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본문비평

원문링크 : 김진양의 구약성서 이야기

어떤 보수적 성향의 성서학자들은 (근본주의자) 본문비평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는 학문이라고 비난하는 반면, 어떤
진보적 성서학자들은 본문비평을 보수적인 성향의 단순한(?) 비평학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러나 이들의 견해는 본문비평의 목적을 잘못
이해한 결과에서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문비평은 성서의 오류를 전제하지도 않을 뿐더러, 더구나 단순한 학문이라고 단정지을
만큼 허술하지도 않다. 본문비평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학문적/신앙적 열정이다. 본문비평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지만, 본문비평의 목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본문 읽기/해석의 어려움” 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본문비평에서 말하는 본문해석의 어려움을 성서학자 제임스 바는 (James Barr, Comprarative Philology and the Text of Old Testament)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서를 해석할 때 종종 우리는 해석과 번역의 곤란함을 (difficulty) 당면하게 된다. 문법이 틀리거나 이상한 단어가 사용된 경우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사본은 다른 사본과 다르게 본문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본문비평은 사본들을 단순히 비교하는 비평 방법론도 아니고,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조각조각 쪼개는 성서에 대한 모독
행위도 아니다. 보수적 성향의 학자이든 진보적 성향의 학자이든 모든 성서학자는 성서라는 문서 (text)를 읽고 해석하는
학자로서 자신만의 본문읽기가 요구된다. 나는 본문비평의 시작을 여기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성서학자들이 성서의 언어인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를 공부하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진보든 보수든 모든 성서학자들은 성서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모두가
솔직하다. 즉 본문비평은 한마디로 말하면, 성서의 사본들을 대조하는 중노동이다. 따라서 본문비평은 성서학자나 일반 대중에게도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는 힘들고 지루한 학문(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비평은 성서를 해석하는 모든 사람 (학자든
일반일이든) 에게 반드시 필요한 학문임에 틀림없다 (성서언어를 모르는 일반인들을 위해서 성서학자들의 더욱 철저히 본문비평이
요구된다). 필자는 이글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과 함께 본문비평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1) 본문비평은 왜 필요한가? (본문비평의 목적); (2) 본문비평을 성서본문에 어떻게 하는가? (본문비평 방법); 그리고 (3) 본문비평은 어떻게 적용하는가? (본문비평 실예).

1. 본문비평의 목적

본문비평은 왜 필요한가? 우리말 본문비평은 영어의 Textual Criticism 을 번역한 것인데, 사실 Textual
Criticism 은 본문비평 이라는 말보다 ”사본비평” 이라는 의미가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본문비평은 여러 사본을
비교하여 가장 “적절한 본문읽기”를 (reliable wording of a text) 선택하기 때문이다. 피터 멕카트는 (P.
Kyle McCarter) 본문비평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본문읽기를 결정” (to determine the most
reliable wording of a text)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Textual Criticism: Recovering the Text of the Hebrew Bible,
[Philadelphia: Fortress, 1986], 18). “적절한 본문읽기의 선택”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본문읽기
결정”이라는 명제는 히브리 성경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히브리어 구약성서 BHK
(1937), BHS (1977),  그리고 BHQ (Richard Wesi의 글 Biblia Hebraica Quinta and the Making of Critical Editions of the Hebrew Bible, 2010년에 구약성서 전체에 대한 BHQ 가 출판될 예정)는 중세기 히브리어 사본중 하나인 레니그라드 코덱스 (Leningrad Codex,
1009 년) 에 기초한 것이지 히브리어 원문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즉 본문비평은 지금 우리가 읽는 히브리어는 하나의
(복)사본이므로 복사할 때 오류나 실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전제한다. 그러나 본문비평의 목적이 원본에 가장 가까운
본문읽기의 재건만은 아니다. 위의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본문을 읽을때 만나게 되는 “본문 해석의 어려움” (이 어려움은
히브리어 단어를 모르거나 문법을 몰라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현재 히브리어 본문이 가지고 있는 오류 때문이다) 때문에 여러
사본들을 비교하여 가장 적절한 본문읽기를 하고자 하는데 있다. 성서학자들이 주장하는 본문비평의 목적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가지
차원에서 정리될 수 있다.

(1) 본문의 마지막 형태의 복원: 이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엘리스 브로츠만과 (Ellis R. Brotzman, Old Testament Textual Criticism: A Practical Introduction [Grand Rapids: Baker, 1994], 124) 이다. 브로츠만에 의하면, 본문비평의 목적은 편집자가 본문의 실제언어 (ipsissima verba) 를 마지막으로 편집한 형태를 복원하는데 있다.

