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이 오시면

성령님이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사도행전의 명령에 너무 익숙해서 성령이 오시면 권능을 받는다는 말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목사님이 축도를 하실 때면 전혀 다른 기도의 내용을 듣게 됩니다.

성령님의 교통하심.
성령의 교통하심이란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 통(通)하게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 예수님이 승천하셨을 때 초대교회는 히브리어를 쓰는 유대인들과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서로 언어도 신학도 달랐지만 결국 같은 유대인이었지요.
그런데 스데반의 순교사건이후 성전과 율법을 비판하던 헬라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그 최전선에 서 있던 사람이 바울이지요. 당시에는 유대교로 개종하고 싶지만 안식일과 할례등의 율법적 요구 때문에 개종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안식일과 할례 유대교를 전파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많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교회의 구성원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분되기 시작합니다.

사실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 지배를 받는 시절이기도 했고 서로 중요시 여기는 것들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두 집단의 사이가 좋았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당장에 바울과 예루살렘의 갈등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중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고넬료 사건이 그것입니다.
물론 사도행전의 편집상 고넬료 사건이 모든 이방인 선교보다 앞서 기록되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방 기독교를 끌어안으려는 누가의 노력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어쨋든 이방인(이탈리아인) 고넬료에게 세례를 준 것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의 할례자들이 곱게 받아들였을리 없지요.
하지만 누가는 베드로의 입을 빌어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행 10:47~48)

이처럼 초대교회에 있어서 큰 분열로 치달을 수 있었던 유대인과 이방인 기독교를 하나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어 놓은 요소가 바로 성령입니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성령의 기능은 능력행함 이전에 둘로 하나를 만드시는 하나됨 즉, [교통하심]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고린도교회의 열광주의자들에 대적해서 성령의 은사의 기능적 측면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은사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한 논쟁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2장 31~13장 일부)

성령님이 임하시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무슨 능력이 나타나나요? 권능은 뭐하는 권능인가요?
주를 증거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능력들일까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받아야 할 권능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권능이 아닐까요?

초대교회처럼 서로 전혀 다른 환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한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가치있다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은 많은 아픔이 있고 나의 것들을 포기하는 헌신의 노력들도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 위에 내가 못박힌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오늘도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와 세상사이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에베소서의 다음과 같은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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