

기도가 대화라는 슬로건은 ‘말’이라는 것에 너무 많은 권한을 넘겨 준 나머지, 존재의 중요성을 잃어버린 세대가 하는 말입니다.
애들이 길거리에서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는 장면, 사춘기 자녀가 부모에게 반항하며 사이가 소원해지는 장면,
부모의 말(혹은 권위)를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이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마치 우리의 모습이 초등학생 아이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만 하는 아이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의 입장이 그런가요?

기도는 대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대화를 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맺고 싶어하실 뿐입니다.
그리고 그 기본은 언어적인 대화나 소통이 아닙니다.
대화나 소통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이해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존재입니다.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그냥 그 품에 머무는 것.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기지개를 펴고, 몸을 뒤집는 것정도의 일밖에 하지 못할지라도 부모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곳에 머무는 것.
바로 그 존재가 그 모습 그대로 기도입니다.

성경은 기도가 대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대화가 아니라 계시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삶을 통해, 오늘도 어려움 속에서 고통하는 이웃들을 통해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중에 [굿닥터]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자폐증 레지던트 이야기인데, 거기서 미숙아 수술을 놓고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이 대립을 하게 됩니다.
아이가 살고 싶어 한다는 주인공에 말에 선배 레지던트는 미숙아는 의사표현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주인공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닙니다. 아이는 살고 싶어 합니다. 너무 어려서, 너무 힘들고 무서워서 말은 하지 못하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얼마나 많은 말이 필요할까요?
몇분동안 기도해야 할까요?
아니요, 그런거 없습니다.
기도는 삶이고 삶은 곧 기도입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Content Protected Using Blog Protector By: PcD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