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한 예수 세미나의 역사적 예수?

글쓴이 : Astronome
원본글 : http://voix.tistory.com/68

Robert Funk를 포함한 캘리포니아의 학자들이 주도했다는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에서는 복음서와 초대 교회의 문서를 통해 소위 말하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를 복원하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운 바 있다. 1985년에 시작한 이 학술적 운동의 이면에는 주로 교리상으로 고백 되는 신앙의 예수(혹은 케리그마 예수)와 실제로 존재했던 예수(역사적 예수)와는 커다란 틈이 있다는 의구심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의구심은 물론 이해할 만 하다. 오늘날에도 “사실 (fact)”와 그 사실에 기반을 두어 발생한 “신화(myth)”나 “이야기(story)”에는 많은 간격이 있곤 한다. 예를 들어 남자 연예인 A가 어떤 여자 연예인 B와 웃으면서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언론에 노출된다. 이 사실을 근거로 수많은 루머가 발생할 수 있다. A와 B는 사귀고 있다라는 식으로. 나중에는 A와 B가 처음 만나 데이트한 장소와 시기까지 누군가가 조작하여 퍼뜨리고, 뜬금없이 C양까지 등장하여 A, B, C는 삼각관계라는 말까지 떠돈다. 어제는 C양과 B양이 머리채를 붙들고 싸우기까지 했단다. 오늘 TV에 나온 A군 이마의 생채기는 이 싸움을 말리다가 생겼다지 아마..  그러나 진실은 매우 다르다. 여기서 유일하게 “역사적 사실”인 것은 A와 B는 그냥 어느 날 함께 차를 마셨다는 것뿐이다. 

초대 교회에서도 예수와 관련하여 이런 식의 일이 발생하지 말았다는 법이 없지 않은가? 과연 신약에 기술된 예수의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초대 교회의 신앙이 변형되어 가면서 만들어진 루머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적인 사실일까? 이것이 예수 세미나가 가졌던 의문이고 그들은 문헌을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하면 신화적 예수와 역사적 예수를 분리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그들은 Five Gospels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복음서에 나온 예수의 말 중에 31구절이 역사적인 예수가 한 말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결론까지 내렸다. 

그들이 문헌을 분석하면서 이용한 방법들은 Norman Perrin이라는 학자가 제시했다는 다음의 3가지 원칙을 근거로 하고 있다. 

1. 다중 증거의 원칙 (principle of multiple attestation)  — 여러 사람이 예수에 관해 비슷한 주장을 하면 신빙성이 있다. 

2. 비유사성의 원칙 (principle of dissimilarity) —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어록 중에서, 초대 교회나 유대교의 전통에서는 발견되기 어려운 다소 엉뚱하다 싶은 말이 있으면 이것은 진짜로 예수님이 한 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3. 일관성의 원칙 (principle of coherence) — 초대 교회나 유대교의 전통과 유사한 부분이라고 해서 예수가 한 말이 아니라는 법은 없다. 그래서 우선은 1번과 2번 원칙을 통해 역사적인 예수가 한 말이라고 신빙성이 있는 구절들을 추려낸 후에, 그 나머지 추려지지 않은 부분에서 미리 추려진 부분과 일관성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예수가 한 말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 라이스 대학 교수인 April DeConick은 위의 원칙들이 역사적 예수를 밝혀내는 데 있어서 결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없음을 그녀의 블로그에서 주장했는데 매우 공감이 간다. 여기서 그녀의 핵심 주장은, 비유사성의 원리가 논리적으로 결함이 많다는 것이고 (유대교나 초대 교회의 전통에 어긋나는 엉뚱한 말이라고 해서 그것이 예수의 말이었을 것이라고 보아야 할 이유는 없다.) 결과적으로 이 원칙을 적용한 것이 예수를 오히려 유대교나 초대교회의 역사로부터 분리시켰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예수 세미나의 예수는 파산했다’라는 제목의 시리즈: 1 . 2 . 3 . 4 참조). 
 
사실상, 예수 세미나의 예수는 캘리포니아 예수, 혹은 자유주의자의 예수라는 식의 비판을 오래 전부터 받아 왔다. 예를 들어 R. Joseph Hoffman이라는 학자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 세미나의 예수는 의심의 여지가 많은 서른 한개의 레퍼토리를 읊어대는 인형이다. 거기서 끈 한 개를 당기면 그는 가난한 자들을 축복할 것이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가 판단하기에도 예수 세미나가 한 일은 자신들이 바라는 형태의 예수를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장 일차적인 이유는, 역사적 예수를 온전하게 복원하기에는 너무나 역사적인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론이라도 데이터의 검증이 없다면 그 이론이 진보할 수 없다.  과학에서는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역사 연구에서  사해 사본의 발견과 같은 획기적인 데이타의 증가는 오직 드물게 발생하는 일이고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 자료들은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아는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가 크리스찬의 신앙의 중심일진데, 그 예수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면 신앙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성경이 과연 우리에게 “계시”일 수가 있을까? 

James Dunn은 그의 책 New Perspective on Jesus에서 예수 세미나가 설정한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서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예수가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그 이유는 신약은 예수가 남겨놓은 “영향 (Impact)”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에 관한 전통과 예수 운동은 바로 이 영향이 산출한 믿음과 체험이 만든 것이기에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예수를 분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과학에서도 사실과 해석이 분리되기 어려운 개념인 것은 사실이다 (여기 참조). 이런 의미에서 성경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해석되고 체험된 예수”가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계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상대주의의 오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시 예수 세미나가 시도했던 종류의 작업이 필요할 터이고…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이런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이지만, 이 문제가 간단하지 않기에 예수가 교리 안에 박제되어 있지 않고 오늘날 우리 가운데 살아 숨쉬는 생동감 있는 신앙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후에 이에 관해서 자세하게 글을 쓰고 싶다. 

(예수 세미나의 한계를 반성하고 새로이 시작한다는 예수 프로젝트에 관한 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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