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저자의 구약 인용에 관한 세가지 복음주의적 입장

원본출처 : http://blog.daum.net/koowon/7106978
작성자 : 김구원

신약의 구약인용의 세가지 입장

 다음은 2007년에 출판된 Three Views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 (IVP)의 마지막 장을 참조로작성한 글이다.

1.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예언의 충만 의미” (sensus plenior) 있는가? 다시 말해 구약의 메시지에 담긴 하나님의 구약의 선지자들의 이해를 넘어서지만 신약의 저자들이 밝힌 의미가 있는가?












월터 카이저



데럴



피터 엔즈



센수스 플레니오르는 없다. 언어와 주해의 법칙에 의해 발견가능한 것만이 성경의 의미이다.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의 의의 변할 뿐이다. 
다시말해 새로운 상황, 독자에게 새롭게 적용될 뿐이다. 



충만 의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에 사용된 구약의 본문들에는 안정된중심의미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 신약 저자들이 인용한 의미다.



충만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가 구속사의 완결이라는 관점이 충만 의미를 생산한다.


 

2. 신약 저자들은 구약의 문맥을 존중했는가?












월터 카이저



데럴



피터 엔즈



물론이다. 역사적 문법적 문맥 아니라, 약속성취라는 구속사적 문맥 존중했다.



물론이다. 역사적 문법적 문맥과 동시에 정경적문맥을 고려했다.



엔즈는 구약의 문맥을 역사적 문법적 해석과 탈문맥적 해석 두가지로 나눈다. 유형론적 해석이나 성경 신학적 해석은 결국은 문맥적 해석에 해당한다. 이런 관점에서 피터 엔즈는 신약의 구약의 구속사적 해석은 탈문맥적이라고 말한다. 구약의 역사적 문맥을 고려할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3. 신약 저자들의 해석학은 2성전기 해석학과 관계있는가?












월터 카이저



데럴



피터 엔즈



관계 없다. 둘의 비교는 잘못된 것이다.



어느 정도 관계있다. 그러나 신약이 2성전기의 해석학을 따를 , 언제나 정경적 해석에 제어를 받는다.



깊은 관계가 있다. 신약의 구약해석은 2성전기 해석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4.
우리도 신약 저자들의 구약해석을 따라할 있는가?












월터 카이저



데럴



피터 엔즈



당근이다. 신약 저자들은 구약을 문맥에 합당하게 취급하였다. 우리도 그리해야한다.



그렇다. 특히 신약 저자들의 정경적 해석 배워야 한다.



신약 저자들의 해석학적 방법과 전통은 2성전기에 제한적인 가치가 있으므로 따라해서는 안되고, 그들의 해석학적 목표, 그리스도를 구속사의 완결로 보는 그들의 해석학적 목표를 따라야 한다.




   휘튼 대학의 비일이라는 교수는 엔즈와의 논쟁의 와중에 생산한 논문을 모아 Erosion
in inerrancy in Evangelicalism: Responding to New Challenges to Biblical
Authority
2008년에 출판하였다.
3
장과 4장이 신약의 구약인용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비일은 신약 저자의 구약 인용 방법을 역사문법적인 것과 역사 문법적인 것으로 단순 이분화한 엔즈를 비판하고, 그가 신약 저자들이 성경 신학적 해석과 모형론적 해석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으로 구약을 해석한 것을 강조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엔즈가 이상한해석이라고 제시한 8개의 본문만은 다른 식으로 성경 신학적이나 모형적으로 해석하능할 아니라, 8개라는 숫자는 너무 적어 엔즈의 거대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역부족이라고 도전한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13
절에 인용된 호세아 구절은 이상한 인용 아니라 신약 저자의 구약 메시지에 대한 성경신학적인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성경 신학적 해석은 구약의 문맥을 탈피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구약의 문맥에는 역사 문법적 문맥도 있지만, 모형론적, 성경 신학적,
구속사적 문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비일의 주장은 의도적으로 엔즈의 입장을 호도하며 논쟁하려는 듯이 보인다. 호세야의 구절은 분명이 출애굽을 회상하는 문맥이고 마태의 인용 공식은 분명 예언의 성취에 쓰이는 공식이다. 따라서 마태는 호세야의 구절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분명 제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마태가 호세야를 역사 문법적역사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물론 마태의 해석을 엔즈의 말대로 크리스토텔릭이라고 부르든 비일의 말대로 성경신학적 해석이라 부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마태의 구약 해석은 분명 역사 문법적 문맥에서 호세아의 구절을 분리시켜 새로운 문맥, 구속사적 문맥에 이식시킨 것이다. 이것은 엔즈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호세야가 신약저자의 관점이나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이해했을까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Content Protected Using Blog Protector By: PcD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