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땅이의 가요들으며 은혜받기 4탄 : 어머님께 – god

Web Albums App Upload - 11. 9. 9. 오전 10:13:39god의 데뷔곡인 [어머님께]라는 노래에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유명한 가사가 나온다. 사실 어머님이 짜장면이 싫다며 아이들에게 양보해야 할만큼 집이 힘들지 않았던 사람도 아마 이 가사에는 한번쯤 공감했을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서 모든 좋은 것들을 양보하는 부모의 마음이 잘 나타난 가사라서 그런 것 같다. 그 덕분인지 이 노래는 부모 속 꽤나 썩였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도 울렸다.

그래도 명색이 아이돌 가수의 노래인데, 결국 이 노래 속에서 어머니는 모든 것이 잘되려고 할 때쯤 세상을 떠난다. 이 모진 아들은 어머님께 효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버리고 만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처럼, 정작 효도하려고 하면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모 마음에 스크레치 쫌 냈다 싶은 사람들에게 이것만큼 두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이 노래를 들으면서 정말 슬프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짜장면이 싫다고 마다하시는 어머니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에 나오는 한 마디 때문이다.

나 당신을 사랑했어요. 한번도 말은 못했지만, 사랑해요. 이젠 편히 쉬어요. 내가 없는 세상에서 영원토록

우리 나중에 다시 만나요. 내가 그땐 꼭 행복하게 해줄께요… 뭐 이런 가사가 나와야 따뜻한 결말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 가사는 너무 절망적이다. 그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얼마나 후회되면 내가 없는 세상에서 영원히 쉬라고 말하는 것일까?

내가 없었다면 행복했을 사람… 우리에게 부모란 그런 존재이다. 자식을 키우는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대부분의 현실은 이 노래의 가사와 더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아니라면… 오늘 우리의 부모들은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흔히 화날 때 부모님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언제 낳아달랬어?! 자기 맘대로 낳아놓구선…” 그렇다. 우린 부모를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어떤 자식도 자기가 원해서 태어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건 자신의 선택이다.

어릴 적 내가 자라온 환경은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초등학교 때 이혼하시고 나는 어머니와 살아야 했다. 당시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잊지 못하는 한마디가 있다. 어머니 혼자 몸으로 두 남매를 키우다보니 가정 사정은 여의치 못했던 시절, 어느날 어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지방에 계셨던 아버지를 찾아가셨고 어렵게 양육비에 대해 얘기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어린 나는 당돌하게도 아버지에게 따졌다. “아버지, 부모로써 자식을 낳아놨으면 책임을 져야하는 것 아닙니까?” 그때 돌아온 아버지의 말은 싸늘했다. “나는 너희들 실수로 낳았다.”

이 말은 지금까지 쓴뿌리로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다. 이미 아버지를 용서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아버지는 내가 없는 세상의 행복을 찾아 떠났다. 어쩌면 그는 부모가 되는 선택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내가 없었다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어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와 내 동생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소원일만큼 매일매일이 힘들어도, 빚쟁이가 집까지 쫓아와서 위협할 때도… 우리는 이런 사람을 부모라고 부른다. 나에게 부모란 끊임없이 그 관계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Web Albums App Upload - 11. 9. 9. 오후 5:18:55

나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배웠다. 그렇다보니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알게된 예수가 보여주신 아버지 하나님은 내 삶 속에서 어머니를 통해 보여주신 당신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을 배웠고 그 분은 나에게 나의 어머니 같은 아버지 하나님이 되셨다.

우리는 가끔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을 갖곤 한다. “아무것도 부족할 것 없는 하나님이 왜 인간을 만드셨을까?” 하나님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어쩌면 꽤나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존재이지 않을까? 성경을 보고 있자면, 그리고 나의 삶과 세상을 보자면, 하나님도 참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뭐 하나 그 분의 맘에 드는 것이 있을까?

