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장 여자가 너울 쓰는 문제에 대한 생각…

한 때 성당누나로 화제가 됐던 김연아, 김태희 미사 중 모습…

예전에 고린도전서 성경공부할 때 생각났던 것을 외부에서 설교할 기회가 있어서 한번 언급했었다.
근데 이게 내 생각만큼 쉽게들 이해 못하는 것 같아서 짧게 적어봤다.
교수님께 잠깐 말씀드렸을 때는 이걸로 논문 써보라고 얘기도 하셨는데…
왠지 관심도 없는 여성문제를 다룬다는게 부담스러워서 쉽게 붙잡지 못하는 주제다.
담 학기에 고린도전후서 수업을 들으려고 하는데 미리 생각난 김에 정리해본다.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은 채로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머리를 밀어 버린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아야 합니다. 그러나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면,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중략)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하여 보십시오.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자연 그 자체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남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불명예가 되지만,  여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영광이 되지 않습니까? 긴 머리카락은 그의 머리를 가려 주는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새번역)

 

여기서 문제는 바울의 결론이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긴 머리가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결론은? 가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바울의 기록에 따르면 여자들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여자들이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예언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은 머리를 밀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이기 떄문에 머리를 밀지 않으려면 가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공감대 때문이었다. 즉, 남자에겐 부끄러운 것은 여자에게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머리에 쓰는 것이 여자에게 합당한 것이라고 여겨진 것이다.

여기까지가 바울이 접한  문제 샹황이고…

여기에 대한 바울의 응답을 나는 또 다른 대안으로 이해했다.
역시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공감대이다. 즉,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은 불명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이것이 여자에게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긴 머리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긴머리를 재해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긴 머리는 머리를 가려주는 구실을 한다고 말함으로써 여자들에게 있었던 두가지 선택권 즉, 머리를 가리거나, 머리를 깍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사회적 요청 앞에서 깍지도 가리지도 않아도 되는 결론을 내어놓는다. 이것은 논리적 결론이기보다는 공감대에 대한 호소이다. 남자와 여자의 속성에 대한 당시의 관념을 역이용해서 여자의 본성인 긴머리를 예배에 합당한 것으로 재해석 시켜버린 것이다. 물론 긴머리를 여자다운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조차 불만인 분들은 ‘이게 무슨 대안이냐?’라고 할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긴머리를 선호했던 당시 사회에서 바울의 해결책은 무언가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것을 지식사회학적 이해로 분석해낼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긴한데…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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