(2) 정경화된 문서복원: 이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제임스 앤더스와 (James
Sanders) 브리바드 차일즈 (Brevard Childs) 등이 있다. 이들은 본문비평의 목적은 특정한 종교에 의해
받아들여진 정경의 형태의 복원에 있다. 예를들면, 칠십인역은 다이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한 성경이므로 칠십인역이 히브리 원본에
첨가를 했든 삭제를 했든 칠십인역 자체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여러 복사본의 적절한 본문읽기의 복원: 이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유진 울리치다
(Eugene Ulrich). 울리치에 따르면, 본문비평의 목적은 맛소라 전승의 복원이 아니라, 칠십인역, 맛소라 문서,
사해문서, 사마리아 오경등 다양한 사본의 본문읽기를 복원하는 것이다. 즉 본문의 다양한 읽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울리치의 설명처럼, 필자도 본문비평의 목적은 원본의 복원이 아니라 다양한 문서 즉, 맛소라 문서, 칠십인역, 사해문서, 사마리아
오경을 비교/분석하여 가장 “적절한 본문읽기”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세가지 목적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부르스
봘트케 (Bruce K. Waltke) 의 “구약성서 본문비평의 목적” (”Aims of OT Textual Criticism.”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51.1 [1989]. [Reproduced by permission]).

2. 본문비평의 방법

본문비평은 어떻게 하는가? 본문비평의 목적이 마지막 형태의 복원이든지, 정경화된 문서의 복원이든지, 여러 복사본의 적절한
본문 읽기의 복원이든지, 성서 본문의 “적절한 읽기”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본문비평은 대략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는다.

첫째, 히브리어 사본을 읽을 때 본문의 (맛소라 사본)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구약성서 본문을 읽어가면서 종종
해석의 문제나 문법의 문제와 같은 어려움에 당면하게 된다. 사본은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이기에 필사자가 오류가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히브리 성경도 여러 사본 중의 하나이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필자는 사본의 오류를
이야기하지 하나님 말씀의 오류를 말하고 있는것은 아니다. 사본의 오류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비슷한 자음의 혼동 (Confusion of Similar Letters): 가장 대표적인 오류중의 하나로서 필사자가 비슷한 히브리어 단어를 혼동하여 필사한 경우를 말한다. 혼동하기 쉬운 히브리어/아람어 자음은 다음과 같다. בד (창세기 9장 7절), ב and ר (열왕기하 22장 32절), יצ (이사야 11장 15절), משׁ (민수기 24장 9절), א 과  ד (역다하 22장 10절)

(2) 글자 생략/단축 (Abbreviations): 필사자가 긴 글자를 단축하여 생기는 오류를 말한다. 종종 필사자들은 하나님의 이름  יהוה  (아도나이)를 י 나 또는 ה 로 단축하여 필사한다. 또 다른 예로 히브리어 전치사 עד (“unto”) 는 때때로 על־דבר (“because of”)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여호수아 17장 14절). 필사자의 글자단축은 문맥상의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

(3) 비슷한 문장의 끝부분 띄어넘기 (Homoeoteleuton). 비슷
한 문장의 끝부분 띄어넘어 한 문장 전체를 생략하는 것은 필사자가 범하는 가장 흔한 오류다. 문장이 비슷한 단어나 구로
끝날 경우 필사자가 다음 문장으로 띄어 넘어 한 문장이 완전히 삭제되는 경우를 말한다. 필사자가 오랫동안 복사를 하다보면 눈의
피로를 느낀다. 이런 경우에 종종 이와같은 오류가 발생한다 (레위기 4장 25절).

(4) 중자탈락 (Haplography). 이 오류는 필사자가 tagmeme 을 tagme로 쓰는 것처럼 두번 나오는 문자를 탈락시키는 오류다 (신명기 20장 6-7절).

(5) 중복오사 (Dttography). 이 경우는 literature
를 literarature 로 오사하는 오류다. 우리말의 경우로 예를 들면, “바람”을 “바바람” 으로 자음을 두번 쓰는 경우를
말한다.  열왕기하 15장 16절은 기이한 형태의 히브리어를 소개하는데 이는 중복오사의 오류로 보인다:  הֶהָרֹותֶיהָ (명사, “아이 밴 부녀”) 에 앞의 정관사 ה 는 아마도 중복오사의 오류에서 생긴 문법적 오류인 것 같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문법적으로 명사 뒤에 접미사가 올 경우 명사 앞에 접두사로 오지 않는다.

이러한 단순한 오류 외에도 필사자의 신학적 의도에 따라서 사본은 원본과 다르게 수정/첨가/삭제되기도 하였다. 사본의 문제점을 발견한 이후에는 다른 사본과 비교해야 한다. 

둘째, 여러 고대사본이나 번역본을 맛소라 사본과 대조/비교한다. 중세기의 히브리어 사본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중세기의 다른사본을 직접 보고 비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세기의 다른 사본들과 맛소라 사본을 비교하기 위해서 많은
비용을 들여 유럽과 미국의 각 지역 도서관을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히브리어 성서 (BHS ) 하단에 위치한
본문비평란에 성서학자들이 이미 맛소라 사본과 다른 중세기 히브리어 사본을 비교/분석하였다. 따라서 맛소라 사본과 중세기 히브리어
사본의 비교는 그들의 분석에 의존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본문 비평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번역본은 칠십인역이다. 칠십인역은 맛소라 사본보다 400년 혹은 그 이전의 번역본이다.
사해문서가 발견되지 이전에 칠십인역은 맛소라 사본과 대조 분석하여 본문 읽기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권위 있는 번역본이다.
칠십인역과 본문비평에 대한 자세한 다음의 웹자료를 참조하라 (Centre for Septuagint Studies and Textual Criticism).