어쩌면 하나님에게도 우리 없는 세상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놓지 않으신다. 아무리 개망나니 자식이라도 포기하지 않는 촌스럽고 바보같은 어머니처럼 그렇게 하나님은 그자리에 계신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길 간절히 원하시며 그 고난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신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말할 때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다.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하나님만의 일방적인 언약이고 전적인 사랑의 결과이다. 아들됨이라는 것은 자기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아들도 자신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아들됨은 또한 어떤 자격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마치 세상에 막 나온 아기처럼 자기 몸도 가눌 수 없는 존재…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아들됨이다. 그런 우리를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 그것은 어떤 무엇보다 앞서는 은혜이다.

하나님은 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는가? 난 아직도 어머니에게 왜 나를 낳으셨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어머니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도 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종족 보전의 본능 같은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추석이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착한 아들이 못된다. 요즘엔 신실한 신앙인도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하나님에 대한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겨서 종종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베짱을 부리곤 한다. 문득 지금 어머니에게 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대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린 아이 같은 신앙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 그 신앙에 가장 큰 걸림은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배워가는 문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 큰 어른 신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은 늘 그 자리에 계실거라는 과도한 신뢰일지도 모른다.

7 Comments

  1. 전도사님, 안녕하세요.
    검색중에 블로그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글들과 대화를 접하며 전도사님의 신앙관을 인상적으로 보게 되었고요.
    그리고 전도사님에게 질문을 드리고자 이렇게 댓글을 달게 됩니다.
    일종의 신앙상담입니다.

    저는 근본주의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저의 신앙은 성경에 기반을 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성경에 대한 신뢰를 상당히 잃게 되었습니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아시겠지요.

    현재 저의 신앙은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중입니다.
    밟고 서야 할 곳을 잃어버렸다고 할까요.
    신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이 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도사님의 신앙관은 새롭게 다가옵니다.
    다른 분과의 댓글에서 전도사님이 고백하길,
    창세기를 신화로 보고, 바울의 원죄론을 교리를 믿지 않지만,
    신앙에 위기를 느끼지 않는다 라고요.

    여전히,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있는 전도사님의 신앙은
    과연 어디에 기반을 두고 서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났습니다.

    저에게 일어났던 의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디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보통, 성경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는 창조를 믿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신화로 봤을 때
    여전히 창조를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두는지요.

    2.전도사님은 ‘일반적 영감’을 믿지 않으시지요. 그런데 전도사님이
    믿는 성경의 ‘영감’은 어떤 성격인가요. 우리가 성경을 ‘영감있는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3.전도사님은 신약성경에 대해서도 보수신앙인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신약성경에 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지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바울의 원죄론을 믿지 않는 이유는, 바울서신에 대한 다른 해석을 갖고
    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원죄론을 바울공동체의 하나의 견해로 생각하기 때문인가요.

    5.예수님을 주라 신앙하는 이유와 근거에 대해서 여쭙습니다.

    6.구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천국과 지옥에 연관하여 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본인의 신앙 그대로를 설교하시는지요.
    그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설교가 가능한 교회는 어디가 될 수 있을까요.
    또, 그대로 설교할 수 없다면, 어떤 내용으로 설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7.마지막으로 전도사님의 신앙을 형성하게 되기까지
    굵직한 영향을 주었던 책들을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름의 공부를 하고자 하는 차에
    전도사님의 블로그를 만나게 되어 반갑게 생각합니다.
    종종 블로그에 들러 배우겠습니다.

    1. 1.보통, 성경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는 창조를 믿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신화로 봤을 때
      여전히 창조를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두는지요.

      => 신화 = 거짓말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책이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게 아니라 그것을 쓴 사람의 의도와 신앙을 이해하며 대화하는 것입니다.

      2.전도사님은 ‘일반적 영감’을 믿지 않으시지요. 그런데 전도사님이
      믿는 성경의 ‘영감’은 어떤 성격인가요. 우리가 성경을 ‘영감있는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 성령의 감동이라는 말이 일점일획도 틀림 없다는 소위 축자적영감설을 의미한다면 거기에는 반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들을 감동시키셨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3.전도사님은 신약성경에 대해서도 보수신앙인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신약성경에 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지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어떤 점에서 물으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약성경의 어떤 면은 비슷할 것이고 어떤 면은 다르겠지요.^^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이 필요할 것 같네요.

      4.바울의 원죄론을 믿지 않는 이유는, 바울서신에 대한 다른 해석을 갖고
      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원죄론을 바울공동체의 하나의 견해로 생각하기 때문인가요.

