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이퍼의 아이폰 영적 위험론(?)

페이스북에 올라온 파이퍼의 설교를 보고 괜찮은 떡밥이다싶어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파이퍼는 최근 톰라이트와 랍벨에 맞서 개혁주의 신앙의 수호자로 자처하고 나선 사람입니다. 하지만 라이트에 대해서는 그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랍벨은 책이 나오기도 전에 비판부터 늘어놓아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유투브에 올라온 영상이 특정부분만 편집되어 올라온 것이라 어떤 문맥에서 나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보이는 한에서 글을 써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대중가요들의 대대적인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으로 인해서 나라가 떠들썩한 적이 있습니다. 뭐 그들의 노래가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내용이었다고 보긴 조금 힘들겠습니다만, 문제는 누군가는 그것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특정 문제를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을 심각하게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겉으론 안그런 척 할지라도 말입니다.

한때 현아의 뮤직비디오가 야하다는 이유로 19금 판정을 받았을 때 사람들 사이에 이런 비판(?)이 있었지요.

“니들이 보다 느낀(?)거 아냐?”

존 파이퍼가 제기하는 아이폰의 영적 위험성에 대해 듣고 있자면 비슷한 생각이 듭니다.

“저 아저씨 아이폰이 엄청 재미있나보군”

저도 아이패드를 국내 출시 전부터 써왔고 그 전에는 아이팟 터치를 사용했지만 저 정도의 위험성을 감지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영적으로 무지한 탓이지요. ㅋㅋㅋ

사실 애플 제품이 사용자를 끄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래 사용하다보면 느끼는 사용자 경험은 ‘재밌다’보다는 ‘편하다’가 맞습니다. 뭐 왠만한 사람보다 아이패드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제 아이패드 16G는 그 용량을 절반도 못채운 채 비어있습니다. 왜일까요? 앱스토어에 수백만개의 앱이 있지만 그걸 다 쓸만큼 인간의 능력이 그걸 다 쓸만큼 따라주질 못합니다. 나중되면 정작 사용하는 앱은 몇개 안되지요. 요즘은 아이패드를 보고 있자면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아이패드의 영적인 위험성을 파이퍼처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제가 영적으로 무지하기 보다는 저는 파이퍼처럼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이폰에 게임만 몇백개씩 받아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나 동영상으로 꽉 채운 사람이 아니면 아이폰에 대해 저런 위험성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위험한 것은 정작 아이폰보다는 그 사람들의 사용습관/용도입니다. 아이폰이 그것을 더 ‘편하게’ 소비하도록 도와주면서 그 위험성이 증폭되는 것이지요. 만약 게임중독인 사람이 아이폰에 미쳐있다면 그 사람의 문제는 아이폰이 아니라 게임에 중독된 그 사람의 상태입니다.

오히려 제가 아이패드를 쓰면서 걱정하는 것은 ‘재밌다’는 감정보다는 주는대로 소비하게 되는 수동적 시스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 맘대로 재밌을 권리’정도 되겠습니다. 리눅스나 오픈소스 계열이 애플을 비난하는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바로 애플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컨텐츠입니다. 그들이 통과시키고 통제에서 벗어난 사용은 엄격히 규제되지요. 그래서 아이폰을 해킹해서 추가적인 기능을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을 Jailbreak(탈옥)이라고 합니다. 편하긴한데 자유롭진 못합니다.

누군가 쫌 더 야한 성인용 앱을 바라는 사람이 있어도 애플이 승인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그런 앱을 아이폰에 깔 수 없습니다. 단순히 아이폰뿐 아니라 애플의 운영체제인 OSX와 그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IOS는 시스템 디렉토리 자체가 폐쇄적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윈도우처럼 바이러스 걱정하며 백신을 깔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안드로이드는 이런 규제가 없거나 극히 소극적이지요. 그래서 요즘도 선정성이나 보안 등에서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파이퍼가 하는 말은 결국 문화가 빼앗아 가는 예전의 가치에 대한 향수 그 이상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인터넷에 그런 위험성이 제기되었었고 그 전에는 교회에 마이크를 설치하는 것이 옳은지 드럼을 쳐도 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어떤 새로운 문화가 들어올 때마다 교회에서는 그것을 통해 잃어버릴 것을 걱정해왔습니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파이퍼는 죽음 앞에서 실존적 위기를 말하지만 그 논리대로라면 사실 그는 아무것도 하면 안됩니다. 죽음 앞에선 돈도, TV도, 그 어떤 문화도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나가면 먹는 것, 입는 것, 부부간의 성관계, 그 모든 것이 거부되어야 하지요. 왜냐하면 누구도 죽음 앞에서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이퍼의 논리 그대로입니다. 그는 실존적 위기로 자신의 개인적 취향/문화적 거부감을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실존적 위기는 주체적 삶에 대한 성찰을 요하는 것이지 문화(도구, 대상)에 대한 성찰을 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도구가 무엇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사용자 자신입니다. 파이퍼는 자신이 싸워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싸워야 하는 것은 아이폰이 아니라 컨텐츠이며 더 나아가 그가 말하는 ‘재미’때문에 신앙의 위기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닫혀진(연약한) 신앙관이 아닐까요?

2 Comments

  1. 일리가 있는 말 입니다 . 자꾸 폰만들여다보게 만드는…..그러나 존 파이퍼의 핵심을 잘 이해하지 못한것 같네여~

    1. 맞는 말입니다. ㅋㅋㅋ 핵심을 이해 못했다기보다는 애초에 핵심엔 관심이 없었다고 보시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가 말하려했던 의도보다는 그가 말하는 방식 속에 숨어있는 그의 세계관을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쓴 글입니다. 파이퍼가 하려던 말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쓴 글입니다. 파이퍼의 의도를 잘못 이해했다고 보시기 전에 제글의 의도를 이해해주시면 감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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