 
칠십인역 파피루스

칠십인역 파피루스

불가타역은 제롬의 라틴어 번역본으로 4세기경 히브리어 원본에 기초한 번역본으로 알려진 또 하나의 권위 있는 번역본이다.
맛소라 사본의 모세오경은 종종 사마리아 오경과 비교/대조하여 본문 읽기의 문제점을 해결한다. 끝으로, 1946년 사해문서가
발견되면서 본문비평학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해문서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사본으로서 에스더서를 제외한 구약성서의 모든 책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구약성서 본문비평에서 사해문서는 가장 중요한 사본이라고 할 수 있다. 

 
맥카터 (P. Kyle McCarter)나 그외 여러 본문비평 학자들은 는 히브리어 사본과 번역본을 비교한 뒤, “가장 읽기 어려운” (lectio difficilior) 그리고 “가장 짧은 본문” (lectio brevior)
이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결정하는 것이 본문비평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본문비평의 목적이
단순히 원본의 복원만은 아니다. 더구나 원본의 복원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본문비평에서 히브리어 사본이나 번역본 비교를
통해 가장 “적절한 본문읽기”를 결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폴 베그너는 (Paul Wegner) 은 히브리어 사본과 번역본을 비교할 때, 가장 “적절한 본문읽기”를 위해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한다 (Textual Criticism of the Bible):
 
  • 대부분의 다른 본문이 제공하는 읽기를 결정 (Determine the reading that would most likely give rise to the other readings)
  • 사본의 가치를 평가 (Carefully evaluate the weight of the manuscript evidence)
  • 사본의 읽기가 2차첨가 혹은 해석인지 결정 (Determine if the reading is a secondary reading or a gloss)
  • 문맥의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읽기 결정 (Determine which reading is most appropriate in its context)

아래의 베그너의 도표는 사본과 번역본이 히브리어 원문과의 관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도와준다:

 

original-text

 

3. 본문비평의 실예

 

비평은 어떻게 적용하는가? 앞에서 설명한 본문비평의 목적과 방법론에 기초하여 창세기 4장 8절을 한 예를 들어 본문비평을 하도록 하자. 

 

창세기 4장 8절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히브리어 사본을 읽을 때, 본문의 (맛소라
사본) 문제점을 발견해야 한다. 맛소라 사본이 보여주는 창세기 4장 8절은 본문의 문맥상 문제가 있다. 가인이 아벨을 쳐
죽였는데, 어떻게 가인과 아벨이 ”들”로 나가게 되었는지 대한 문제는 수수께끼다. 그러나 사마리아 오경, 칠십인역, 시리아역,
불가타에는 ”우리 들로 나가자!”라는 문장을 첨가하고 있다: 사마리아 오경 ( נלכה השתה ); 칠십인역 (Διέλθωμεν εἰς τὸ πεδίον). 어
떤 본문비평 학자들에 따르면, 맛소라 사본이 가장 짧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장 원문에 가까운 사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대로, 맛소라 사본이 필사시 오류를 범했을 가능성도 있다. 가장 큰 가능성은 “비슷한 문장의 끝부분
띄어넘기 (homoeoteleuton) 이다. 맛소라 사본의 필사자가 원본의 끝부분에 두번 나오는  שדה 중
하나를 건너 띄어 한 줄을 생략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맛소라 사본이 가장 “적절한 본문읽기”라고 볼 수는
없다. 필자의 생각에는 사마리아 오경, 칠십인역, 시리아역, 불가타가 보여주는 창세기 4장 8절이 원본에도 더 가깝고 또한 더
“적절한 본문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 Klein, Ralph W. Textual Criticism of the Old Testament: The Septuagint after Qumran. Philadelphia: Fortress, 1974.
  2. McCarter, P. Kyle. Textual Criticism: Recovering the Text of the Hebrew Bible. GBS:OTS. Philadelphia: Fortress, 1986.
  3. Roberts, Bleddyn J. The Old Testament Text and Versions. Cardiff: University of Wales Press, 1951.
  4. Waltke, Bruce K. “The Textual Criticism of the Old Testament.” In Biblical Criticism: Historical, Literary, and Textual, pp. 47-65, edited by Roland K. Harrison et al. Grand Rapids: Zondervan, 1978.
  5. Wegner, Paul D.: A Student’s Guide to Textual Criticism of the Bible : Its History, Methods & Results. Downers Grove, Ill. : InterVarsity Pres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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