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신의 길, 인간의 길’을 보고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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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일요일에 SBS에서 방영한 ‘신의 길, 인간의 길’을 뒤늦게 보게 되었다.

일단 시작 전부터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한 단체들이 방송에 대한 항의와 함께

여러가지 협박을 했다고 한다.

뭐 일단 그들의 그런 협박이 오히려 방송에 대한 흥미를 돋구워주는 역할을 하는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는 내내 참… 후련했다.^^

이런걸 교회 청년들을 쫌 보여줘야 하는데…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화론과 역사적 예수 연구의 결과들이 나열되면서 반가운 학자들이 등장했다.

고대근동을 연구한 서울대 배철현 교수와 불트만주의자(?)인 김덕기 교수도 출연했다.

게자 버마스와 존도믹크로산까지 출연시킨 SBS의 노력은 정말 대단하다 하겠다.

준비도 많이 된 것 같고 연구도 꽤 깊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문제제기 자체를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으로 한데는 이슈서의 의도가 너무 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주장하는 내용은 학문적 가치는 그닥 없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그 책은 유대교라는 타문화에 배타적인 배경을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차별 적으로 비슷한 것을 가져다 끼워맞춘 책이다.

또한 신약성서의 내용을 통해서 볼 때 바울이 전파했던 신화적인 틀에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이방인들에게 이미 알려진 내용이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예수는 신화다’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논박은 다음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 SBS ‘신의 길 인간의 길’은 표절 : 소기천 교수 뉴스앤조이 기고글)

어쨋든 학자들 사이에서만 공공연하게 이야기되는 것들을 이렇게 이야기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신화론을 건드려준 것은 무엇보다 고맙다.

문득 드는 생각은 앞으로 이런 신화론을 평신도나 일반인이 접하게 된다면

기독교 쪽에서 택할 수 있는 답은 결국 불트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방송 내용이 신화론과 역사적 예수를 통해 균형을 잡는 분위기여서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도 받았다.

불트만을 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불트만이 성경을 신화라고 비판하며

성경의 역사적 가치를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성경을 신화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신화론자들이 받아야할 비판이 불트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불트만은 ‘신화인 부분을 성경에서 걷어내고 보자!’ 가 아니라

신화를 해석함을 통해서 본질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가 성경을 실존적으로 해석한 이유이다.

신화라는 껍데기와 알맹이인 케리그마에서 신화를 걷어내려하면 케리그마는 상처를 입는다고 했다.

신화는 예수라는 인물을 담아낸 그 시대의 언어이다.

그것은 해석되어야 할 것이지 제거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적 접근은 난해한 ‘신화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르낙(Harnack)의 방법을 따라서, 신화적인 ‘껍질’(husk)과 윤리적인 ‘핵심’(kernel)을 구별하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신약성경 안에 있는 신화적인 요소들을 인식하고, 이 신화들 안에 내재하는 보편적인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불트만은 이러한 접근방법을 거부하였다. 그는 신학의 근본적인 임무가 이러한 신화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KCM 지식사전 中>

‘신의 길, 인간의 길’에서 마지막에 도마복음을 보여주면서 신화적 요소를 제거한 순수복음을 얘기했지만

그것은 역사적 예수 연구의 또 다른 함정이다.

흔히 요즘 신학계에서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에서 기독교의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들이 있다.

하지만 신화가 제거된 예수는 역사적 예수일 수 없다.

불트만에게 예수의 이야기가 신화라는 것은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말도 아니고

예수의 이야기들이 거짓말이라는 것도 아니다.

불트만이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서 비판하며 말했듯… 우리는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눈에 비친 예수의 모습이고 신앙의 고백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로써가 아니라 신앙의 증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초대교회의 케리그마, 즉, 선포를 통해서만 받아들여지고 계시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려 했던 것은 정말 성경과 교회가 말하려 했던 것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화라는 것은 결코 기독교의 진리를 파괴하는 것도 아니고

예수를 부인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자꾸 역사를 강조할 때 신화라는 것은 올바르게 이해되기 보다는

역사의 반대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기독교에서 신화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조금 더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번 SBS의 방송을 통해서 교회가 받을 충격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일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평신도가 몰라도 되는 것을 알려줘서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평신도가 목회자보다 똑똑하다.

누구말처럼 목회자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평신도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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