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나꼼수 “아.. 꼼꼼하다.”

Q : 제 질문은 당신이 바울보다 더 과격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구체적으로 실명을 거론했습니다. 바울은 그러지 않았는데 말이죠.

A : 바울은 굳이 이름을 거론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형상” “먼저 나신 이” “만물의 으뜸”등을 언급하는 순간, 사람들은 바울이 예수를 가이사와 대비시키고 있음을 분명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Q : 그래도 왜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A : 바울이 사용한 단어를 볼 때 실질적으로는 이름을 거론하고 있는 셈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바울로서는 굳이 ‘가이사’나 ‘제국의 숭배 의식’ 혹은 곳곳에 있던 황제와 제국의 형상들을 명시적으로 언급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그 뜻을 알아차렸을 공동체가 스스로 그 빈칸을 채웠을 테니까요.

제국과 천국 p.150~156

바울 서신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할 때 가장 걸리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바울이 이런 대상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황제라던가 비판하는 사람의 이름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면 그 의미가 정말 정치적인지에 대한 논란이 줄어들지 모르지만 바울은 그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그가 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도 해석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브라이언 왈쉬가 위에서 나름 깔끔한 대답을 해주고 있듯이 그들에겐 당연한 것이었다.

나꼼수_꽃보다_꼼수.jpg 요즘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말 가운데 이런 말들이 있다. ‘바람 쐬러 가자‘, ‘꼼꼼하다‘, ‘완벽하고 도덕적이다‘, ‘디테일하다‘ 이 말들은 모두 원래 뜻과는 달리 한명의 인물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다. 다른 인물이지만 ‘보수의 꼬깔콘‘같은 말도 있다. 사실 여기에는 어떤 직접적인 언급도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주어가 없다’. 혹여나 ‘가카’같은 주어가 붙더라도 그 주어가 누군지 특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꼼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알아들을 것이다.

이런 희화적 언어 혹은 상징적 언어는 소수자, 핍박자의 언어이다. 나꼼수의 언어가 오늘날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권력을 자신과 같은 편이 아닌 상대편에 두고 소수자라는 의식으로 뭉쳐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월가 시위가 만들어 낸 ‘99%’라는 언어도 같은 맥락이다. 그 날의 바울의 언어도 이런 소수자의 언어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굳이 암호인지 아닌지 가려낼 필요 따위는 없다. 나꼼수의 언어는 암호가 아니다. 그저 그들은 공통된 경험 속에서 갖게된 공감적 언어일 뿐이다. 이 공감적 언어는 없는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널리 쓰이던 말의 용도를 바꾸거나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키거나 아니면 특정 문맥에서만 가능한 의미를 일반화 시키는 것이다. 바울도 당시 널리 사용되던 언어의 지시 대상을 황제에서 예수로 옮겨왔을 뿐이다.

물론 브라이언 왈쉬가 주장하는 이런 형태의 바울 해석은 기존 교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해석을 역사적 예수 연구가 주장했던 캘리포니아 예수의 후속편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바울이 말한 것이 이런 형식이었다면 오늘날 왜 교회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나? 그것은 그들에게 공통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왈쉬는 뒤에서 오늘날 기독교에는 이렇게 스스로 빈칸을 채우게 만드는 화법이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1세기 당시 초신자들로 구성되었던 급진적 공동체와 비교해 볼 때 오늘날의 교회는 현재의 지배적인 문화의 포로가 된 지 오래 되었을 뿐 아니라, 제국의 안녕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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