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말하는 “목회자가 되려면…”

 

그렇습니다. 사실 이 내용은 목회자에 대한 내용은 아니고 안철수씨가 힐링캠프에서 ‘CEO시절 어떤 사람을 뽑았냐?’는 물음에 했던 대답입니다. 하지만 이 내용을 그대로 앞으로 목회자가 될 사람들에게 적용해도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목회자는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신학과 설교가 ‘틀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자신이 전하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고 둘째, 그런 사람만이 신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며 셋째, 그런 목회자만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속적으로 설교에서 질문과 대답의 시간 그리고 피드백과 지난 설교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그러면 말씀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시더군요. 하지만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은 겸손이나 불확실의 근거가 아니라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이게 역설처럼 들릴지 몰라도 자기가 전하는 것에 확신이 없는 사람은 권위로 설교하려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메시지에 확신이 없는 사람은 그 성경이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다는 것에 목숨을 겁니다. 점 하나 틀리면 자기가 알고 있는 성경은 가짜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자기도 실제 그것이 가짜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가 말하는 것에 확신이 없는 것이지요.

단순히 학문이나 사회뿐 아니라 목회도 이제 목사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너무 많이 전문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이 모든 것이 기준이 되던 시대가 지난 것도 몇백년 되었지요. 그런데 아직도 목회자들은 모든 것은 신앙을 중심으로, 그리고 목사의 말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위험한 발언이지요. 사실 목사님들이 하는 조언의 대부분은 자기도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사님이 말하는 것은 성경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왠만하면 그냥 교회 어르신의 훈계정도로만 들으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목사가 자기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성도 가운데 그에 관한 전문가가 있을 때, 혹은 자신의 역량을 넘어선 일에 닥쳤을 때 어리석은 선택과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는 무엇을 할 수 없는지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겸손은 목회의 필수 덕목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은 목회자가 평생 지어야 하는 짐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이 짐을 지려하지 않고 그 공백을 ‘관계’로 메우려고 합니다. 뭐 그렇게 하면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잘 돌아가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에서 관계는 분명히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갱신하려는 노력 없이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는 자세는 목회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성도를 죽이는 일입니다. 목회자들이 하는 가장 큰 실수는 그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었는지 안되었는지를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계를 통해 당장 눈에 보이는 여러가지 결과들이 곧 목회가 잘 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노력은 눈앞에 보이는 결과로는 절대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도 한번 만날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는 것은 어쩌면 시간낭비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목회자가 발전하지 않을 때 결국 그 피해는 목회자가 아닌 성도에게 갑니다.

지금까지는 어땠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이런 목회자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교회와 복음이 얼마나 성도들의 일상적인 삶과 가까이 있느냐를 가려내는 기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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