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절기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아모스 5장 21~24절)

아모스 선자자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예언하면서 하나님이 그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신다고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절기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표현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애굽에서 종되었던 때를 기억하면서 그곳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한다는 뜻이었지요.
그런데 그런 절기를 미워하신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공의와 정의’가 흐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공의와 정의는 가난한 자들과 많은 연관을 갖습니다.

신명기 법전에선 유독 과부와 고아들 그리고 객들과 레위인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공정한 재판을 하는지는 그들이 과부와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어떻게 하는지에 의해서 증명됩니다.


이처럼 신명기 법전은 가난한 자들과 억압된 자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을 대우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시절의 종되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그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모스 당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가장 번성했던 세번의 번성기 가운데 하나엿습니다.
과거 아합왕은 주변국의 시장경제를 이스라엘로 들여오면서 이스라엘은 유대에 비해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게 됩니다.
하지만 새롭게 들어온 경제체제와 이스라엘의 경제체제가 부딫힌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그것입니다.
땅을 사고 팔 수 없는 이스라엘의 경제체제를 땅을 사고파는 경제체제가 대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돈있는 사람들이 땅을 사들여 대지주가 되고 가난한 농민들은 물려받은 땅을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매년 소출에 비해서 터무니 없이 높은 소작료를 내야했던 농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그런 소작료를 갚기 위해, 또 생계를 위해 자연스럽게 대부업이라는 것이 형성되게 됩니다. 사실 고리대금업이었지요.
아모스 8장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빈궁한 사람들을 짓밟고,이 땅의 가난한 사람을망하게 하는 자들아,이 말을 들어라!
기껏 한다는 말이,”초하루 축제가 언제 지나서,우리가 곡식을 팔 수 있을까?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우리가 밀을 낼 수 있을까? 되는 줄이고, 추는 늘이면서,가짜 저울로 속이자.

헐값에 가난한 사람들을 사고신 한 켤레 값으로 빈궁한 사람들을 사자.찌꺼기 밀까지도 팔아먹자”하는구나.

이익을 얻기 위해서 공공연히 불법과 속임이 자행되었고 그에 대한 피해자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신 한켤레 값의 돈을 갚지 못해서 노예로 팔려가야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되게 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돈이 그 기준을 대체했습니다.


이익과 발전이라는 가치아래 더러운 과정과 그것으로 인해 희생된 자들은 감춰졌습니다.


돈 앞에서 하나님의 정의는 쓰레기처럼 버려졌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대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아모스가 이스라엘의 절기를 비판한 것은 곧 이런 돈이라는 우상이 지배하는 사회적 구조를 비판하는 외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공법이 물같이 흘러가는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요?
신명기는 절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들은 이 절기에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과 딸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떠돌이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신명기 16장 14절)

가난한 과부와 고아들 억압받는 남종과 여종, 머물 곳이 없는 레위인과 떠돌이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이 원하신 절기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의와 정의가 돈에 밀려 실종된 당시의 시대의 절기는 그 본래의 의미를 잃고 빈껍데기 뿐인 의식과 제물들로 가득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전앞에서는 돈을 갚지 못한 형제가 노예로 끌려가고 돈이 없어 재판에서 진 과부가 슬피울고 있는데 성전안에선 찬송의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이런 제사들을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공의와 정의가 무너진 앞에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드리는 희생의 화목제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명절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얼마전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시위를 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돈있고 힘있는 자들에 의해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삶의 자리를 잃고 궁지로 몰리다 결국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이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었다면… 그들이 그렇게 죽어야 했을까요?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있는 이 명절에도 아직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려움으로 인해 함께 즐거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우리의 절기를 기뻐하실까요?

요새는 사회가 어렵다보니 돈얘기 아닌 다른 것의 가치를 이야기하면 바보가 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돈이면 다 될 것이라는 물질만능주의, 하나님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복적 신앙, 더 우수한 개체만 살아남고 열등한 개체는 도태되고 희생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무한경쟁의 진화론적 사회인식, 이런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아합왕이 수입했던 바알과 아세라의 법칙입니다.
사람을 잃어버리고, 정의를 잃어버린 사회는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나, 우리 가족 뿐만 아니라 나와 상관 없어 보이는 ‘성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 객들까지도 함께 즐거워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즐거워할 명절을 기대하며 이번 설날은 그들과 함께 눈물흘리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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