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 문제 [성서조선 1938년 116호]

성서조선을 발행하시던 존경하는 김교신 선생님의 글을 옮겨봅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학을 하는 입장에서 1938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이런 글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물론 지금에서야 너무나도 당연한 학문적 결과이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나 그렇지 교회에서는 공공연히 얘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의 문제도 사실상 너무나 당연하고 한번쯤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당연한 듯 넘어가고 신앙을 헤친다는 이유등으로 쉬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김교신 선생은 엄연히 평신도의 신분이셨고 진보적인 학자도 아닌 그저 평생 평교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같은 성서앞에 스스로 정직한 평신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하 글은 http://www.biblekorea.net/에 올라온 글을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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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마태, 누가 등 세 복음서는 서로 관련되는 문제가 적지 않으므로 각 책을 논술하는 가운데 그때 그때에 얼마간 언급하였으나, 항상 단편적임을 면하지 못했다. 이 공관복음 문제는 예수를 더 잘 이해하며 신앙에 정진하려는 누구에게든지 중대하고 흥미있는 문제이기에 우리는 다시 한번 총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단 이 문제는 문제 중의 문제이니 만큼 성서학자의 의견이 아직도 갑론을박하여 그 귀추를 잡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이 문제의 권위자인 스트리터(B. H. Streeter) 씨의 설에 의거하고자 한다.

< 공관복음 문제 >
마태, 마가, 누가 등 세 복음서를 다소 주의하여 읽은 사람은 소위 ‘평행 기사’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읽은 기사와 꼭 같은 것이 마가복음에도 나오고 누가복음에도 다시 나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물론 예수 한 사람의 생애와 교훈을 기술한 것이므로 서로 공통한 부분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 공통한 정도가 특이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예컨대, 두 문장가가 동시에 금강산을 구경하고서 기행문을 썼다면 거기에 공통한 내용이 없지 않을 것이요, 여러 명의 학생이 농구나 축구 같은 경기를 동시에 관람하고서 그날 일기를 기록했다면 거기에 역시 공통한 내용이 있을 터이다.   또는 2개 신문사에서 종군기자를 특파하여 동일한 전투를 보도하게 하였다면 그도 또한 공통한 내용이 상당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그 내용이 공통하다는 것은 아무리 동일한 사건을 동시에 기술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글쓴이가 각자 개성을 지닌 인간이기에 그 내용의 공통이라는 데에도 정도가 있고 한계가 있다.   문장의 향기가 다르고, 글 솜씨가 꼭 같지 못할 것이며, 어휘의 선택에도 또한 차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관복음의 평행 기사에는 놀라우리만큼 그 문장과 어휘의 채택까지 거의 완전히 일치한다. 그 일치한 정도가 오늘날 라디오 뉴스를 필기하여 발행한 신문들의 제목과 내용까지 일치한 것보다 더 정밀하게 일치한 것이 많다. 그런 즉 대체로 공관복음 세 책은 처음에 어떻게 기술되고 편찬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문제가 일어난다.

마태, 마가, 누가 등은 서로 관련된 바 없이 전혀 독립적으로, 개별적으로 예수에 관한 각자의 들은대로, 본대로, 믿는대로 기록했던 것인데 써놓고 보니 우연히 이렇게 일치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짐작컨대 예수 전기의 원본이라고 할만한 자료가 있어서 그 자료에 의거하여 집필했던 결과로 소위 평행 기사의 일치가 생긴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자료는 어떤 형식으로 전해왔나 하는 것이 다음에 일어나는 문제이다.

첫째로는 구전설이 있다. 즉 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구비 전설로 암송하여 교회에 서로 전해 오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자료로 하고 썼기 때문에 평행 기사가 생겼다는 설이다. 이 설은 예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의 학자 사이에는 신빙되지 못하는 설이다.

둘째로는 문서 전래설이 있다.   즉 구비 전설로 암기하여 온 것으로는 두 사람 이상의 기자가 꼭 일치한 문장을 저술할 수 없으니 필연코 공관 세 복음이 공통으로 의거하여 저작된 바 자료의 원본이 먼저 있었거나, 혹은 공관복음 중의 하나가 다른 두 책보다 먼저 저술된 후에 다른 두 기자는 그것을 자료로 인용하였다는 설이다. 어쨌든 문서로 되어 전래하였다는 설인데 상당히 유력하다.

