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를 바꾸다.

98년에 서울신대를 입학할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교단이 그렇게 많은지도 몰랐고 가서 뭘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니, 몰랐다기보다는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해야할까? 그 땐 신학이 그냥 찬양 열심히 부르고 기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인줄 알았다. 더 좋은 신앙인이 되는 것이 신학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왜 서울신대를 갔을까?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교회는 예수교 장로회 통합측에 소속된 교회였다. 신학대 진학을 결정할 때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장신대에 원서를 넣은 것은 그래서였다. 그런데 성결교단 쪽에는 그야말로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내가 서울신대에 원서를 넣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는 기독교 서클이 없어서 일부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학교 꼭대기 층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곤 했다. 참고로 이 학교는 얼마전 서울 시장 선거에 나왔던 나 모씨 때문에 네티즌들로부터 졸지에 인화학교 수준의 안타까운 시선을 받아야 했던 화곡고등학교다. 어쨌든 이놈의 학교는 학생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것을 학생주임이 쫓아와 몽둥이 들고 단속하는 학교였다. 나는 2학년 쯤부터 이 스릴넘치는(?) 모임에 함께 하게 되었고 거기서 좋은 선후배들을 만났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신학대를 가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선배 하나가 나에게 서울신대를 추천해주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학교 예수전도단 진짜 좋아…”

당시 그 선배는 인하대 예수전도단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가까운 지역에 있는 서울신대 예수전도단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예수전도단에서 서울신대는 전설적인 존재였다. 요즘처럼 꽤나 유명세를 타지 못하던 때인지라 개별 학교에서 모이는 모임이 커봐야 20-30명 정도를 헤아릴만큼 작았다. 그런 시절에 서울신대는 개별 학교 모임만으로 100명 가까운 인원이 모이는 어마어마한 모임이었다.

어쨌든 선배의 말에 서울신대에 원서를 넣었고, 엄청난 점수 임플레 현상을 경험했던 98년도 수능에서 아슬아슬하게나마 합격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곤 고등학교 졸업식날 그 선배의 손에 이끌려 캠퍼스 모임이라는 곳에 가서 입학도 하기 전에 서울신대 선배들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그렇게 나의 서울신대 생활의 초반은 사실상 예수전도단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긴 학교가 아닌 동아리를 보고 지원했으니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게다가 집안 사정으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보니 아는 선배들도 후배들도 손에 꼽을만큼 적었다. 스승이라 여기며 가까워질 수 있는 교수님도 없었다. 뭐 한학기 수업들으며 가까워졌다가도 1년을 얼굴을 안보이는 일이 반복되니 무슨 친분이 있었을까? 아마 교수님들도 나를 보시면 얼굴은 낯이 익으실거다..ㅋㅋㅋ 어쩌면 학교에 정이 없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그런데 그렇게 학교에서 10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얘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아마 지금은 이런 재학년수가 허락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다행히(?) 군대 갔다오기 전에 했던 1년짜리 휴학이 학교 제도가 바뀌면서 퉁쳐져서 현재 학교에서 허락하는 휴학 가능 년수보다 1년을 더 쉰 꼴이 됐다. 그러다보니 띄엄띄엄이나마 10년짜리 내 공간이 생겨버렸다. 도서관 책장 사이 의자라던가 기도탑의 특정 방이라던가… 학교 앞 서점 같은 곳들… 어쩌면 사람에게 드는 정보다 그것이 더 무시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도 내 여자친구는 연세대를 ‘우리학교’라고 부른다. 서울대에서 일하지만 거기는 자기가 일하는 곳이지 자기 학교가 아니라나? 하긴 학부에 대학원까지 보냈으니 그럴만도 하다. 앞으로 서울대로 박사를  가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ㅋㅋㅋ 지금껏 나도 줄곳 ‘우리학교’하면 서울신대였다. 대학원을 서울신대로 갈거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다른 대학원을 가는 것도 먼나라 얘기 같았기에 내 머리 속에서 언제나 ‘우리학교’는 부천 소사구에 있는 서울신대였다.

오늘 한신대 신대원 발표가 났다. 아침부터 언제 올라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내가 합격 소식을 알게 된 것은 페이스북 친구인 어떤 분의 축하 메시지 때문이었다. 뭐… 떨어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장신대나 총신대처럼 쓸데없이 경쟁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연대처럼 뭔가 학력이라는 스팩에 나도 모르게 기죽어버린 곳도 아니었으니까… (이번 연대 면접은 나 자신에게 정말 부끄러운 자리였다. -_-;;) 게다가 필기시험 당일에 감독관에게서 미달이라 왠만하면 다 받아줄 거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떨어지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근데 저녁에 다시 확인해보니 타대학 신학전공자는 꽤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지원자가 20명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8명이 붙은 걸보니 덮어놓고 막 뽑은 것은 아닌가보다.)

아직 돈문제가 남아있지만 큰 사건이 없는 이상 내년엔 한신대가 ‘우리학교’가 된다. 그 단어가 쉽게 입에 붙을지 모르겠다. 이제 10년 넘게 ‘우리학교’라 불러오던 이름을 바꿔야 한다. 합격해서 기쁘기도 하지만 가슴 한구석이 휑한 것은 왜인지 나도 모르겠다.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Content Protected Using Blog Protector By: PcDr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