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6-31

여기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란, 실제로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에 의해서 은폐되고 세상에 의해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말하고 싶어도 말할 입이 없고, 자신을 알리고 싶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들의 침묵은 세상을 멀쩡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그들을 침묵시킨다고 결코 그 세상이 멀쩡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실 때, 그 선택의 이유는 그들을 힐링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들을 선택하신 것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치유가 아니라 세상을 뜯어 고치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자들을 선택하셔서 존재하는 자들,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이유는 못 사는 사람의 형편을 개선시켜주기 위함도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자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자로 머물러 있다.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나아진’ 그런 상태가 아니다. 지금 그들의 삶은 그들이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바꾸는 법칙이며 그 열심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것이고 또한 그 안에 있는 우리를 통해 현실이 될 것들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서로를 향해 자랑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나는 선택받는 쪽일까? 부끄러워지는 쪽일까?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Content Protected Using Blog Protector By: PcD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