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신학의 중심으로서 고린도전서

한참 로마서에 관심을 갖다가 요즘은 고린도전서에 꽂혀있습니다. 그 이유를 조금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써봤습니다. 아마도 이 내용에서 조금 바꿔서 졸업 논문 서문이 될 것 같습니다. 각주를 달까 하다가 일단 그냥 올려봅니다.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2)

IMAGE_F5D847A0-9BD0-452F-8C53-E8E5BDEA40AC.JPG 고린도전서의 서문에서 바울은 이 편지가 단순히 고린도 교회가 아니라 ‘각처’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런 광범위한 수신자 설정은 지금껏 가장 보편적인 바울 신학의 텍스트로 여겨지던 로마서에도 없는 것이다. 기존에 바울 서신이 회람서신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이 서신은 애초에 광범위한 교회에서 읽혀질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오늘날 고린도전서 연구에서 종종 무시되곤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고린도전서는 굉장히 구체적인 교회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에만 특정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로마서 같이 추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서신은 그 상황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회를 염두하고 있을 것이라 가정한다. 하지만 가장 구체적인 상황 속에 있는 서신이 사실 가장 광범위한 대상을 향해 쓰여졌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바울 서신을 다룸에 있어서 착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바울 서신의 주된 핵심이 신학적인 문제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서를 제외한 바울 서신들의 수신처는 모두 바울이 개척했던 교회들이다. 그들은 이미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들었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바울의 편지에서 그것을 다시 들을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바울은 부활 이전의 예수의 삶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바울이 몰랐던 것일까? 아마도 바울은 그것을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바울 서신에 드러난 바울의 신학이 다른 제자들과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울 서신에서 바울만의 독특한 무엇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전해받은 것을 전했다고 말한다. 실제는 어땠을지 몰라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런 신학적 대립 구도는 갈라디아서의 논지에 과도하게 빠져있을 때만 가능하다. 오히려 자신이 가보지 않은 교회에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 속에 있는 로마서에서 바울은 당시 안디옥을 중심으로 한 이방 기독교의 신학과 (더 나아가 예루살렘의 신학과) 자신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을 것이다. 즉, 로마서의 신학은 바울의 독특한 것이거나 주된 관심이기보다는 굉장히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것이지 않았을까?

만약 바울이 단순히 신학 교육이나 논증을 넘어선 무언가를 의도하고 서신을 썼다면, 그래서 신학적인 것보다는 그가 세운 교회에 ‘참 이스라엘’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가려는 ‘목회적 관심’ 가지고 있었다면, 그의 서신의 무게 중심이 당시 서신들의 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앞부분이 아니라 뒷부분에 있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미 바울에 의해서 전해 듣고 모든 교회가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여겨졌을 복음의 내용이 아니라 방랑 설교자처럼 순회하던 다른 사도들과 자신을 구분할 수 있는, 그것이 무엇과 어떻게 부딫히고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구체적인 ‘교회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던 고린도 교회는 굉장히 좋은 샘플이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만들고 싶었던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대한 가장 좋은(?) 역할 모델이었을 것이다. 즉, 바울에게 있어서 신학의 중심은 자신이 가본적도 없는 로마 교회를 향해 적어주는 기초적이고 모두가 공유했을 신학적 내용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를 모델로 해서 모든 교회에 적어보낸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신학의 현실화 메카니즘이다. 즉,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다’가 아니라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질 때 그 문제는 세상의 시스템과 이런 부분에서 부딫히고 그때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우리됨의 정체성이다’로 요약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전서에는 당시 대부분의 교회들이 처해있던 중요한 문제들이 거의 모두 등장한다.

바울의 편지는 단순한 서신이 아니라 서신 속에 담긴 어떤 의도를 가진 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것이 신학적인 어떤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고린도교회라는 특정 교회의 문제를 다루는 내용들을 통해 모든 교회에게 개념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실천적 삶의 규정들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신이 아니라 하나의 행동 강령 사례집 같은 것이지 않을까?

고린도전서에 등장하는 교훈들은 단순히 도덕적인 내용이 아니라 당시 바울의 교회들이 로마 사회 속에서 경험해야 했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그가 만들어 내려 하는 공동체가 세상과 대립하는 접점들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제시하는 것이 고린도전서를 비롯한 바울 서신의 주된 목적이 된다. 바울 서신의 주제는 사도권의 방어도, 이신칭의도, 종말론도 아니다. 바울 신학의 중심은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관계가치로서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바울 신학은 로마서가 아니라 고린도전서에서 시작해야 한다.

1 Comment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Content Protected Using Blog Protector By: PcD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