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커스 보그의 연대기적 신약성서 목록 논쟁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교회에서는 ‘성경목록가’라고 해서 ‘창세기 출애굽기…’로 시작하는 노래를 배우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를 바꿔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유명 뉴스 사이트인 Huffingtonpost에 마커스보그라는 노학자가 한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길지 않은 그 글에서 보그는 신약성경의 순서에 관한 문제제기를 시도했습니다. 복음서와 서신서 그리고 계시록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 지금의 성경이 역사적인 선후 관계를 무시한 배열이라서 신학적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것입니다. (찾아보니 이번에 그가 새롭게 출판한 Evolution of the Word라는 책의 내용인 듯 합니다. 재밌겠네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신약성서의 순서 혹은 목록 문제는 그렇게 확고한 문제는 아닙니다. 정경이 구분되기 이전에 초기 사본들에 나타난 목록이나 순서가 천차만별인 사실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종교개혁의 선봉장이었던 마틴 루터도 ‘오직 믿음’이라는 교리와 어울리지 않는 ‘야고보서’, ‘유다서’, ‘히브리서’, ‘계시록’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었지요. 그렇다고 빼지는 못하고 소심하게(?) 맨 뒤로 보내 왕따를 시켰습니다. 또한 현재도 일부 콥틱(이집트)교회에서는 두권의 클레멘트 서신을 신약 목록에 포함시켜 총 29권의 신약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신약의 정경 목록과 순서에 관한 논쟁은 미세하게나마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역사비평으로 인해 각 책들의 연대에 대한 새로운 이해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공관복음 연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마가복음과 현존하지 않는 예수님의 어록자료(Q)를 참고해서 쓰여졌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것을 흔히 [두자료설 Two-Source Hypothesis]이라고 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는 마태복음이 아니라 마가복음입니다. 물론 마태복음의 우선성을 주장하는 [그리스바흐 가설]이라는 것도 있지만 현대 학자들은 대부분 [두자료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바울 서신 연구는 바울의 이름으로 쓰여진 서신들 중에 바울의 친서는 7개 뿐이라는 결과를 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서 역시 데살로니가전서가 가장 먼저 쓰여진 것이구요. 복음서와 서신서의 문제도 현재 성경의 순서와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복음서가 앞에 있기 때문에 복음서가 먼저 쓰였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복음서는 50년 어간에 쓰여진 바울 서신에 비해 한 세대 혹은 두 세대 가량 늦게 쓰여진 책들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성경 목록은  자연적으로 결정된 것이기보다는 신학적인 의도가 반영된 꽤나 인위적인 결과물입니다.

어쨌든, 보그가 주장하는 기준은 현대 주류 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각 책의 저작연대입니다. 저는 넓은 관점에서 보그의 주장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보그의 주장은 역사만능주의에 빠진 노학자의 실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그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와 가치를 모르는바는 아닙니다. 그것은 의미있는 시도이고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꽤나 중요한 기준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평소에도 그렇지만 ‘역사적인 것 = 진실’이라는 도식을 너무 여기저기 들이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역사적 순서는 분명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곧 성경을 역사적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연결되진 않습니다. 복음서로 시작해서 계시록으로 마무리 되는 책의 순서는 나름의 신학적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줄줄이 연결되는 시리즈의 소설책이나 역사책이라면 그것이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신학적 산물이지 역사책이 아닙니다.

저는 아이튠즈로 음악을 듣습니다. 그런데 아이튠즈에 음악을 넣으면 태그 정보에 따라 라이브러리가 생성됩니다. 음악을 찾을 때 내가 음악을 추가한 시간 순서대로 혹은 음반의 발매일 순으로 정렬을 한다면 분명 편리한 경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앨범제목의 순서대로, 어떤 사람은 아티스트의 순서대로 정렬되어 있는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 라이브러리를 보고 시간순으로 배열되어있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면 전 그 사람이 미친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만큼 어떤 순서에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마커스보그가 주장하는 ‘역사적인 순서’ 역시 그의 신학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기에 현재의 목록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성경을 연대기적으로 배열하는 것은 참 가치있는 작업이고 그 결과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성경을 연대기적으로 배열해야하는 당위성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옵션입니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의 순서 역시 하나의 옵션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처럼 고정된 순서에 익숙해져있는 사람들에게 보그의 제안은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보그의 의견에 찬성하지만 그의 제안이 유일한 해답처럼 여겨지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만병통치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제가 생각하는 성경의 그럴싸한(?) 순서를 한번 적어봅니다. 세세한 연대적 차이는 일일이 참고하기 귀찮아서 보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살전-갈-고전-몬-빌-고후-롬
-골-엡-살후
-딤전-딤후-딛-벧전-벧후-히-유-요일-요이-요삼

-막-마-눅-행-요

개인적으로 저는 바울서신을 복음서보다 앞으로 끄집어 낸 보그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이건은 연대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기독교의 기초는 복음서나 사도행전 같은 책이 아니라 바울과 다른 이들의 편지를 통해 보여지는 신학과 교회의 발전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바울의 친서가 아닌 다른 서신들도 복음서보다 앞에 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신학의 발전을 순차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면 모르는 사람들은 바울의 글이려니 하고 읽을 수도 있다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뭔가 구별할 방법이 있으면 좋을텐데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서신서를 읽는 배경지식으로 사도행전을 앞에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제 생각엔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의 서술을 구분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_-;; 사도행전에 맞춰서 서신서를 읽는 것은 오히려 바울 서신을 깊이있게 읽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도행전을 앞에 넣는 것은 반대입니다.

복음서는 서신서 뒤에 나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순서는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 요한복음 순서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서로 붙어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리즈인 책을 굳이 요한복음을 사이에 두고 나눠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치를 잡기 애매한 것이 요한계시록인데, 저는 무천년주의적 계시록 해석을 지지하기 때문에 계시록을 예수사건과 마지막 사건의 순차적 반복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뭔소리 하는지 -_-;;)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 앞에 나오는 것은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사실 어디 놓을지 모르겠어서 복음서 앞이 어떨까 생각한 겁니다. 현재로써는 앞이든 뒤이든 복음서 주변에만 있고 맨 뒤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정도만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순서가 되면 사도행전과 요한복음이 성경의 마지막이 될 것 같네요. 이것도 나름 의미있을 듯…

이처럼 어떤 신학적 순서에 따라 성경을 배치한다는게 쉽지가 않습니다. 성경을 굳이 거룩한 책이라고 보지 않고 하나의 문학적 결과물로 보더라도 그 순서가 ‘역사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제 생각엔 너무 쉽게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아래 링크를 타고 가시면 마커스 보그의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uffington Post : [Marcus Borg ] A Chronological New Test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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