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릴 때 카드를 대주세요

히루꼬박 감기로 고생하다가 겨우 몸을 추스르고 학교로 가는 버스 안…
내리는 문 바로 앞에 앉아 있던 내 앞으로 초등학생쯤 된 여자아이가 걸어왔다.
버스카드를 찍으려고 하는데 이런 소리가 나왔다.
“내리실 때 카드를 대주세요”
아마도 방금 차에 탔나부다. 거기서부터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했는데 이 아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카드를 찍는 것이다. 여지없이 나의 비판적인 의식은 비판거리를 찾아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타자마자 찍으면 돈 더 안내도 된다는 걸 애들도 아는구만, 어른들한테 애들이 저런거까지 배우다니…”
잠시 후, 몇번의 시도 끝에 그 아이는 교통카드를 찍는데 성공했다. 내 눈 속에 그 아이는 잘못된 교통요금 시스템과 자녀교육, 그리고 사회적 비양심의 전형적인 소재였다. 잠시 후 그 아이가 자신감있게 하차벨을 누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정말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어쩌면 그 아이의 머리속에는 버스카드를 미리 찍으면 추가요금이 안 붙는다는 판단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멀리 간 적이 없을테니 말이다.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데 내가 가진 편견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 아이가 버스에서 내리고 한참동안 내 머릿속이 멍해있었다. 아침에 먹은 감기약 탓인지, 그 아이에 대해서 내 마음대로 상상했던 태도에 대한 뻘쭘함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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