그중에서도 2원설이라고 할까, (1) 마가복음과 (2) 마가복음과 비슷하나 내용이 다소 다른 또 하나의 문서(현재에는 없는)가 같이 존재하였고, 마태와 누가는 이 두 가지 자료를 임의대로 골라서 복음서를 저작하였다는 설이 가장 권위 있는 학자들에게 지지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설은 100여 년 이상 격렬하게 논쟁하던 문제인 관계로 크게 보아서는 는 같아도, 세밀한 부분에 이르면 대립하는 점이 또한 많다. 여기에 같은 점과 대립되는 몇 가지 의견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마태와 누가가 각자 독립적으로 각자의 복음서를 저술했다. 그때에 마가복음 또는 마가복음과 비슷한 문서를 원본으로 사용하면서 일부는 빼고, 일부는 문구를 바꾸고, 일부는 원본 그대로 각자의 저작에 인용하였다.   이 설은 다수 학자가 거의 완전하게 일치하는 바이다.

단, 그 원본이란 것이 현존하는 마가복음 그것대로이냐, 혹은 현존 마가복음보다 다소 간단하였으리라고 추측되는 ‘원 마가복음’ (Ur Marcus) 이냐 하는 문제는 학자들의 의견이 구구하다.

2. 다수의 학자는 마태와 누가가 마가복음을 자료로 하는 동시에 다른 자료(Q)를 같이 사용하였으리라고 말한다.   이 다른 자료라른 것은 학자들이 ‘Q’ 로 표시하는 문서인데, 마가복음보다 약간 먼저 저술되었고 예수의 교훈을 위주로 기록했으며, 마가복음보다는 간단한 문서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 마가 원본설 >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가복음 또는 그와 유사한 문서를 마태와 누가가 자료로 사용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우리는 마가복음이 먼저 저작되어서 마태와 누가가 각자의 복음서를 쓸 때에 마가복음을 자료로 사용하였다는 결론을 지지하면서 다음에 좀더 구체적으로 공관복음서의 내용을 비교하고자 한다.

1. 마가복음의 3분의 2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하게 인용되었다.   또 나머지 3분의 1도 마태복음에 인용되었거나 누가복음에 인용되었다.   마가복음 중에서 30절만 마태, 누가 어느 복음에서도 인용되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다.

(1) 마태와 누가복음에 인용되지 않은 마가복음 특유의 구절
2:27, 3:20~21, 4:26~29, 7:3~4, 7:32~37, 8:22~26, 9:29, 9:48~49, 13:33~37, 14:51~52 (합계 30절)

(2) 마태복음에는 인용되지 않고 누가복음에만 인용된 구절
1:23~28, 1:35~38, 4:21~25, 6:30, 9:38~41, 12:40~44 (합계 25절)

(3) 누가복음에는 인용되지 않고 마태복음에만 인용된 구절
1:6, 4:33~34, 6:17~29, 6:45~8:26, 9:9~13, 9:43~47, 10:1~10, 10:35~41, 11:12~14, 11:20~22, 11:24~25, 14:26~28 (합계 129절, 그중 반 이상인 74절은 6:45~8:26의 한 덩어리에 뭉친 것이 주목된다.)

(4) 누가는 마가복음에서 인용하면서도 마가복음에 있던 순서를 바꾸거나 문구를 바꿔서 언뜻 상관없는 사건처럼 보이나, 면밀히 조사해 보면 마가복음 기사를 인용한 것이 틀림없는 것이 발견된다.   그런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마가 누가 마가 누가
1:16~20 5:1~11 10:42~45 22:25~27
3:22~30 11:14~23 11:23 17:6
4:30~32 13:18~19 13:21~23 17:23
6:1~6 4:16~30 14:3~9 7:36~50
9:42 17:2 14:29~31 22:31~34
9:50 14:34 15:16~20 23:11
10:11~12 16:18 이상 합계 50절

 

