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다마스쿠스 사건 :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김창락

Web Albums App Upload - 11. 8. 25. 오후 1:44:12 바울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요즘 그의 회심사건에 집중하게 됐다. 톰라이트의 책을 읽고 탈향의 바울 강좌를 들으면서 자꾸 내 가슴에 와서 부딫히는 것은, 그가 회심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고 그의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가 기독교 신학의 방향을 설정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이전에 속해있던 유대교가 행위의 종교가 아니라는 새관점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다마스쿠스에서 바울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한 연구를 정리/평가하면서 역사적 관점에서 사건의 성격을 재정의 하는 연구서이다. 지금껏 수행되어 온 다마스쿠스 사건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와 사회사적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고 바울이 직접 언급하는 다메섹 사건에 대한 진술을 통해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세번의 사건 보도를 비교하고 논의의 중심을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진정 서신으로 옮겨오도록 유도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분명 필요한 작업이다. 이것은 후대에 누가라는 작가의 눈으로 채색된 사도행전의 그림으로부터 바울의 사건을 독립시키는 당위성을 제공한다. 특히나 바울서신에 나타난 다마스쿠스 사건 보도에 사용된 단어를 해석하고 그 용례를 통해 증명하는 작업은 바울 사건에 대한 새롭고 정직한 재구성을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비해 아쉬운 부분도 있다. 저자는 사도행전의 역사성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그것과 완벽하게 결별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 가장 큰 예가 바울이 직접 언급하지 않는 다마스쿠스라는 상징적 지명을 끌어안는다. 성경에서 바울이 다메섹을 언급하는 경우는 고후 11:32과 갈1:17인데 이 구절은 회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후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울의 진정 서신 가운데는 그의 회심(소명)사건과 다메섹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다마스쿠스라는 지명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과감했다면 어땠을까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김창락 교수는 이 책에서 두가지 결론 사이에서의 방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 문제는 바울의 박해가 일어난 이유가 무엇이고 다마스쿠스의 사건이 그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바꿔놓았는지를 이해하게 해주는 큰 전제이다.

1.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것은 메시야 예수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전파하던 그리스도인들의 신분때문이었다.
2.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할례와 같은 것을 무시하고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급진적 이방인 선교에 대한 반대였다.

두번째로 제시된 원인은 어느정도 인정되고 있는 것이지만 저자의 강조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첫번째 원인은 스데반의 순교로 촉발된 박해가 헬라파 그리스도인에게만 한정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굳이 사도행전의 기록을 의지하지 않더라도 바울의 박해가 예루살렘의 교회를 향한 것이었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저자의 결론대로라면 바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헬라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이 속한 예루살렘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었어야 맞다.

한백교회에서 발행하는 웹진에는 김창락 교수와 나눈 바울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다. 그가 이야기해주는 바울은 인간적이다. 다른 어떤 바울보다 그가 전해주는 바울은 매력적이다. 그가 서문에서 말하듯 이 책은 지루한 연구서이다. 하지만 이런 연구들이 있어 오늘 우리는 조금 더 정직하게, 더 매력적인 바울을 만날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 저자가 저술한 이렇다할 바울 연구서가 없는 상황에서 김창락 교수의 책은 참 단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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