      => 바울은 원죄론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공동체에도 원죄론이라는 개념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원죄론이라는 개념이 성경적이라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5.예수님을 주라 신앙하는 이유와 근거에 대해서 여쭙습니다.

      => 제 인생을 변화시키고 구원하셨기 때문에 주라 신앙합니다. 근거를 대라 하시면 제 인생이 근거이겠지요. 다른 사람도 저와 같은 이유로 예수를 주라 신앙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6.구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천국과 지옥에 연관하여 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구원을 천국/지옥과 연관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저의 구원관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사람이 믿네 안믿네 결정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뿐 그 결과는 내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6.본인의 신앙 그대로를 설교하시는지요.
      그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설교가 가능한 교회는 어디가 될 수 있을까요.
      또, 그대로 설교할 수 없다면, 어떤 내용으로 설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될 수 있으면 그대로 설교하려 하지만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설교하려 합니다. 그리고 저는 기본적으로 그런 교리문제를 가지고 설교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 것들은 성경공부에서 따로 집중적으로 가르칩니다. 설교는 성도를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공감하고 결단하게 도와주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나 감리교 일부 교회 혹은 몇몇 교회개혁 성향의 교회들을 가시면 조금 더 자유로운 내용의 설교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7.마지막으로 전도사님의 신앙을 형성하게 되기까지
      굵직한 영향을 주었던 책들을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대부분 신학적인 책들이긴 합니다만 제 블로그 오른쪽에 나오는 책장에 있는 책들이 제가 좋아하는 책들입니다. 물론 거기에 없는 책도 많지만… 신학적이지 않은 책으로는 필립얀시의 책이나 스캇팩의 책이 좋습니다. 신학적인 책과 대중적인 책의 중간쯤 되는 책들은 바트 어만이나 랍벨의 책들을 추천해드립니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간단하게만 썼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몰라 쓰지 못한 것도 있네요. 더 궁금하신 것은 자세히 물어보시면 제가 대답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성심껏 대답해드리겠습니다.

  2. 전도사님, 안녕하세요.
    검색중에 블로그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글들과 대화를 접하며 전도사님의 신앙관을 인상적으로 보게 되었고요.
    그리고 전도사님에게 질문을 드리고자 이렇게 댓글을 달게 됩니다.
    일종의 신앙상담입니다.

    저는 근본주의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저의 신앙은 성경에 기반을 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성경에 대한 신뢰를 상당히 잃게 되었습니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아시겠지요.

    현재 저의 신앙은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중입니다.
    밟고 서야 할 곳을 잃어버렸다고 할까요.
    신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이 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도사님의 신앙관은 새롭게 다가옵니다.
    다른 분과의 댓글에서 전도사님이 고백하길,
    창세기를 신화로 보고, 바울의 원죄론을 교리를 믿지 않지만,
    신앙에 위기를 느끼지 않는다 라고요.

    여전히,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있는 전도사님의 신앙은
    과연 어디에 기반을 두고 서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났습니다.

    저에게 일어났던 의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디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 앗, 질문들이 적힌 댓글이 지워졌군요. 베땅이님이 믿음의 근거, 성경의 영감,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신앙관에 큰 영향을 준 책들에 대해 질문드렸던 것 같네요. 질문에 답해주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답이 달리길 기다리고 있습니당ㅅ.ㅅ

    1. 증복된 글인 줄 알고 지웠는데 거기에 질문이 있었군요. 복원시켰습니다. 근데 질문이 너무 많네요. 제가 다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블로그에 답을 하는 것은 너무 보기 싫게 길어질 것 같으니 다른 방법으로 하나씩 질문해주시면 될 수 있는대로 성심껏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제 메일 주소는 ssh4jx@gmail.com입니다. 일단 밑에 적어주신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간략하게 써서 밑에 달겠습니다. 보시고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메일이나 다른 경로로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1. 저도 이렇게 잘꾸며진 블로그에 댓글이 남용되는 거 같아 송구한 마음입니다. 이유가 있겠지만 방명록이 없는 점이 방문객으로서 조금 아쉽네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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