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 (1:1)

로마서를 읽어가면서 나타나는 논쟁점을 정리해보자.

#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바울의 언급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 개념이 구약의 ‘여호와의 종’ 개념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의견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글라스 무는 바울이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종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다. 이것은 그가 같은 구절에서 사도의 개념을 ‘그리스도가 친히 임명하신 유일무이한 집단’으로 이해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물론 그 속에는 자기 비하, 겸손 등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아주 높은 주인을 섬기면 큰 명예가 따른다’는 원칙에 더 강조점이 있는 것 같다. 크랜필드도 이 개념이 구약의 위대한 인물들에게 적용되어지던 영광스런 칭호라는 의견을 지지한다.

반면 제임스 던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을 이사야 49장의 배경에서 읽는데 이것은 갈라디아서 1:15-16에 등장하는 자기 이해와 같은 맥락으로 ‘여호와의 종’이 가지고 있는 이방인 선교라는 사명과 연관된다. 이런 던의 이해는 이 문구를 이방인 선교라는 바울의 자기 소명에 관한 이해 속에서 읽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이방인 선교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로마서의 상황에서 볼 때 바울의 사역을 구약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설득력있다.

이런 던의 이해 속에서 사도는 교회에 대한 권위를 갖지만 열둘이라는 수로 한정되지 않는다. 바울은 단순히 ‘사도’의 개념을 열둘이라는 숫자 속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집단에게 사용한다. 던은 열둘이라는 사도적 대표성은 바울 이후의 흐름으로 이해한다. 바울 역시 그의 소명을 모든 사람들의 소명과 구분되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의 사도성은 그의 사역 속에서만 한정된다.

ICC주석에서 크랜필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표현은 자신의 직분에 관한 개인적 고백 외에도 저자의 특별한 임무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곧 그 임무를 성취하는 면에서 그가 특수한 의미로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뜻인 것이다.”

이런 논쟁점에 있어서 커다란 이해는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이 이 문구를 사용한 목적이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사역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하 것인지에 따라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iPad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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