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땅이의 가요들으며 은혜받기] God-길 / 박진영-사랑이 제일 낫더라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박진영이라는 사람, 진짜 뭔가를 고민하고 있구나”

가요에서는 종종 철학적인 내용들을 다루는 경우는 있지만 이렇게 정직하고 담백하게 담아내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나도 잘 모르겠다’라는 내용이 끝입니다. 그러다 얼마 전 힐링캠프 박진영 편을 보면서 나의 예감이 적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진영은 이 노래에서 고민하던 것들에 대해서 어느정도 답을 찾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방송 내내 그가 확신에 차서 하는 말들은 마치 교회에서 간증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해보였습니다. 그가 지금껏 하나하나 고민하면서 찾아낸 그의 고백들은 소위 복음주의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진리와 굉장히 가까워보입니다. 절대자에 대한 인식, 선물로 받은 삶에 대한 감사, 인간은 삶의 주체자가 될 수 없다는 깨달음, 그가 인생의 목표라며 적어놓은 사다리는 마치 CCC의 사영리에 나오는 복음제시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이 방송을 보고 하나님께서 박진영을 통해 연예계를 회복하실 것이라는 마음을 주셨다는데… 박진영이 얼마전까지 성적 문란의 아이콘으로 기독교인들의 공격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반응이기도 합니다. 박진영을 향해서 몇몇 기독교인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의 고민들이 그동안 복음주의 신앙이 말하던 가장 전형적인 회심의 형태를 굉장히 공식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순절을 비롯한 성령주의에 ‘회심’이라는 키워드를 빼앗겨버린 복음주의/근본주의 신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화처럼 취급받던 ‘지적 회심’의 살아있는 케이스를 찾은 것이니 그 흥분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에게 그의 이런 모습은 마치 사탄의 왕관을 벗고 돌아왔다던 스님이나 예수가 나의 오야봉이라고 외쳤던 깡패두목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기독교의 반대편에 서서 기독교를 탄압하던 사도바울의 21세기 버전처럼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고민과 최근 그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과도한 관심의 양상이 기독교 신앙의 일부분일 뿐 아니라 꽤나 왜곡된 형태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가 진지하게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열광에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직 그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것이 나중에 기독교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종교일지도, 아니면 무신론으로 빠져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박진영의 이런 고민들은 존중하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습니다. 그가 쓴 가사처럼 인간은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그 길이 어딘가로 정해져 있는지 아닌지, 지금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길을 잘 가고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해서 이 길에 들어섰는지, 아니면 정말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길 위에 던져진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는 길 위에 있고 그 길은 어딘가로 향해있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그의 모습이 그 전에 ‘박진영’이라는 이름이 상징하고 있던 몇몇 가치관과 연결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지금까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 껄끄러웠던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해서 박진영은 반대편에 서서 꽤나 소신있고 조리있게 말할 줄 아는 연예인이었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그의 종교적 고민이 특정 윤리의 문제와 혼동되는 것입니다. 특히 몇가지 문제에 있어서는 기독교 안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고 사실 진리의 문제와 관계없이 논의되어야 하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 실존적 고민이 윤리적 견해와 연결되면, 이전의 삶에서 돌이키면서 굳이 버리지 않아도 될 것까지 포기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흔히 회개를 ‘이전의 삶에서 완전한 돌아섬’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식습관을 바꾸거나 옷입는 취향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갑자기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비닐옷을 입고 춤을 추던 박진영이 검은색 정장을 입고 예배당에 앉아야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찾는 그 절대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냥 어떤 하나의 견해와 진리를 위해 버려야 하는 이전의 삶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더 깊은 고민이 있다면 그의 고민이 더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에 그의 새 앨범이 나왔습니다. 제목부터 [Half Time]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입니다. 아직 다른 곡들이 공개되지 않아서 앨범 전체를 들어보진 못했지만 현재 다운 받을 수 있는 ‘사랑이 제일 낫더라’에서는 CCM가수 남궁송옥씨와 랩퍼 개코가 참여했습니다. 요즘은 기독교 음악에서도 이렇게 기독교적 가치를 동시대의 언어로 말하는 CCM은 찾기가 힘든데(이 얘기는 나중에 더 깊이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정말 반가운 음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고민을 지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겠습니다. 그 길에 끝이 꼭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그의 고민이 헛되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용기있는 음악이 듣는 이들로 하여금 오늘날엔 잊혀진 그 케케묵은 질문을 다시 일깨우는 기회가 되길 소망해봅니다.

 

 

3 Comments

  1.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오래된 기독교인으로써 박진영씨가 주는 충격이 무얼 의미하는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박진영씨가 어느날 ‘이제 나는 크리스챤이다’라고 고백하며 등장했다면 별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진리를) 머리로는 알겠지만 믿지는 못하겠다’ 이 고백이 오늘날 현시대의
    모든 크리스챤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과연 박진영 만큼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찾았는가…
    비닐옷을 입고 저속한 춤을 추던 그가,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이 ‘아직 믿지 못하겠다’ 라고 고백하는 모습은, 온갖 위선 속에서 나 자신을 포장하던 치부를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만들었습니다.
    박진영씨의 결과는 중요합니다. 반드시 그 결과를 얻게 되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챤들이 현재의 박진영씨의 고민과 묵상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것이…
    그것이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 박진영씨가 하는 지금 고민은 저는 타 종교, 비 진리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하나님 이외에 박진영씨에게 답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쓰신 분 말대로 이런 고민을 소위 말해 모태신앙도 안 하는 고민을 갑자기 무신론주의였던 박진영씨에게 그냥 올리 없습니다.

    박진영씨가 그 “진리”를 얻고 비닐 옷을 입고 추던 말던, 그 삶이 하나님에게 큰 관심도 없으면서 복 받으려고 매주 교회에 나오며 금주 금연을 하는 사람들보다 자유로운 것일 것 임을 알고 박진영씨가 꼭 진리를 찾기를 바랍니다.

    그 끝은 하나님밖에 일 수 없다고 믿습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1. 내가 무엇을 진리라고 믿는지와 박진영이 무엇을 선택할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박진영이라는 사람이 반드시 옳은(내가 생각하기에) 선택을 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구요.
      제가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다 박진영이 다른 종교형태를 선택하기라도 할 경우 박진영에게 쏟아질 기독교인들의 비난입니다.
      지금 박진영을 향해 쏟아지는 기독교인들의 관심은 굉장히 왜곡된 형태라고 봅니다. 특히나 편향된 신앙에서 오는 왜곡된 정서가 그대로 반영되어있기도 하지요.
      지금은 그의 선택을 위해 기도하고 기다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선택이 내가 믿는 종교가 아니라도 그의 고민과 고백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의미있는 도전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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