2. 즉 전체적으로 보면 마가복음의 대부분은 마태, 누가 두 복음에 공통히 인용되었고, 나머지도 마태복음이 아니면 누가복음에 인용되었다.   어휘의 분포로 보아도 마가복음의 어휘가 기본이 된 것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공관복음에 공통한 어떤 표준 기사의 어휘를 조사해 보더라도 마가의 것이 대부분은 마태, 누가에게 공통하게 인용되었다.   나머지도 마태 혹은 누가의 어느 한 편에만 인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 복음서의 내용 배열 순서에 있어서도 그 목차를 골라 본다면 대체로 마가복음의 순서가 마태, 누가 두 복음서의 본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단, 다음과 같은 흥미있는 사실도 함께 발견된다.

a. 마가복음의 순서에서 마태복음이 어그러지는 때는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의 순서를 유지하였다.
b. 마가복음의 순서에서 누가복음이 어그러지는 때는 마태복음이 마가복음의 순서를 유지하였다.
c. 마가복음의 순서에서 탈선한 때에 마태와 누가복음의 순서가 일치한 일은 결코 없다.
d. 마가복음 3:31~35절은 예외로 세 복음서의 각각 다른 곳에 나온다. 그외에 특수한 배열이 두 군데 있다.
e. 마태 8~13장은 마가 1:29~6:13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두 복음서가 매우 다르고, 누가복음은 마가의 순서에 대개 일치하였다.   마태도 후반에서는 마가복음의 순서를 떠나지 않았다.
f. 외관상으로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이 다른 것 같으나 사실 내용은 동일한 50개 절(마가원본설 1, (4) 참조)은 누가가 마가복음의 절구를 생략하거나 다른 자료에서 보충한 것일 터이며, 십자가의 기사에 관해서도 누가는 다른 자료를 많이 채택했던 것 같다.

4.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마가복음과 마가적이지 않은 것(혹은 기타 자료)이 배열된 것을 상세히 조사해 보면,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을 주요 자료로 하고 ‘Q’를 임의로 첨삭한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그런데 마가복음의 순서를 윤곽으로 하여 골자로 삼아 작성하면서 마가적이지 않은 자료를 첨가할 때에 확연한 방안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기에 ‘광야의 시험’에 관한 기사와 ‘십자가의 광경’ 같이 사건의 시간과 장소가 명확한 것은 각자 복음서의 처음과 끝에 갈라 붙였지만, 그 밖의 은유와 교훈 등을 삽입할 때는 꼭 ‘어느 때, 어디서’라는 정해진 바가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마가복음의 순서를 윤곽으로 한 마태와 누가의 기사 중에 마가적이지 않은 것이 보충된 때에 한번도 그 순서가 일치한 장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즉 마태는 마태대로 누가는 누가대로 각자가 적절하다고 보는 데에 삽입하였다.   그래도 마태에게는 마태의 편집 방침이 있었고, 누가에게는 누가의 방침이 있었던 모양인데, 짐작컨대 다음과 같은 흥미있는 단순한 방침이었던 듯하다.

마태는 가소로우리만치 단순한 방법이었다.   마가복음을 골자로 기술하다가 무슨 문제가 나오면 거기에 비슷한 비(非)마가적인 자료를 모조리 구하여다가 마가복음의 윤곽 속에 묶어 넣었다.   때로는 아주 단순한 것을 삽입하며(예, 마 19:10~12) , 때로는 마가복음에서 얻은 조그마한 암시에서 단서를 잡아 길고 복잡한 논설을 삽입하였다.   예컨대,

(1) 12제자를 파송하는 마가의 7개 절이 마태의 42개 절로 된 것.
(2) 마가 6:7~13은 마태복음 제10장이 되었다.
(3) 마가 제13장은 마태 제24장에 제25장을 첨가한 것이 되었다.
(4) 악한 농부의 비유는(막 12:1~12) 두 아들과 왕자의 혼인의 비유 두가지를 보충하여 덧붙였다.(마 21:28~32, 33~46, 22:1~14)
(5) 마태복음 제5, 6, 7장에 걸친 유명한 산상수훈은 마가 1:22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보충한 것이다.(마 7:28 참조)
(6) 마태복음의 포도원 인부 비유는(19:30 ~ 20:16) 마가복음 10:31의 “먼저 있는 이가 나중 되고 나중 있는 이가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는 것을 해설하기 위함이었다.

