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세기 유대교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라이트 VS 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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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Briercrest College & Seminary에서 가르치고 있는 D.Miller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라이트와 샌더스는 제임스 던과 함께 바울에 관한 새관점 학파(?)로 분류되긴 하지만 서로 상당부분 다른 견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Miller는 두 사람의 저작에서 초기 유대교에 관한 언급들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약간은 의도적인 비교인 듯 하지만, 어쨌든 Miller는 라이트가 샌더스에 비해 더 전통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라이트에 대한 Miller의 비판은 꽤나 일관적인 것 같습니다. 이전 글들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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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전에 일세기 유대교에 대한 라이트의 초상(portrayal)은 “신학적 목적을 지지하기 위해 형성된 결함이 있는(flawed) 역사적 모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었고 바리새파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rehabilitate) 노력했었다(여기여기). 이것은 어쩌면 그저 내가 라이트보다 샌더스의 영향을 더 받았다는 정도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at any rate) 둘 사이의 대조는 뚜렸하다.(stark). 다음의 예를 살펴보자.

 

N.T. Wright:

복음서들 역시 (바울로 하여금 매일 이것에 대해 생각하며 울게 만들었던 끔직한 아이러니와 함께) 해결책을 제시해야할 사람이 스스로 문제의 중심이 되었버렸던(have become) 이스라엘 내부의 부패(corruption)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리새인들은 어느정도(kind of) 거룩함을 따르지만 문제를 더 안좋게 만들뿐인 토라의 해석을 제공했다. 성전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야 했지만 대신 그들 소유의 독점권과 부패한(corrupt) 시스템을 말하는 희생제사를 제공했다. 혁명가는 하나님의 침노하는 왕국(마 11:12)의 활동에 들어가기를 시도하지만 폭력으로 폭력과 싸우는 그들의 시도는 그것을 넘어선 승리가 아닌 폭력의 승리를 결과로 내놓을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예수의 죽음이 이방인 뿐 아니라 “모든 민족과 같이(삼상 8:5,20)”되기를 바랬고 지금은 가이사 외에 왕이 없다(요 19:15)고 말하기까지 축소된 이스라엘의 일로서도 보여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N.T. Wright, Evil and the Justice of God (IVP, 2006), 80-81.

(라이트는 복음서들의 초상을 그리기 위해 그가 취한 것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가 그것에 동의한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E.P. Sanders:

우리가 요약했던 시대 속의 다양한 배우들은 가끔 도덕적 책망(censure)의 대상이다. 만약 우리가 공감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본다면 우리는 그들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제사장들을 꽤(rather) 좋아한다. 저항을 지연시키고 로마의 군대로부터 유대민중을 보호하려는 측면에서 (헤롯 가문을 제외하고) 그들이 열심히 시도하고 실행했던 것이 어떤 그룹이 했던 것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바리새인들을 꽤 좋아한다. 그들은 자세함과 명료함(precision)을 사랑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참으로 올바르게 되기를 원했다(they wanted to get everything just right). 나는 이 점이 마음에 든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그가 자기들을 축복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들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하기를 그가 원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 중에 일부가 지나치게 꼼꼼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에 대한 현대 비평학을 통해 충분히 드러난 것은 이것이 신앙인들의 공통적인 실수라는것이다. 일반적으로 나는 평범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은 자신의 직장에서 일을 하고, 성경을 믿으며, 종교의 작은 일과들(routines)과 예식을 행한다(carry out). 그들은 매일 기도하고,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며, 안식일이면 회당에 가서 선생에게 묻고, 또 정중하게(respectfully) 듣는다. 무엇이 더 좋을 수 있는가?(What could be better?)

– E.P. Sanders, Judaism: Practice and Belief 63 BCE – 66 CE (SCM, 1992), 493-4.

 

나의 질문 : 복음서는 라이트가 인용하는 그 이유때문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그리고 반란군을 부패한 역할로 출현시키는가(present A as B)? 아니면 다른 곳에서 샌더스가 논했던 것처럼 곤경에 대한 해결책에 해당하는 하나의 경우인가? 다른 말로하면, 복음서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 대해 잘못으로 지적하는 주된 것은 그들의 경건(또는 위선)이 아니라 메시아에 대한 거부이다.

 

 

I’ve commented before that I think N.T. Wright’s portrayal of first-century Judaism is “a flawed historical model moulded to serve a theological purpose,” and I’ve tried to rehabilitate the Pharisees (here and here). This may only mean that I am more influenced by Sanders than I am by Wright. At any rate, the contrast between the two is stark. Consider the following examples:

N.T. Wright:

The Gospels thus also tell the story of corruption within Israel itself, as the people who bear the solution have themselves become (with terrible irony that causes Paul to weep every time he thinks of it) a central part of the problem. The Pharisees are offering an interpretation of Torah which pursues a kind of holiness but only makes matters worse. The priests in the temple are offering the sacrifices which should speak of God’s grace but which instead speak of their own exclusive and corrupt system. The revolutionaries try to get in on the act of God’s in-breaking kingdom (Matthew 11:12), but their attempt to fight violence with violence can only ever result in a victory for violence, not a victory over it. This means that the death of Jesus, when it comes, is bound to be seen as the work not only of the pagan nations but of the Israel that has longed . . . to become “like all the nations” (1 Samuel 8:5, 20) and now is reduced to saying that it has no king but Caesar (John 19:15).

– N.T. Wright, Evil and the Justice of God (IVP, 2006), 80-81.

(Wright is describing what he takes to be the portrayal of the Gospels, but it appears that he agrees with it.)

E.P. Sanders:

The various actors in the period that we have surveyed are often the objects of moral censure. We shall understand them better if we view them sympathetically. I rather like the chief priests. I think that on the whole they tried hard and did better at staving off revolt and protecting the Jewish population from Roman troops than any other group could have done — except a succession of Herods… . I rather like the Pharisees. They loved detail and precision. They wanted to get everything just right. I like that. They loved God, they thought he had blessed them, and they thought that he wanted them to get everything just right. I do not doubt that some of them were priggish. This is a common fault of the pious, one that is amply displayed in modern criticism of the Pharisees… . Mostly, I like the ordinary people. They worked at their jobs, they believed the Bible, they carried out the small routines and celebrations of the religion: they prayed every day, thanked God for his blessings, and on the sabbath went to the synagogue, asked teachers questions, and listened respectfully. What could be better?

– E.P. Sanders, Judaism: Practice and Belief 63 BCE – 66 CE (SCM, 1992), 493-4.

My question: Do the Gospels present the Chief Priests, Pharisees and rebels as corrupt for the reasons Wright cites, or is it—as Sanders has argued elsewhere—a case of solution to plight? In other words, the main thing the Gospels find wrong with the Chief Priests and Pharisees is not their piety (or hypocrisy) but their rejection of the Messiah.

원문 링크 : http://gervatoshav.blogspot.com/2011/02/wright-and-sanders-on-first-centu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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