누가의 편집 방침은 마태와는 다르다.   그러나 역시 단순한 방법이다.   나사렛에서 배척 받은 일과 베드로의 거룩한 부름에 관한 기사를 제외한 그 밖의 비마가적 자료는 모조리 광야의 시험과 최후의 만찬 사이에 3개의 그룹으로 삽입하였다.

(1) 6:20 ~ 8:3
(2) 9:51 ~ 18:14
(3) 19:1 ~ 27

이상 3대 그룹의 약 반은 ‘Q’에서, 나머지 반은 누가복음에만 독특한 것이다.

5. 세 복음서에 공통한 구절을 세밀히 비교해 보면 내용과 의미는 하나이면서도 마가복음보다 마태, 누가복음의 문장과 문법이 개선된 것이 많다.   이것도 마가복음이 원형이었고 다른 두 복음은 추후에 되었다는 흔적이다.

예컨대, 어감이 너무 강하거나 해석에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다소 부드럽게 바꿨다.

(1) 마가 6:5에 “거기서는 권능을 행할 수가 없으되…”가 마태 13:58에는 “거기서 권능을 많이 행하지 아니하심은…”으로 되었다.
(2) 마가 10:18에 “네가 어찌하여 나를 착하다 일컫느냐…”가 마태 19:17에는 “어찌하여 내게 착한 일을 묻느나…”로 되었다.

회화적 형용이 많아서 사물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 마가복음의 특색인데, 마태와 누가는 필요하지 않으면 이런 구절을 생략해 버리고 문장이 간결하고 힘찬 경향이 있다.   예컨대,

(1) 마가 4:38 “…고물에서 배게하시고…”
(2) 마가 8:14 “…배에 떡 한 덩이 외에는 없는지라”

또 한 가지 마가의 특징인 과잉의 설명과 한 말을 다시 곱씹는 버릇도 마태나 누가복음에 이르러서는 세련되었다.   예컨대, 마가 1:32에 “저물어 해질 때에…”가 마태는 “저물어…”로, 누가는 “해질 때에…”만 택하였다.

이상의 사실과 사고로 판단하건대 마태, 누가 양 복음은 그 내용으로 보든지 그 목차의 순서로 말하든지 또는 그 용어의 어휘로 비교하든지 마가복음과 심히 흡사한 자료를 공통하게 사용하였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자료라는 것은 마가복음 이외의 것일 수 없다.   마가복음은 사실로 존재하는 것이요, ‘원 마가’라는 것은 단지 가설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관복음의 공통한 자료가 마가복음이라고, 즉 마가복음을 골자로 하여 마태, 누가 양 복음이 편찬되었다고 단정하면 두어 가지 반대가 일어난다.

(1) 마태와 누가가 각기 마가복음을 자료로 하고 저술하였다면 왜 마가복음의 전부를 인용하지 않고 마가복음의 일부분은 버리면서 다른 자료를 첨가하였는가? 이는 마가복음보다 간단한 ‘원 마가’라는 원형의 것이 존재하여서 마태와 누가도 그것을 자료로 썼을 뿐더러 마가복음도 그것을 증보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설이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들은 역사가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가의 안목으로 권위있는 자료를 채택하는 것은 사진을 찍는 일과는 다르다.   있는 자료를 모조리 인용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또 복음서 기자들이 기술한 ‘권피(卷皮)’ Roll에는 제한이 있었다.   마태, 누가 양 복음서는 보통 두루마리 한 개 분량을 넘었으므로 불필요한 기사는 자연히 축약하였을 것이다.   그런즉 마가복음의 일부분을 인용하지 않았다고 즉시에 ‘원 마가’설을 제기하는 것은 부당하다.

(2) 세 복음에 공통한 기사를 세밀히 비교하면 미묘한 표현에 있어서 문법과 어휘에 마태, 누가가 일치하고 마가복음과는 다른 것이 220여 군데 있는 것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것은 마태와 누가가 이용하기 전에 마가복음에 한번 문법상 개정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온당할 것이다.

1 Comment

  1. 대학원수업을 하고 있는데 도마복음을 수업하면서 배웠습니다. 모둔 부분들을 이해할 수는 없으나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성도들에게 이런 내용을 이해시키려한다면 조금은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저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깊이있는 묵상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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